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강영재 장로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모든 사건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강영재 장로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모든 사건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38장과 41장 사건이 기록된 진짜 이유
 
나는 창세기 말씀을 QT 할 때마다 특별히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그 자녀들의 성적 타락 이야기와 41장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과정에 있었던 7년 풍년과 7년 흉년 이야기다. 창세기 38장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던 이유는 왜 성경에 유다 자녀의 체외 사정과 유다의 성매수 같은 성적 타락을 상세히 기록해 두었나 하는 의문이었다. 또 창세기 41장 이야기가 마음에 걸렸던 이유는 하나님은 날씨도 주관하셔서 광야 같은 가나안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만들어 주신다고 하셨는데, 흉년으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살지 못하고 이집트로 곡식 구하러 가야 했던 7년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지 궁금했다. 출이집트기 첫 부분에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박해를 받는 장면에서도 ‘하나님이 선택한 언약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로 수년 동안 고생하게 하고, 모세를 시켜 끌어내지 말고 처음부터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셨으면 좋지 않았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근래에 창세기를 몇 번 정독 하면서 QT 할 때 보지 못한 내용이 파악되고, 이해되지 않던 말씀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참고로 정독이란 내용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많은 분량을 읽고 넘어가는 통독과는 다르다. 성경 말씀을 천천히 읽으면서 ‘하나님이 왜 이런 내용을 성경에 넣어 두셨을까?’ 고민하고, 내용 이해를 위해 인물, 지명, 사건 등에 관련되는 성경 구절들을 찾아가며 읽는 방식이다. 특히 창세기처럼 구절 수가 많은 장을 여러 토막 내어 QT 하면 문맥상의 의미파악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 더욱 정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창세기 38장을 QT 할 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성적 타락을 경고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유다의 치부를 드러내어 욕보이기 위함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정독하면서 다시 읽어 봤더니 문맥상 이 사건들은 하나님이 왜 요셉 일가를 이집트 고센 땅에 보내 격리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줬다.
 
유다의 타락과
이스라엘의 번성
 
가족을 떠나 가나안에 살던 유다는 가나안 사람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또 가나안 사람을 며느리로 삼았다. 연이어 나오는 유다의 죽은 장남 엘의 대 잇기를 거부해 형수 다말과 동침할 때  체외사정한 차남 오난의 죽음과 유다가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알고 동침해 자녀를 얻는 등의 성적인 타락상이 가나안의 문화에 동화되고 오염된 유다를 잘 나타내고 있다. 
“그즈음에 유다는 자기 형제들을 떠나 히리라고 하는 아돌람 사람에게 갔습니다. 거기에서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라는 사람의 딸을 만나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동침했습니다”(창 38:1~2).
“유다는 맏아들 엘을 위해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었습니다”(창 38:6).
유다의 성적 타락을 보며 아마도 하나님의 마음이 급하셨나 보다. 가나안 땅에 그냥 두었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 갈 핵심인물인 유다와 그 자손이 그곳에 동화되어 성적 타락과 우상숭배의 삶을 살게 될 것을 미리 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장 단기간에 이스라엘의 자손을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대로 큰 민족을 이루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창 21:17) 불리기 위한 특단의 조처를 하셨다. 하나님이 가나안에 7년씩 풍년과 흉년을 주심으로 그 지역 전체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고, 요셉을 통해서 그 해결책을 주셨다. 인간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감옥에 갇혀있던 젊은 히브리 종인 요셉을 이집트 총리의 자리에 앉히는 기적이 일어났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자 야곱의 일가가 이집트에서 환대받게 하시고, 약 70여 명의 야곱의 자식들이 430년 동안(출 12:40) 장정만 60만여 명(출 12:37)이 되도록 하셨다. 여자, 어린이, 노인을 다 합하면 200만 명 정도 되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하늘의 별들, 바닷가의 모래처럼 큰 민족이 되었다.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야곱) 일가가 노예 생활을 하는 동안 이집트에 동화되지 않고 숫자를 크게 늘릴 수 있었던 이유는 땅의 풍요로움도 있지만, 이집트 사람들이 양 치는 사람을 싫어해 가까이하지 않는 점을 하나님이 활용하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는 가나안에서의 유다처럼 이집트에 동화될 가능성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바로가 여러분을 불러 ‘너희들의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주의 종들은 어릴 때부터 가축을 쳤는데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지금껏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양 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창 46:33~34).
이 모든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린 시절 요셉의 두 번 꿈 이야기(창 37:5~1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획하에 시작되고 진행된 약속의 성취이다. 
“한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자기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이 요셉을 더 미워했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꾼 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우리가 밭 가운데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묶은 단이 일어나 똑바로 섰어요. 그러자 형님들의 단이 제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는 것이었어요.’ 형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정말 우리의 왕이 되며 네가 정말 우리를 다스리겠다는 것이냐?’ 형들은 요셉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요셉을 더욱더 미워했습니다. 그 후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세요. 제가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11개의 별들이 제게 절을 했어요.’ 요셉은 형들뿐 아니라 아버지에게도 그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버지가 그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그런 꿈을 꾸었느냐? 그러면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정말 네게 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게 된다는 말이냐?’ 그의 형들은 요셉을 많이 질투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그가 한 말을 마음에 담아 두었습니다.”(창 37:5~11).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요셉에게 두 번의 꿈을 통해서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보여주시고, 형제들의 미움을 사서 이집트 노예로 팔려가게 하셨다. 요셉은 노예로 팔려간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총리가 되어 7년 흉년의 위기관리를 탁월하게 하고 인정을 받았다. 반면 유다는 점점 가나안에 동화되어 내버려 두면 망가질 것을 아시고 7년 흉년 때문에 이집트(힉소스 족 통치 시기)로 내려가 요셉을 만나게 하셨다. 이후 고센 땅에 고립시켜 번성하게 해서 언약을 이루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 고센에서 부족함 없이 번성하다가 말년에 요셉을 모르는 왕(이집트 족)이 힉소스족으로부터 통치권을 회복하자 갑작스레 고난을 만난다. 이스라엘의 인구수에 놀란 왕이 인구증가를 멈추기 위해 노예로 혹사하고, 갓 태어난 사내아기를 죽이는 정책을 편 것이다. 그즈음 가나안 땅에 거하는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출애굽 시켜 가나안 거주민을 진멸하고,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셨다. 이 모든 사건을 연결해 보면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 15:16)
“그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창 15:18~21).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따라가라!
 
이해하기 어렵던 창세기 38장과 41장은 결국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말씀이었다. 창세기 41장의 7년 흉년도 하나님이 주관하신 것이었고, 창세기 38장은 유다를 가나안에서 빼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알려주시는 것이 목적이었다. 출이집트기에 기록된 이집트의 이스라엘 박해와 출이집트 사건도 하나님이 무능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종살이시킨 게 아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번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인도하신 사건이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사건과 상황을 활용하고 연출하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사람의 시선으로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사건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고 계심을 의심치 말아야 한다. 성경 말씀을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무엇이었는지 믿음으로 따라가 보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풀이되는 그 순간 큰 은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강영재 장로(양천공동체, 전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교수)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