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하나님의 형상] 생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살아가기-하나님의 형상]
 
생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소속된 공동체 다락방 지인의 부모님 중 한 분이 와상상태 또는 중증 질병으로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계신다. 그분도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가진 소중한 이웃이자 어른 아닌가? 임산부 몸속에 있는 8주 된 태아도 소중한 생명 아닌가?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다. 생명은 모두 존엄한 인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형사소송법은 살인 혐의로 구속되어 수사 대상인 사람에 대해서도 형사피의자로서 변호인 선임권과 진술거부권을 부여한다.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인간관이라 한다. 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과도 연결된다. 먼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에 따른 피조물이지만, 죄로 인해 타락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는 대상이라는 관점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대속에 근거한 회복을 강조하는 기독교적 인간관이다. 이 인간관은 실정법이 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연법(natural law)사상, 인간의 존엄성, 인권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그 결과 미국과 영국의 노예제 폐지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인간의 죄악성을 정확히 인지해 국가 권력 시스템에서 권력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을 중시하는 권력 분립 원리에도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선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덕을 수양하고 신분이나 지위에 따른 적절한 역할 수행을 하도록 교육받을 것을 강조하는 세계관은 유교적 인간관에 연결된다. 개인의 도덕 함양을 목표로 군자와 소인을 구분했다. 지도자의 덕성 함양과 군자론을 통치의 기반으로 하였다. 하지만 실정법의 문제나 견제와 균형에 기반한 권력 분립 원리에 대한 시각이 부족해 강압적 통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는 유교적 인간관은 신분제도 유지에 영향을 주었다.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인간의 죄성에 대한 통찰이 깊지 않음을 드러낸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을 물질 내지 동물의 하나로 보는 현대의 무신론, 자연주의적 세계관에 기반한 인간관은 어떤가? 사람이 그 자체로 고결한 존재라는 인식이 부족하며, 생명의 희생도 때에 따라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신의 창조 섭리에 도전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에 하나님에 대한 반항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신론에 기반한 인간관에서는 인간 존중의 개념이 약하기 때문에 태아의 생명 존중, 장애인의 인권, 형사피의자, 피고인의 권리에 대해 기독교적 인간관과 같은 수준의 강조는 어렵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신체의 변형이라도 수용할 수 있다고 본다. 요즘 기독교적 인간관에서 수용 불가한 사회의 기반인 양성에 따른 혼인, 가족제도와 충돌하는 동성애에 기반이 되는 ‘젠더주의’, ‘트랜스젠더리즘’에는 오히려 개방적이다.
여성성을 가진 남성 또는 남성성이 강한 여성 주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이들 중 자신의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되는 성별에 속하기를 원하면서 자기 육체를 바꾸고자 하는 욕망을 계속 추구해 가는 이들이 있다. 이는 종래 ‘젠더정체성 장애’(gender identity disorder)라는 정신장애였으며 통상적으로 ‘트랜스젠더’라 불렀다. 그런데 성소수자 인권운동으로 ‘젠더불쾌증’(gender dysphoria)으로 변경되었다. 이제 젠더불쾌증을 ‘정상’으로 보면서도 그들이 원한다고 해서 의료보험으로 그 비싼 성전환 수술을 해 주려 한다. 그러나 반대 성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의 장기적 부작용과 합병증은 의학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무엇보다 이들은 영구 불임을 초래하고, 성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며, 평생 수술 후유증에 대한 외과적 관리와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의) 인권이 보장받아야 함을 주장하며 성전환 수술 없이 법적 성별 변경을 허용하는 판결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모임이 차단되던 시기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법원에서 트랜스젠더에 관한 전시가 열려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수술 없는 성별 정정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읽으면 인권적 관점에서 성별의 전환을 허용하게 될 때 나타날 사회 내 부작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거나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언급한다. 소위 ‘트랜스젠더리즘’(transgenderism)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태어난 남녀로 보는 기독교적 인간관과 충돌된다. 주어진 질서에 대한 순응을 중시하는 유교적 인간관과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신론적 인간관에서는 큰 무리가 없다. 이는 대리모, 정자 기증, 난자 기증에도 마찬가지다. 생식 기술을 폭넓게 사용해 나타나게 될 자녀의 혼란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자녀를 잘 교육한다면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이렇게 태어나 성장하는 이들은 생물학적 부모에 의해 태어나 자라난 이들에 비해 여러 면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놓임을 보여준다.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모의 선택에 대해서는 무신론적 인간관뿐만 아니라 유교적 인간관도 모의 선택권을 옹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생명의 기반이 형성된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잉태되었음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인간관만이 태아의 생명권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중증 장애나 질병을 앓는 이들에 대한 안락사에 대해서도 생명 그 자체에 소중함을 인정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가장 반대 목소리를 높이며 섬김으로 나서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자녀를 출생하고, 이들을 교육하고, 연약한 이들에 대해 돌봄을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은 기독교 세계관에서만 제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을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하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한 인간관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반향이 큰 이유이다.
/ 이상현 집사(강남E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