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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자본주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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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기반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기독교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국부론>을 집필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종교개혁으로 일어난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배출한 신학자이다. 그는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하면서 국부론에 앞서 <도덕 감정론>을 출판하며 유명해졌다. 자본주의의 기본 사상인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성경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선한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 기반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자. 인간은 이기심과 이타심 모두를 가지고 있다. 이기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적 이기심’과 모든 사람이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사익적 이기심’이 있다. 범죄적 이기심에 대해서는 형법, 감사 등의 제도를 만들어 조직원을 보호하는 장치를 둔다. 사익적 이기심은 계약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진하는 시장제도를 통해 공익적 요소와 일치시킬 수 있다. 이타심은 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확산될 때 그 순수성을 유지한다. 예컨대, 신앙과 봉사를 법률로 정한다면 그 정신은 사라진 채 행위만 하는 연극배우들을 양산하게 됨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이타심과 이기심 그리고 범죄적 이기심과 사익적 이기심을 혼동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유럽에서 성경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 정치시스템과 함께 시장경제 기반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발전했다. 이는 농업 경제시스템으로 인한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거대한 전환을 이끌었다. 반면, 무신론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착취구조’라고 비판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부정했다.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는 하향 평준화로 더 큰 빈곤의 나락으로 이끌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 기독교적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아래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우리는 이타심이 아니라 사익적 이기심이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풍요는 시장경제 기반의 분업화 구조에서 참여하는 각 사람이 쏟은 노력의 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기독교적인 직업윤리를 기반으로 흘리는 땀이 위대한 경제를 만드는 기초이다. 우리는 봉사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를 하는데, 각자 직업에서 쏟는 최선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하고 있지 않은가? 봉사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가 풍요의 시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둘째, 독재적인 지도자와 함께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에 대한 경계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독재적인 CEO와 함께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를 위험한 인물로 본다. 투자자들은 독재적인 CEO를 금방 알아볼 수 있어서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서서히 갉아먹는 이타적인 CEO가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 이는 정치에도 적용된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국민의 자유를 서서히 갉아먹는 선한 것처럼 보이는 무능한 정치 지도자가 독재자 못지않게 위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독재와 무능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기독교적 독립을 견지해야 한다.
셋째,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와 함께 기독교적 자본주의 정신은 독점으로부터 보편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학교의 탄생은 문자의 독점을 깨고 대중 지식을 보편화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의 독점을 깨고 국민주권으로 권력을 보편화했다. 주식회사 제도는 왕족과 귀족의 자본 독점을 깨고 일반 대중이 자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편화했다. SNS는 정보와 뉴스의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독점을 깨고 모든 대중이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독점이 깨어지고 보편화 되면서 일반 대중의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는 늘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는데, 집단지성으로 시장에서 새로운 지식이 형성되면서 더욱 효율적으로 자원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는 이러한 지식 생산이 어려워서 지식의 빈곤함으로 실패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미국의 반독점법이 있다. 이는 석유 시장의 스탠다드 오일, 담배 시장의 아메리칸 토바고, 전화시장의 AT&T 등 독점적인 큰 기업을 몇 개의 작은 기업들로 분리하는 근거이다. 이는 정부나 기업이 커지면 권력과 자원의 독점이 가능해져 개인의 자유를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언급한다. 하나님은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한다. 이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기득권을 위한 정치와 경영과 교육과 목회가 아니라 일반 대중과 서민을 위한 정치와 경영, 교육과 목회를 요구한다. 정치와 경제, 교육과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성경이 요청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정신은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와 선교로 이어진다.
