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읽는 성경]한스 홀바인이 그린 ‘신약과 구약의 알레고리
명화로 읽는 성경
오직 성경, 그리스도, 은혜, 믿음, 하나님께 영광!
한스 홀바인이 그린 ‘신약과 구약의 알레고리’
한스 홀바인이 그린 ‘신약과 구약의 알레고리’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년)은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화가다. 홀바인은 원래 독일출신이었는데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에라스무스의 추천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명성을 얻었다. 영국의 헨리 8세가 그를 궁정화가로 임명할 정도였고, 미술사가들은 한스 홀바인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꼽는다.
한스 홀바인은 같은 독일인인 마틴 루터(1483~1546년)와 동시대 사람이다. 루터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생몰 연대를 봐도, 그림의 내용을 봐도 한스 홀바인이 종교개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죄부 판매로 상징되는 교황청과 그 산하 조직의 부패와 축재, 권력의 남용과 성직자의 문란한 사생활 등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에 대한 당시 유럽 민초들의 반발은 폭발 직전의 활화산 같았다. 1517년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당 정문에 게시했다는 ‘95개조 반박문’은 그 폭발의 도화선이었다. 종교개혁의 거대한 파도가 모든 유럽을 강타했을 때 등장한 개신교의 다섯 가지 표어, 즉 ‘파이브 솔라(Five Solas)’는 당시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라틴어 ‘솔라(Sola)’는 ‘오직’ 혹은 ‘오로지’라는 뜻이다. 다섯 가지 솔라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성경(聖經)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모든 전통은 오직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한다.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고,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분은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하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셋째와 넷째가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은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다.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대가를 요구받지 않는다.
다섯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 하물며 성직자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혼동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구원의 시작과 완성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니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다.
한스 홀바인은 같은 독일인인 마틴 루터(1483~1546년)와 동시대 사람이다. 루터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는 생몰 연대를 봐도, 그림의 내용을 봐도 한스 홀바인이 종교개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죄부 판매로 상징되는 교황청과 그 산하 조직의 부패와 축재, 권력의 남용과 성직자의 문란한 사생활 등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에 대한 당시 유럽 민초들의 반발은 폭발 직전의 활화산 같았다. 1517년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당 정문에 게시했다는 ‘95개조 반박문’은 그 폭발의 도화선이었다. 종교개혁의 거대한 파도가 모든 유럽을 강타했을 때 등장한 개신교의 다섯 가지 표어, 즉 ‘파이브 솔라(Five Solas)’는 당시 종교개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라틴어 ‘솔라(Sola)’는 ‘오직’ 혹은 ‘오로지’라는 뜻이다. 다섯 가지 솔라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성경(聖經)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기독교 교리의 유일한 원천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모든 전통은 오직 성경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한다.
둘째,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참된 생명력을 잃고,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분은 십자가에서 대신 속죄하고, 하나님의 의를 완전히 이룬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셋째와 넷째가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은 인간 쪽에 아무런 조건을 찾지 않는다.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이며, 믿음은 구원의 은혜를 받는 통로다. 구원의 은혜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대가를 요구받지 않는다.
다섯째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다. 모든 영광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 하물며 성직자의 권위가 하나님의 권위와 혼동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구원의 시작과 완성은 오직 하나님의 것이니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의 주인공이다.
한스 홀바인이 말하는 ‘파이브 솔라’
한스 홀바인이 그린 ‘신약과 구약의 알레고리’에는 파이브 솔라의 내용이 잘 함축되어 있다. 먼저 그림을 정확하게 좌우로 나누고 있는 정중앙의 나무를 한번 보자. 원래 땅속깊이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나무는 땅과 하늘, 즉 인간 세상과 하늘나라를 연결해주는 고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림에서처럼 같은 뿌리에서 나왔지만 잎이 떨어진 왼쪽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고, 초록이 무성한 오른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한다. 한스 홀바인은 구도를 잡을 때부터 좌우를 그리스도의 부재와 임재, 구약과 신약의 대비를 명확하게 하고 들어갔다.
왼쪽 위에는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율법(Lex)의 서판을 받고 있는 모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반면 오른쪽 위에는 기도하는 마리아에게 십자가를 들고 나타나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수태고지(受胎告知)하는 천사의 머리 위에는 적절하게도 ‘은혜(Gratia)’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가 써져있다.
율법의 서판을 받고 있는 모세의 아래쪽에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이 보인다. 뱀은 뱀의 외형을 빌려 나타난 사탄을 상징한다. 최초의 인류, 제1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원죄를 짓는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주권자이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역죄다. 아담의 머리 위에는 ‘죄(Peccatum)’라는 뜻의 라틴어가 보인다.
반대편 기도하는 마리아와 천사의 아래에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보인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이 이렇게 말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나님의 어린 양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번제의 속죄양과 희생양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제1아담이 ‘죄’의 상징이라면, 제2아담, 즉 예수님은 ‘속죄’의 상징이다.
아담과 하와의 뒤쪽에는 십자가에 걸린 청동뱀이 보인다. 이것은 반대편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 앞에 있는 십자가 책형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대비된다.
