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낙태는 결국 세계관의 문제!

전문가 기고
 
낙태는 결국 세계관의 문제!
인간의 존엄성을 하나님 형상에서 찾는 세계관 깨닫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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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8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석 달 동안 민간인 4,031명이 사망했고, 그중에서 261명이 어린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이 안타까운 상황에 전 세계가 마음 아파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등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들의 낙태 횟수는 연간 110만여 건, 하루 평균 약 3,000여 건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이 수치로 계산해 보면 우크라이나 전쟁 석 달 동안 우리나라에서만 27만 명의 태아가 목숨을 잃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통계자료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6월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돕스 대 잭슨여성보건기구’ 판결(이하 돕스)로 뒤집은 ‘로 대 웨이드’ 판결(낙태 권리 보장, 이하 로) 이후 반 세기동안 미국에서만 6,350만 명의 태아가 목숨을 잃었다. 한 자녀 정책을 오랜 기간 강제 시행했던 중국에서는 약 3억 명의 태아가 살해되었다. “생각은 결과를 낳고 나쁜 생각은 희생자를 낳는다”고 한다. 말문을 잃게 하는 이 어마어마한 수의 희생자들은 몇 가지 나쁜 생각에서 나왔다. 
 
1973년 로 판결,
낙태를 인구증가 해결책으로 보는 사고 반영
 
1973년의 로 판결 이전까지 미국 대부분 주에서는 여성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가 아닌 한 낙태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 판결에서 “낙태를 처벌하는 대부분의 법률들은 미국 수정헌법 14조의 적법절차조항에 의한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위헌이다”라고 판시된 이후 낙태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미국의 모든 주와 연방의 법률들이 폐지되었다. 하지만 로 판결을 뒤집은 돕스 판결문에서는 로 판결에서 주장하는 바와 달리 “헌법은 낙태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로 판결은 엄밀한 법리에 따른 판결이 아니었다. 1973년 당시 유행하던 낙태를 인구증가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는 사고가 반영된 결과였다. 20세기 중후반, 증가하는 세계인구에 대한 우려에서 닉슨 대통령 지시에 따라 1972년 3월 ‘인구와 미국의 장래에 관한 록펠러 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 보고서는 인구 폭발 위험에 처한 세계를 구하고, 미국의 인구를 안정시키기 위해 특히 낙태를 합법화하고 장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보고서가 나오고 10개월 뒤 로 판결이 내려졌다. 로 판결에서 다수의견을 쓴 해리 블랙문 대법관은 “인구증가, 환경오염, 빈곤, 인종 차별과 같은 요인을 미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하는 결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인구증가에 대한 대응으로 낙태를 수용한 것이라는 이 허무맹랑한 생각은 지구를 구하는 대신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데 기여했다. 록펠러 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미국의 출산율은 인구대체율(사망률과 동일한 수준의 출산율) 이하로 떨어졌고, 최근 몇 년 동안 최저치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 동안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0.918(미국 1.705)로 전 세계 최하위이다. 
록펠러 위원회의 보고서가 가져온 결과만큼 끔찍한 사실은 이것이 인간의 가치와 본성에 대해 근원적으로 오해한 결과라는 점이다. 이 보고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는 대신 단순히 식량이나 축내는 먹여 살려야 할 ‘입’과 같은 존재로 가정했다. 세계인구가 이 보고서가 발표된 1972년 38억 명에서 현재 79억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농작물 수확량 역시 급격히 증가했다. 당대 사람들이 생각했던 바와는 달리 인간은 식량만 축내는 문젯거리가 아니라 새로운 자원과 혁신적인 솔루션을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생산자 즉 문제의 해결자였다. 
인구증가가 세계적인 재난으로 예측되었던 것이 완전히 허구였다는 사실이 판명된 이후에도, 이 보고서는 여전히 인구 과잉이라는 가정과 낙태를 모두 인정하는 사고방식을 남겼다. 이러한 황당한 배경에서 내려진 로 판결이 돕스 판결을 통해 뒤집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도 있다. 돕스 판결은 낙태를 전면 금지하거나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낙태에 대한 결정권을 주 정부로 돌려보내는 것으로, 낙태를 각 주 단위에서 제한하는 것을 바로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 일부 주들은 낙태권을 확대할 것이며, 또 다른 주들은 낙태권을 제한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에서 형법 제269조의 자기낙태죄와 제270조 의사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낙태 결정 가능 기간과 사회적, 경제적 사유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상담요건과 숙려기간과 같은 일정한 절차적 요건을 국회가 입법재량권을 가지고 2020년 12월 31일까지 입법개선하라고 시한을 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관련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나쁜 생각
 
