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나쁜 사상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전문가 기고
나쁜 사상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세계관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
학생인권조례에 담긴 세계관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
최근 수업 중에 교단에 드러누워 휴대폰을 들고 있는 학생의 영상이 유포되는 등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 교권 추락의 원인으로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는 비단 교권침해뿐 아니라 의무는 없고, 인권이 아닌 것을 인권이라 하며, 교육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법이자 종립학교의 종교교육 자유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면서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부모의 교육권도 침해한다는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또한 현실과는 달리 학생을 마치 모범생만 모인 성숙한 집단, 즉 완전무결한 존재로 가정하고 있으며,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인권을 대립각 구도로 보는 양상을 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억압하는 자 VS 억압받는 자
비판이론의 잘못된 이분법
비판이론의 잘못된 이분법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학생인권조례는 사실 어떤 인간 사회도 권력을 가진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는 사상인 비판이론(Critical Theory)을 기반으로 한다. 비판이론가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은 항상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억압한다고 본다. 망치에게는 모든 것이 못처럼 보이듯, 모든 것이 억압으로 보인다. 그래서 권력을 가진 계층에서 세운 모든 제도나 관계, 신념 체계를 억압의 도구로 간주한다. 억압받는 사람의 범주는 인종, 성별, 종교, 소득, 성적 지향, 성 정체성 등에 기초해 더 작은 범주로 나눌 수 있고, 오직 개인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 아닌지, 즉 집단 정체성에 따라 개인의 특성이 결정된다. 학생인권조례의 경우 억압받는 계층은 학생이며, 교사 등 학생을 어떤 식으로든 억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집단이 억압하는 계층이다.
세계관을 정의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세상에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이다. 비판이론은 이 질문에 대해 권력 계층의 ‘억압’이 바로 그 문제이며, 그 해결책은 억압을 식별해 억압받는 집단에게만 자동으로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억압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유죄이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항상 무죄다.
비판이론은 1920~30년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했다. 그는 당시 전 세계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주류 국가에서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관이 노동자 계급의 사고를 감염시켜 이들을 억압하게 만드는 ‘헤게모니(권력)’를 당연한 것으로 믿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노동자 계급이 억압의 실체를 깨닫고 봉기하게 만드는 대안적 세계관인 ‘새로운 헤게모니’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그람시의 영향을 받았던 프랑크프루트 학파 중에서 다수의 유대인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컬럼비아대학교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학계와 문화계에 이 사상을 전파했다.
모든 개인을 억압하는 계층과 억압받는 계층으로 단순히 구분해 집단 정체성을 부여하고, 정체성 간 갈등을 조장하는 이 사상의 영향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고로 나타났다. 비단 학생인권조례뿐 아니라 모든 불평등의 원인은 남성이든 여성이든(성별 갈등), 기득권이 있는 중장년층이든(세대 간 갈등), 백인이든(인종 갈등), 이성애자이든(젠더이데올로기)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억압하는 계층 때문이라는 주장이 비판이론의 결과이다.
프란시스 쉐퍼가 “상아탑 속에 있던 사상이 문화가 되고 일반인들의 문화적 상상력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에 세계관과 문화는 중요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비판이론이 그 좋은 예이다. 오늘날 같은 극한의 갈등 사회를 사는 대다수 일반인은 그람시나 프랑크프루트 학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상아탑 속에서 시작된 이 사상은 전 세계적인 사람들의 문화적 상상력을 형성하면서 문화적 담론을 지배하게 되었다. 비록 비판이론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창되기는 했지만, 비판이론은 죄가 패배하거나 구원받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죄가 용서되고 회복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비판이론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억압하는 특정 권력 계층을 무력을 통해 또 다른 권력 계층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세계관을 정의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세상에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이다. 비판이론은 이 질문에 대해 권력 계층의 ‘억압’이 바로 그 문제이며, 그 해결책은 억압을 식별해 억압받는 집단에게만 자동으로 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본다. 억압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유죄이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항상 무죄다.