/ 박성진 교수(OCC공동체, 포스텍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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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기반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은 기독교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혁신적인 개념을 소개하고, <국부론>을 집필한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종교개혁으로 일어난 스코틀랜드 장로교가 배출한 신학자이다. 그는 대학에서 도덕철학을 강의하면서 국부론에 앞서 <도덕 감정론>을 출판하며 유명해졌다. 자본주의의 기본 사상인 시장경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성경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우선한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성경에 기반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자. 인간은 이기심과 이타심 모두를 가지고 있다. 이기심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적 이기심’과 모든 사람이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사익적 이기심’이 있다. 범죄적 이기심에 대해서는 형법, 감사 등의 제도를 만들어 조직원을 보호하는 장치를 둔다. 사익적 이기심은 계약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추진하는 시장제도를 통해 공익적 요소와 일치시킬 수 있다. 이타심은 문화적인 활동을 통해 확산될 때 그 순수성을 유지한다. 예컨대, 신앙과 봉사를 법률로 정한다면 그 정신은 사라진 채 행위만 하는 연극배우들을 양산하게 됨을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이타심과 이기심 그리고 범죄적 이기심과 사익적 이기심을 혼동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유럽에서 성경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자유민주주의 정치시스템과 함께 시장경제 기반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이 발전했다. 이는 농업 경제시스템으로 인한 빈곤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거대한 전환을 이끌었다. 반면, 무신론을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착취구조’라고 비판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부정했다.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는 하향 평준화로 더 큰 빈곤의 나락으로 이끌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한 기독교적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아래 세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우리는 이타심이 아니라 사익적 이기심이 풍요의 시대를 열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풍요는 시장경제 기반의 분업화 구조에서 참여하는 각 사람이 쏟은 노력의 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자신의 자리에서 기독교적인 직업윤리를 기반으로 흘리는 땀이 위대한 경제를 만드는 기초이다. 우리는 봉사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를 하는데, 각자 직업에서 쏟는 최선에 대해서는 과소평가를 하고 있지 않은가? 봉사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봉사가 풍요의 시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둘째, 독재적인 지도자와 함께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에 대한 경계이다. 자본주의에서는 독재적인 CEO와 함께 시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CEO를 위험한 인물로 본다. 투자자들은 독재적인 CEO를 금방 알아볼 수 있어서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투자자들의 투자금을 서서히 갉아먹는 이타적인 CEO가 더 큰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 이는 정치에도 적용된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국민의 자유를 서서히 갉아먹는 선한 것처럼 보이는 무능한 정치 지도자가 독재자 못지않게 위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독재와 무능에서 벗어나기 위해 늘 하나님께만 순종하는 기독교적 독립을 견지해야 한다.
셋째, 프로테스탄트 직업윤리와 함께 기독교적 자본주의 정신은 독점으로부터 보편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학교의 탄생은 문자의 독점을 깨고 대중 지식을 보편화했다. 자유민주주의는 권력의 독점을 깨고 국민주권으로 권력을 보편화했다. 주식회사 제도는 왕족과 귀족의 자본 독점을 깨고 일반 대중이 자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편화했다. SNS는 정보와 뉴스의 기존 레거시 미디어의 독점을 깨고 모든 대중이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독점이 깨어지고 보편화 되면서 일반 대중의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는 늘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는데, 집단지성으로 시장에서 새로운 지식이 형성되면서 더욱 효율적으로 자원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는 이러한 지식 생산이 어려워서 지식의 빈곤함으로 실패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미국의 반독점법이 있다. 이는 석유 시장의 스탠다드 오일, 담배 시장의 아메리칸 토바고, 전화시장의 AT&T 등 독점적인 큰 기업을 몇 개의 작은 기업들로 분리하는 근거이다. 이는 정부나 기업이 커지면 권력과 자원의 독점이 가능해져 개인의 자유를 갉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언급한다. 하나님은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고 말씀한다. 이는 독점적인 지위를 가진 기득권을 위한 정치와 경영과 교육과 목회가 아니라 일반 대중과 서민을 위한 정치와 경영, 교육과 목회를 요구한다. 정치와 경제, 교육과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성경이 요청하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정신은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도와 선교로 이어진다.
/ 박성진 교수(OCC공동체, 포스텍교수)
작성자 박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