낙태 허용의 근거가 되었던 보고서의 허구가 드러나고, 로 판결이 뒤집어지고, 헌법재판소에서 입법을 주문해도, 가족의 일원으로서 존엄한 생명으로 보장받아야 할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수 세기에 걸쳐 세속적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나쁜 생각 때문이다.
찰스 다윈은 19세기 중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엄한 존재가 아니고, 인간의 생명은 그저 무의식적이고 목적 없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단순한 생물학적 주장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주장이었다. 인간의 삶이 우연의 산물이라면 인간의 생명에는 천부 인권과 같은 궁극적인 가치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인간의 목적이나 존엄성의 근거를 새로 부여해야 했다. 장 자크 루소는 다윈보다 앞선 18세기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본성이 선하지만, 타인들과의 외부적 상호작용 때문에 타락한다면서 타락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면을 보라고 했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내면의 문제이지, 육체적이거나 현실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내면을 중요시하는 루소의 영향을 받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삶의 목적을 성관계에서 발견한다고 주장했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도 성(性)과 권력이 중요한 모든 것이라 보았다. 마르쿠제에게 이른바 성도덕이나 규범은 객관적인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저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 이론을 발전시켜 성이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억압의 도구라면, 여성들 스스로 ‘생식불능’ 상태로 만듦으로써 진정 자유롭고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낙태는 이러한 환상을 위한 완벽한 도구였다. 
로 판결이 뒤집힐 것이 예상되자 미 전역에서는 여러 곳의 생명옹호단체 사무실이 방화 등으로 파손되었다. “낙태가 안전하지 않다면 당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낙서를 하고, 다수의견의 대법관 자택 근처에서 시위하고, 무기를 소지한 채 대법관을 암살 시도하기까지 했다. 낙태가 지지자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여성 고유 신체의 기능을 폭력을 행사해서 막을 수 있는 특권이 그들의 인간성에 있어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의 생물학적 현실이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억압하거나 심지어 제한한다고 믿는다면,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이 그 신념에 따르도록 강제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에게 낙태할 권리는 곧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위치에 있다.
복음은 인간을 식량만 축내는 식충이로 보지 않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성적자기결정권이나 낙태할 권리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존귀한 존재라고 했다. 복음이 인간에게 진정 기쁜 소식인 이유이다. 돕스 판결로 여성의 선택권이 사라졌다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는 세계관’과 ‘낙태할 권리나 성적자기결정권에서 찾는 세계관’ 중에서 인간의 번영에 이로운 세계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사랑 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진리를 실천하는 좋은 방법이다. 아울러 ‘무고한 생명인 태아를 의도적으로 죽이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낙태에 대한 기본 원칙과 대중적인 오해를 불식시킬 논리 및 변증론으로 무장하는 동시에, 위기 상황의 임산부와 미혼모 섬기는 것을 병행하는 역량이 생기기를 기도한다. 생명 존중의 문화가 전파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연약함이 보듬어지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 이상현 집사(강남E공동체, 숭실대 법학과 교수) 
 
 
<발문>
‘인간의 존엄성을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는 세계관’과 
‘낙태할 권리나 성적자기결정권에서 찾는 세계관’ 
중에서 인간의 번영에 이로운 세계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사랑 안에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