비판이론은 1920~30년대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였던 안토니오 그람시가 주창했다. 그는 당시 전 세계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주류 국가에서 노동자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부르주아 계급의 세계관이 노동자 계급의 사고를 감염시켜 이들을 억압하게 만드는 ‘헤게모니(권력)’를 당연한 것으로 믿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노동자 계급이 억압의 실체를 깨닫고 봉기하게 만드는 대안적 세계관인 ‘새로운 헤게모니’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그람시의 영향을 받았던 프랑크프루트 학파 중에서 다수의 유대인이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컬럼비아대학교를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학계와 문화계에 이 사상을 전파했다.
모든 개인을 억압하는 계층과 억압받는 계층으로 단순히 구분해 집단 정체성을 부여하고, 정체성 간 갈등을 조장하는 이 사상의 영향이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사고로 나타났다. 비단 학생인권조례뿐 아니라 모든 불평등의 원인은 남성이든 여성이든(성별 갈등), 기득권이 있는 중장년층이든(세대 간 갈등), 백인이든(인종 갈등), 이성애자이든(젠더이데올로기)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억압하는 계층 때문이라는 주장이 비판이론의 결과이다.
프란시스 쉐퍼가 “상아탑 속에 있던 사상이 문화가 되고 일반인들의 문화적 상상력을 형성하게 되기 때문에 세계관과 문화는 중요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비판이론이 그 좋은 예이다. 오늘날 같은 극한의 갈등 사회를 사는 대다수 일반인은 그람시나 프랑크프루트 학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100여 년의 세월 동안 상아탑 속에서 시작된 이 사상은 전 세계적인 사람들의 문화적 상상력을 형성하면서 문화적 담론을 지배하게 되었다. 비록 비판이론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주창되기는 했지만, 비판이론은 죄가 패배하거나 구원받는 세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 죄가 용서되고 회복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비판이론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은 억압하는 특정 권력 계층을 무력을 통해 또 다른 권력 계층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때와 시세를 아는 지혜,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복음은 이 세상의 문제에 대해 비판이론보다 훨씬 나은 답을 제공한다. 우선 인간을 보는 관점에서 비판이론은 인간의 정체성이 인종과 성별, 사람마다 각기 다른 정형화된 특징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인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인격은 인구통계학적 특징이나 특권의 정도를 계량화해서 결정할 수 있는 정형화된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비판이론은 사람을 하나의 정형화된 개념으로 축소하고, 계층 간 억압의 정도에 따라 서로 다른 집단 간 갈등을 조장한다. 반면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모두 가치 있는 존재인 동시에 각자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데 예수님의 희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존재로 본다.
죄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비판이론은 ‘억압’만이 죄라고 하고, 성경은 타인에 대한 부당한 억압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설계를 위배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여긴다. 비판이론은 억압하는 계층에 속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그들이 교정하거나 지도, 책망하는 모든 행위가 죄악이라고 본다. 억압받는 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노, 질투, 증오 등은 자동으로 죄가 아닌 것이 된다. 하지만 성경은 사회적 지위, 인종,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한다. 성경에 따르면 억압이 죄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죄는 아니다.
비판이론은 세상의 문제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잘못된 해답을 제공한다. 비판이론은 억압받는 계층은 죄가 없어서 구원은 회개가 아니라 행동주의를 통한 사회적 해방으로 실현된다고 여긴다. 여기에는 용서나 회개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모두 똑같은 죄인이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레슬리 뉴비긴(영국 선교사, 신학자)은 기독교인들의 소명에 대해 “복음이 답이 되는 질문을 사람들이 하게끔 만들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이해가 안 되는 일들에 대한 답변은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복음이 답이 되는 질문을 하도록 만들려면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 곧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역대상 12장 32절에 때(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할 일을 알았던 잇사갈 지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기 위해 헤브론에 온 다윗 무리의 하나였다. 잇사갈 지파처럼 때와 시세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이다. 이것이 곧 바른 성경적인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소수의 전문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비판이론과 같이 반성경적인 사상들이 문화적 상상력으로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사상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도록 우리와 다음세대가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야 한다.