모세는 자신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T자 모양의 장대모양 십자가에 청동뱀을 올려놓았다. 여기서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난 뱀처럼 교활한 유혹자가 아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다. 이처럼 뱀은 이중적인 상징이 있으므로 성경을 읽을 때나 성경명화를 볼 때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청동뱀이 부상당한 소수의 히브리민족을 구할 수는 있어도,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써 죄를 대신 사해주신 예수님 한 분뿐이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제1아담이 저질렀던 원죄는 속죄가 되고, 우리는 그로 인해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약속, ‘신약(新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왼쪽 위에는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율법(Lex)의 서판을 받고 있는 모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반면 오른쪽 위에는 기도하는 마리아에게 십자가를 들고 나타나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수태고지(受胎告知)하는 천사의 머리 위에는 적절하게도 ‘은혜(Gratia)’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가 써져있다.
율법의 서판을 받고 있는 모세의 아래쪽에는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뱀이 보인다. 뱀은 뱀의 외형을 빌려 나타난 사탄을 상징한다. 최초의 인류, 제1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원죄를 짓는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주권자이심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역죄다. 아담의 머리 위에는 ‘죄(Peccatum)’라는 뜻의 라틴어가 보인다.
반대편 기도하는 마리아와 천사의 아래에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보인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하나님의 어린 양(Agnus Dei)’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예수님을 보고 세례 요한이 이렇게 말한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나님의 어린 양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번제의 속죄양과 희생양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제1아담이 ‘죄’의 상징이라면, 제2아담, 즉 예수님은 ‘속죄’의 상징이다.
아담과 하와의 뒤쪽에는 십자가에 걸린 청동뱀이 보인다. 이것은 반대편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 앞에 있는 십자가 책형을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대비된다.
모세는 자신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T자 모양의 장대모양 십자가에 청동뱀을 올려놓았다. 여기서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난 뱀처럼 교활한 유혹자가 아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그리스도의 이미지다. 이처럼 뱀은 이중적인 상징이 있으므로 성경을 읽을 때나 성경명화를 볼 때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하지만 십자가에 매달린 청동뱀이 부상당한 소수의 히브리민족을 구할 수는 있어도, 인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으로써 죄를 대신 사해주신 예수님 한 분뿐이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제1아담이 저질렀던 원죄는 속죄가 되고, 우리는 그로 인해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약속, ‘신약(新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사야와 요한 그리고 예수와 십자가
우리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은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다. 오른쪽 아래에는 무덤에서 나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덤도 이중의 상징을 가진다. ‘시련과 희망이 공존하는 집합소’다. 예수님은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헤치고 나와 십자가 깃발을 들고 당신의 부활을 세상에 선포하신다. 흰색 바탕에 붉은 색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은 부활의 상징이다. 왼쪽 맨 아래의 해골이 들어 있는 관에는 ‘죽음(Mors)’이라는 글자가 보이고, 예수님이 나오신 관 위에는 ‘부활(Victoria Nostra)’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이유가 그것이다.
나무 아래에는 맨 몸뚱이를 한 ‘인간(Homo)’을 둘러싼 선지자 두 사람이 보인다. 왼쪽은 구약에 나타난 대표적인 선지자 이사야이고, 오른쪽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라고 예언한 인물이다. 이사야는 다윗왕의 후손인 ‘평화의 왕’이 올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다.
세례 요한도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라고 선포하면서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눅 3:16)고 겸손해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라며 요한을 칭찬하신 바 있다.
구약과 신약을 각각 대표하는 두 선지자가 함께 가리키는 곳이 어디일까? 이사야와 요한은 인류에게 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 십자가는 희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탕으로 맺어진 새 언약, 즉 신약의 상징이다.
그림을 멀리서 한번 조망해보라! 두 선지자의 모습이 그림 중앙에 가장 크게 배치되어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사야와 요한 두 선지자의 오른팔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곳을 통해 뚜렷하게 적시하는 것으로 말이다.
/ 김진국 집사(한강공동체,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나무 아래에는 맨 몸뚱이를 한 ‘인간(Homo)’을 둘러싼 선지자 두 사람이 보인다. 왼쪽은 구약에 나타난 대표적인 선지자 이사야이고, 오른쪽은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라고 예언한 인물이다. 이사야는 다윗왕의 후손인 ‘평화의 왕’이 올 것이라 예언했는데, 그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다.
세례 요한도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라고 선포하면서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눅 3:16)고 겸손해 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눅 7:28)라며 요한을 칭찬하신 바 있다.
구약과 신약을 각각 대표하는 두 선지자가 함께 가리키는 곳이 어디일까? 이사야와 요한은 인류에게 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 십자가는 희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희생을 바탕으로 맺어진 새 언약, 즉 신약의 상징이다.
그림을 멀리서 한번 조망해보라! 두 선지자의 모습이 그림 중앙에 가장 크게 배치되어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이시며, 우리의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사야와 요한 두 선지자의 오른팔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곳을 통해 뚜렷하게 적시하는 것으로 말이다.
/ 김진국 집사(한강공동체, 고려대 인문예술과정 주임교수)
<발문>
“그림을 멀리서 한번 조망해보라!
두 선지자의 모습이 중앙에 가장 크게 배치되어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이시며,
영광 받으실 유일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두 선지자의 모습이 중앙에 가장 크게 배치되어 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주권자이시며,
영광 받으실 유일한 분이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