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Issue) 바로보기!] 인간의 신성을 짓밟는 물질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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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성을 짓밟는 물질주의
인간의 신성을 짓밟는 물질주의
나는 직업상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돈 꾸러 다니느라 정신없는 중소기업 사장님, 빚에 내몰려 파산을 앞둔 자영업자도 있다. 사람이 겪는 갖가지 시련 중에서 뼈가 시릴 정도로 힘든 게 ‘빚 독촉’이란 말을 가끔 듣는다. 사실 돈 없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돈이라는 명제로부터 행복과 자유를 지키는 것은 상당히 절실한 과제다. 특히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연결이 끊어졌다면 말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건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요즘 한국은 돈의 가치를 극대화하다 못해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경향마저 도드라진다. 그야말로 돈을 숭배하는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가치나 진리까지 압도하니 말이다. 심지어 한국인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를 묻는 말에 ‘물질적 풍요’를 택했다. 그렇다. 돈이 많은 사람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 사탄은 ‘돈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속삭인다.
다만, 성경은 ‘부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과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것’을 엄하게 질책하고,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한다. 돈의 숭배는 하나님과 이웃이란 가장 고귀한 두 개의 관계를 망쳐놓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망각하고, 이웃을 멸시하게 만든다.
지금 유행하는 물질주의는 ‘인간을 무엇으로 보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신의 형상’으로 보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한데 인간은 하나님의 요청을 거부하고, 인간의 신성을 최대한 배격해 왔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복잡한 동물’로 낮추었고, 양심과 죄, 영혼과 같은 용어들을 구식으로 치부했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유물론을 주창했고, 다윈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시행착오를 거친 우연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요즘엔 ‘인간과 동물 모두 평등한 사회로 전환하라’는 슬로건도 내건다. 사람이 동물과 차이가 없다는 진화론의 귀결이다. 급기야 트랜스 휴머니즘이란 이름으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한 신인류 탄생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하시는데, 세상의 이론들 특히 사탄의 책략은 인간을 동물과 기계, 때론 동물보다 못한 잔인한 존재로 끌어내린다. 이 힘겨룸이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극단적으로 갈라놓는다. 인간을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라는 목표를 가진 신의 대리통치자’로 볼 건지,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여길 건지 두 관점의 영적 전쟁이 지금도 치열하다.
때로 하나님은 돈의 숭배를 무너뜨리는 극단적 개입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의 스토리를 봐도 그렇다. 자기 아들들을 불 속에 넣어 인신 제사까지 드렸던 악한 왕의 대명사로 불렸던 므낫세가 말년에 극적으로 회심한다. 코에 고리를 꿰고 청동 사슬에 묶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게 계기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국에 돌아온 므낫세는 바알과 아세라 바로 ‘성공과 번영의 우상’을 없애버린다. 므낫세를 권력과 부의 자리에 놔두지 않으시고 청동 사슬로 묶어버린 건 엄청난 사랑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간에 대한 열등한 관점이 물질주의를 조장하고, 물질주의는 인간의 신성을 짓밟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확실한 단기적 보상이 중요할 뿐, 희생과 책임마저 혐오스러운 단어로 치부하고, 나의 가치마저 돈으로 치환해 버린다. 기껏해야 돈과 성공에 도취한 삶이 인생이 최종 목적지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 돈을 선택하는 순간, 인간의 영혼은 나락에 추락하고, 돈이 유일한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다.
그렇다면 돈을 추구하는 현대적 광기를 제어할 방법이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열등한 관점을 털어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나락에 추락한 인간 수준을 한껏 끌어올리고, 존재로 대우받는 존엄성을 회복하자. 그러면 돈을 포함한 모든 자원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다음에 필요한 건 ‘사람 나라 질서’와 ‘하나님 나라 질서’의 거대한 반전이다. 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주소를 옮기는 결단 말이다. 우리 모두 맘몬의 감옥을 부수고,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연결로 들어가자. 하나님은 바로 여기 계시고, 천국의 삶은 지금 내 앞에 있다.