11월 1일부터 5주 동안 이어지는 ‘2022 온누리세계관학교 강의’가 때와 시세를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이 답이 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많은 성도가 온누리세계관학교를 통해서 문화를 휩쓸고 있는 문제를 회복하고, 비성경적인 세계관을 분별하고, 기독교의 진리가 사회와 인류에 제공하는 가장 좋은 답변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전하고, 경쟁적인 세계관에 대항하는 지혜를 배우기를 소망한다.
나쁜 사상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더 나은 사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용서받고, 구원받은 우리는 나쁜 사상에 대항할 뿐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인 복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 비판이론과 같은 부적절한 세계관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는 교회인 우리가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이상현 집사(강남E공동체,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
죄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다. 비판이론은 ‘억압’만이 죄라고 하고, 성경은 타인에 대한 부당한 억압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설계를 위배하는 모든 것이 죄라고 여긴다. 비판이론은 억압하는 계층에 속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그들이 교정하거나 지도, 책망하는 모든 행위가 죄악이라고 본다. 억압받는 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노, 질투, 증오 등은 자동으로 죄가 아닌 것이 된다. 하지만 성경은 사회적 지위, 인종, 경제적 상황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한다. 성경에 따르면 억압이 죄의 하나이지만, 유일한 죄는 아니다.
비판이론은 세상의 문제를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잘못된 해답을 제공한다. 비판이론은 억압받는 계층은 죄가 없어서 구원은 회개가 아니라 행동주의를 통한 사회적 해방으로 실현된다고 여긴다. 여기에는 용서나 회개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 모두 똑같은 죄인이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레슬리 뉴비긴(영국 선교사, 신학자)은 기독교인들의 소명에 대해 “복음이 답이 되는 질문을 사람들이 하게끔 만들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와 같이 이해가 안 되는 일들에 대한 답변은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복음이 답이 되는 질문을 하도록 만들려면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 곧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역대상 12장 32절에 때(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할 일을 알았던 잇사갈 지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울의 왕권을 다윗에게 넘겨주기 위해 헤브론에 온 다윗 무리의 하나였다. 잇사갈 지파처럼 때와 시세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이다. 이것이 곧 바른 성경적인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다. 소수의 전문가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미 비판이론과 같이 반성경적인 사상들이 문화적 상상력으로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런 사상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도록 우리와 다음세대가 각자의 자리에서 힘써야 한다.
11월 1일부터 5주 동안 이어지는 ‘2022 온누리세계관학교 강의’가 때와 시세를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이 답이 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많은 성도가 온누리세계관학교를 통해서 문화를 휩쓸고 있는 문제를 회복하고, 비성경적인 세계관을 분별하고, 기독교의 진리가 사회와 인류에 제공하는 가장 좋은 답변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전하고, 경쟁적인 세계관에 대항하는 지혜를 배우기를 소망한다.
나쁜 사상과 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더 나은 사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 용서받고, 구원받은 우리는 나쁜 사상에 대항할 뿐 아니라 더 나은 방법인 복음을 세상에 보여줄 수 있다. 비판이론과 같은 부적절한 세계관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는 교회인 우리가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 이상현 집사(강남E공동체,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
2022 온누리세계관학교
일정: 11월 1일~29일 매주 화 오후 8시
온라인(Zoom) 실시간 강의
문의: 02-3215-3637
일정: 11월 1일~29일 매주 화 오후 8시
온라인(Zoom) 실시간 강의
문의: 02-3215-3637
<발문>
“나쁜 사상에 대항하는 방법은
복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비판이론과 같은 부적절한 세계관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나쁜 사상에 대항하는 방법은
복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비판이론과 같은 부적절한 세계관에 대한
최선의 해독제는 성경을 바로 이해하고,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