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기독문화재'] 오늘, 지금, 당장, 가장 작은 것부터!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기독문화재’
 
오늘, 지금, 당장, 가장 작은 것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신사참배 거부한 ‘강경성결교회’
 
젓갈로 유명한 강경은 돈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부터 근대화의 상징인 은행들이 여럿 들어서 있었다. 강경 근대화거리를 걷다 보면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강경 서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쪽과 북쪽으로는 논산천, 강경천이 시내를 휘감으며 금강에 합류한다. 금강을 따라 들어온 서해바다 새우들이 이곳까지 실려와 젓갈이 되어 나라 곳곳으로 흩어졌다. 군산항으로 들어온 서양 물건들이 강경까지 운반되어 내륙 곳곳으로 팔려나갔다. 그래서 한때는 대구, 평양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내륙시장으로 흥성거렸던 곳이 강경이었다.
강경은 ∩자 지형을 하고 있다. 강경천과 금강이 휘도는 까닭이다. ∩자형 꼭지에는 작은 산봉우리가 있어서 금강이 들이치는 것을 막아준다. 이 산을 옥녀봉이라 한다. 이곳에 오르면 전망이 매우 탁월해 강경 제일 경치를 자랑한다. 일제강점기 이 산에 신사(神社)가 세워졌다. 
옥녀봉 아래에 한옥 교회 한 채가 있다. (구)강경성결교회다. 강경성결교회는 1918년 시작되었다. 이듬해 초대감독이었던 영국인 존 토머스 목사가 강경을 방문했다. 교회 부지를 매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919년이면 3.1만세운동으로 온 나라가 들끓던 때였고, 강경도 만세운동이 한창이었다. 마침 수백 명이 옥녀봉에 모여 강경시내로 행진하고 있었다. 옥녀봉 아래 교회 부지를 둘러보던 토마스 목사 일행은 만세운동에 나선 시민들과 어우러지게 되었다. 만세운동을 진압하던 일제 경찰은 토마스 목사와 일행을 만세 행렬로 착각해 연행하려 했다. 토마스 목사는 여권과 여행증명서를 보여줬으나 경찰들은 그것을 던져버리고 무차별 구타했다. 결국 이 문제는 영국 정부와 일본 정부 간에 외교 문제로 비화되었다. 영국 정부는 5만 불의 배상을 요구했고, 일본은 배상은 하되 토마스 목사의 추방을 요구했다. 토마스 목사는 배상을 안 받아도 좋으니 추방하지 말아 달라고 영국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배상을 받았고, 토마스 목사는 추방되었다. 
토마스 목사는 매 값의 일부를 교회에 헌금해 교회를 짓는데 사용하도록 했다. 그렇게 1923년 36평 한옥 예배당이 지어졌다. 교회는 출입문을 두 개 만들었고, 예배당 안에는 칸막이를 설치해 남녀칠세부동석을 수용했다. 강경성결교회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또 있다. 강결성결교회가 우리나라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교회다.
일제는 한반도 곳곳에 신사를 세웠다. 결정적으로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해 한국 사람의 생각과 종교마저 일본화하려고 했다. 순차적으로 이를 추진하던 총독부는 통제하기 편한 공립학교에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 요구했다. 공립학교에서 신사참배한 이후 일반으로 확대하고, 마지막에는 교회와 기독교계 학교에까지 요구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신사에는 온갖 잡신이 있고, 신궁에는 일본 천황가(家)의 신들이 있다. 신사는 교리도, 경전도 없는 애니미즘적 신앙체계다. 그래서 일제는 종교가 아니라 국가의례일 뿐이라고 회유했다.
1924년 10월 11일 강경 옥녀봉 신사에 강경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신사참배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강경성결교회 집사였던 김복희 교사와 주일학교 학생 57명이 이를 거부했다. 초등학교에서 그것도 공립학교에서 신사참배 거부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서 대서특필했다. 이 사건으로 김복희 교사는 면직되었고, 학생 7명은 퇴학당했다. 일제는 부모들을 설득해 신사참배 시킬 예정으로 학부모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학부형들은 “우리도 조상 제사가 있는데 아이가 교회를 다닌 이후로 제사를 거부해서 때려 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행실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성실해졌다. 공부도 열심히 하니 우리들은 책망할 마음이 없다”라면서 학생들을 옹호했다. 
아이들이 교회 출석 이후 제사를 거부했지만, 부모의 미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지지를 받았다. 아이들의 달라진 모습 때문이었다. 가장 훌륭한 설득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빛과 소금은 구호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지금, 당장, 가장 작은 것부터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강경성결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의 신사참배 거부는 작은 순종에서 시작되었다.
/ 임찬웅 집사(남양주온누리교회, 문화해설사, <강화도(준엄한 배움의 길)> 저자)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