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낮아짐의 용기, 겸손의 가치

신앙에세이
 
낮아짐의 용기, 겸손의 가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익어가는 벼의 무게만큼 깊어지는 삶의 태도는 아마도 ‘겸손’일 것이다. 세상도 교회도 겸손을 귀한 덕목이라 외치지만, 막상 그 의미를 ‘내 삶’으로 풀어내려 하면 선뜻 말이 나오지 않는다. 주변에서 ‘진짜 겸손한 사람’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로 겸손을 ‘겸손한 척’으로 오해한다. 차세대에서 청소년들을 섬기며 학생들과 겸손에 관해 이야기 나누다 보면 그 오해가 더욱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하고도 막상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는 “아니야, 나 정말 못했어”라며 손사래를 치고, 누군가에게 칭찬을 들으면 “에이, 아니야”라며 고개를 돌린다. 그것이 학생들이 그동안 보고 느꼈던 겸손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사실도 마치 아닌 것처럼 축소해서 이야기하고 다가오는 칭찬을 거부하며 속으로는 ‘역시 난 오늘도 겸손했어’라며 스스로를 토닥이지만, 진실로 고개를 숙인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진심 없는 겸손은 자존감을 갉아먹고, 결국 나도, 세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한다. 어떤 이는 차라리 겸손을 포기한 채 ‘내가 제일 중요해’라며 우뚝 서기도 한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주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 중 하나는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라며 은밀히 청한다. 한마디로 예수님의 오른팔과 왼팔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다. 이 소식을 들은 다른 제자 열 명이 분개했다. 그들이 화난 이유는 간단하다. 야고보와 요한만 높은 자리를 원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중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겸손은 자기를 깎아내리는 연기가 아니라 다른 이를 높이는 선택이었다. 겸손은 자기비하가 아니라 존중과 사랑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셨다.
<요한복음> 13장에서는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다. 유대 사람들이 외출 뒤에 반드시 하는 것 중 하나가 발을 씻는 것이다. 발이 드러나는 샌들을 신고 다니는 유대 사람들의 발은 언제나 흙먼지로 쉽게 더러워졌기 때문이다. 외출 후 더러워진 발을 씻기는 일은 늘 노예들의 몫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겨주시고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낮아지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셨기 때문이다. 발을 씻긴다고 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섬김을 받는다고 더 위대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진리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제자들의 가치를 일깨웠고, 그들도 이 사랑을 세상에 전하라고 초대하셨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 진짜 겸손은 하나님 안에서 내 존재의 가치를 확신할 때 가능하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유롭게 타인을 섬길 수 있고, 흉내가 아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일 수 있다. 그런 삶은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향기가 된다. 
우리는 공동체와 사역팀별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다양한 지역과 국가로 나아가기도 한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면서도 제자들이 그러했듯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가 어느 순간 자리할 수 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섬김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신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벼가 익으면서 고개를 숙이듯, 우리 역시 사랑 안에서 익어갈 때 자연스레 낮아질 수 있다. 낮아짐은 패배가 아니라 용기이며, 섬김은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유다. 오늘도 그 자유 안에서 누군가를 높이고, 겸손이라는 이름의 씨앗을 세상에 심자. 당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풍성한 수확이 되리라 믿는다.
/ 김은혜 목사(양재차세대)

작성자  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