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흑과 백에서 벗어나 '긍정적 회색지대'를 만들어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흑과 백에서 벗어나 ‘긍정적 회색지대’를 만들어라!
 
학생 때 매우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갓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먹했던 고등학교 신입생이었는데 의외로 쉽게 말을 놓고 편하게 지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만나면 즐겁고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의기투합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였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이해해주는 내 편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쉬운 일이지만, 내성적이거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는 무척 어렵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은 학교나 모임에 나가는데 기대감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다. 반대로 좋은 친구가 없다는 것은 함께하는 자리를 피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이기도 한다. 특히 청소년 시기라면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때는 친구가 좋아서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이 다르게 생각하면 그 그룹에 속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는 때가 청소년 시기다. 친구가 특히 중요했던 시기에 마음 통하는 친구를 만났다는 것은 무척이나 든든한 배경이다. 그런데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 마음과 마음이 통했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어느 날 아주 사소한 일로 관계가 틀어졌다. 무슨 일로 관계가 틀어졌는지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먹하게 되었다. 서먹한 정도에서 머물지 않고 알 수없는 이유로 화를 냈고, 결국 말문을 닫았다. 친했던 친구를 향한 모든 호감이 미움과 비호감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작은 친구의 행동이나 말이 아마도 내 마음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심리적 역동으로 인해서 마음의 문을 닫았을 것이다. 친했던 관계가 식어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마음을 닫고 말문을 닫고 어색하게 지내기로 작정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 과정에서 친구의 화해 요청도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몰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차갑게 거절하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불편했던 관계는 회복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청소년 시기 동안 계속 이어졌다.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친했던 친구와의 관계가 끝나버렸다.
부부관계를 포함해서 많은 인간관계에서 마음을 단단히 닫아 버리는 때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종종 자신도 모르게 아주 작은 일이나 어떤 비호감적 특정 사건과 상처가 건드려지는 상대의 행동으로 마음이 순식간에 돌아서기도 한다. 친했던 친구와 관계를 깨뜨리고 차갑게 문을 닫아 버렸던 이유를 한동안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탐색하는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이분법적인 인지오류가 당시 내 심리체계 안에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인지에 많은 오류가 있을 수 있는데 흑과 백, 옳고 그름, 좋은 것과 나쁜 것 등으로 구분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자신을 더 깊은 고통으로 끌고 가는 역기능적 사고가 된다. 한없이 좋았던 친구는 좋음이라는 구분에 포함된 사람이다. 좋은 친구, 한 없이 좋은 내편이라는 인식은 그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갖게 한다. 하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사람은 완전할 수 없다. 그 완전성이라는 것도 상대적일 때가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것이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극히 혐오스러운 것이 될 수 있다. 때문에 한 사람 마음안에 특정 상대가 ‘완벽히 좋은 사람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없다.
좋음이라는 구분선 안에 있었던 친구가 어느 날 실망스러운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심리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 마음에서 두 가지 구분 밖에 할 수 없으면 좋음이라는 쪽에 놓을 것인지, 아니면 나쁨이라는 쪽에 놓을 것인지를 선택 해야 했다. 친했을 때의 친구는 당연히 좋음이라는 구역에 구분지어 놓게 된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어려움과 실망을 주는 사건을 만나면 혼란스러워 진다. 좋음이라고 구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과거를 돌아보면 나에게는 중간 지역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할 수 있는 중간 지역이 없었다. 그래서 좋음이라고 구분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나쁨이라고 구분 짓는 오류를 범했다. 특정 사건 이후에 그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라 나쁜 친구가 되었다. 큰 사건도 아니고 아주 작은 사건과 우연한 계기로 좋았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나쁜 친구가 되었다. 이처럼 흑과 백으로 인간관계를 구분지어 인식하는 것은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되고,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될 수 있다. 청소년기의 인지적 오류로 중요했던 친구와 화해할 기회를 놓쳤다. 좋음에서 나쁨으로 구분 지었고, 관계가 단절이 되었다. 나쁨과 좋음의 중간에 다양한 인식의 완충지역으로 끌고 와서 다시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그때는 터득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흑과 백으로 구분지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인지적 오류에서 어느 정도 자기 객관화와 자기 탐색, 더 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영역을 경험하지 못한 채 결혼하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선택적으로 다시 교류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영역이 있다. 마음에 이미 싫음의 영역, 나쁨의 영역으로 상대를 구분 지었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될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관계다. 결혼한 배우자는 서로에게 분명히 최선의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가까운 관계, 하나 된 관계다. 인지적 차원에서 본다면 ‘좋음’의 영역에 항상 놓고 싶은 사람이 배우자다. 하지만 인간은 항상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어느 날 사소한 일로 배우자가 매우 실망스러워 보일 수 있다. 좋음에 있어야 할 사람을 자신도 모르게 심리적으로 ‘나쁨의 영역’에 놓기도 한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싫어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쉽게 내뱉기도 한다. 관계에는 때로 좋음과 나쁨의 영역도 있지만, 어쩌면 보다 넓은 중간 지역, 즉 ‘긍정적 회색지역’이 필요하다. 그래야 배우자를 더 이해하고, 더 좋은 관계의 성숙을 가져올 수 있다. 흑과 백의 인지적 오류에서 회복되는 사람은 배우자의 ‘긍정적 회색지대’를 더 많이 수용하게 된다. ‘그럴 수도 있지’, ‘당신은 다른 판단을 하구나’ 등 더 여유 있게 서로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배우자를 흑백으로 구분하기보다 더욱 통합적으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이 결혼을 성숙으로 이끌어 가는 길이다. 예수님을 부인했던 제자들의 행동은 ‘나쁨’이었지만, 이 모든 것까지 용서하고 제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을 결혼생활에서도 본받아야 한다(요 18:25~27, 요 21:15~17).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그런 당신이 좋다> 저자)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