/ 이은경 변호사(OCC공동체.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대표이사)
요즘 한국은 돈의 가치를 극대화하다 못해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경향마저 도드라진다. 그야말로 돈을 숭배하는 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가치나 진리까지 압도하니 말이다. 심지어 한국인은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를 묻는 말에 ‘물질적 풍요’를 택했다. 그렇다. 돈이 많은 사람은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는 존재’로 보인다. 사탄은 ‘돈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속삭인다.
다만, 성경은 ‘부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것’과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것’을 엄하게 질책하고,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경고한다. 돈의 숭배는 하나님과 이웃이란 가장 고귀한 두 개의 관계를 망쳐놓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망각하고, 이웃을 멸시하게 만든다.
지금 유행하는 물질주의는 ‘인간을 무엇으로 보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신의 형상’으로 보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한데 인간은 하나님의 요청을 거부하고, 인간의 신성을 최대한 배격해 왔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복잡한 동물’로 낮추었고, 양심과 죄, 영혼과 같은 용어들을 구식으로 치부했다. 마르크스는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을 결정한다’는 유물론을 주창했고, 다윈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시행착오를 거친 우연의 결과물’에 불과하다고 단언했다. 심지어 요즘엔 ‘인간과 동물 모두 평등한 사회로 전환하라’는 슬로건도 내건다. 사람이 동물과 차이가 없다는 진화론의 귀결이다. 급기야 트랜스 휴머니즘이란 이름으로 인간과 기계의 결합을 통한 신인류 탄생을 주장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하시는데, 세상의 이론들 특히 사탄의 책략은 인간을 동물과 기계, 때론 동물보다 못한 잔인한 존재로 끌어내린다. 이 힘겨룸이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를 극단적으로 갈라놓는다. 인간을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라는 목표를 가진 신의 대리통치자’로 볼 건지,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 몸부림치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여길 건지 두 관점의 영적 전쟁이 지금도 치열하다.
때로 하나님은 돈의 숭배를 무너뜨리는 극단적 개입을 마다하지 않으신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의 스토리를 봐도 그렇다. 자기 아들들을 불 속에 넣어 인신 제사까지 드렸던 악한 왕의 대명사로 불렸던 므낫세가 말년에 극적으로 회심한다. 코에 고리를 꿰고 청동 사슬에 묶여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게 계기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국에 돌아온 므낫세는 바알과 아세라 바로 ‘성공과 번영의 우상’을 없애버린다. 므낫세를 권력과 부의 자리에 놔두지 않으시고 청동 사슬로 묶어버린 건 엄청난 사랑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인간에 대한 열등한 관점이 물질주의를 조장하고, 물질주의는 인간의 신성을 짓밟는다는 점이다. 오로지 확실한 단기적 보상이 중요할 뿐, 희생과 책임마저 혐오스러운 단어로 치부하고, 나의 가치마저 돈으로 치환해 버린다. 기껏해야 돈과 성공에 도취한 삶이 인생이 최종 목적지다. 그러나 하나님 대신 돈을 선택하는 순간, 인간의 영혼은 나락에 추락하고, 돈이 유일한 힘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천국의 문이 굳게 닫혀버린다.
그렇다면 돈을 추구하는 현대적 광기를 제어할 방법이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열등한 관점을 털어내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나락에 추락한 인간 수준을 한껏 끌어올리고, 존재로 대우받는 존엄성을 회복하자. 그러면 돈을 포함한 모든 자원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다음에 필요한 건 ‘사람 나라 질서’와 ‘하나님 나라 질서’의 거대한 반전이다. 나의 왕국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주소를 옮기는 결단 말이다. 우리 모두 맘몬의 감옥을 부수고,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연결로 들어가자. 하나님은 바로 여기 계시고, 천국의 삶은 지금 내 앞에 있다.
/ 이은경 변호사(OCC공동체.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사단법인 크레도대표이사)
작성자 박지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