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편견을 넘어선 순종

신앙에세이
 
편견을 넘어선 순종
 
우리는 살아온 문화적 배경과 개인의 경험에 따라 자연스럽게 ‘편견’을 갖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기를 포기할 때 편견으로 상대를 쉽게 판단하게 된다. 상대가 내린 선택의 정황과 맥락을 숙고하는 일은 품이 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판단은 쉽지만 사랑은 어렵다. 분리는 쉽지만 하나 됨은 어렵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 같다(요 17:23). 
얼마 전, 베드로와 고넬료 이야기를 묵상하며 받은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여러 기적을 일으켰다. 8년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애니아의 중풍병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유하고, 병들어 죽은 다비다를 믿음의 선포로 살려냈다. 베드로는 신앙으로 불치병과 죽음의 문제를 단번에 극복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가 낮 12시에 지붕에 올라가 기도한다. 당시 유대 전통에는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관습이 있었다. 베드로 역시 그 관습을 따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믿음 좋고, 능력도 있으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지붕에서 기도하던 중에 베드로가 환상을 보게 된다. 하늘이 열리고 온갖 종류의 짐승과 새들이 담긴 바구니가 내려왔다. 하나님이 바구니를 보고 있는 베드로에게 “일어나 잡아 먹어라”고 명령하신다.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저는 불결하고 더러운 음식은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행 10:14).
믿음 좋고, 능력도 있으며, 기도도 많이 하는 베드로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했다. 성경은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었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자신이 살아온 배경과 경험에서 형성된 편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세 번이나 거절했다. 그는 믿음과 능력으로 질병과 죽음의 문제를 단번에 극복했지만, 편견의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하나님의 세 번에 걸친 경고와 설득이 필요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베드로의 편견에는 율법에 대한 충성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율법에 순종하려는 그의 진심이 편견이 되었을 때 율법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거절하게 되었다. 마치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잘하고자 하는 진심을 가지고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편견은 우리도 모르게 자기 자신을 준행자가 아닌 심판자로 만든다(약 4:11). 우리를 하나님의 자리에 오르게 한다.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인간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실감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자리는 편견을 넘어서 순종하는 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내가 모르게 품고 있는 편견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하지만 편견이란 ‘그것이 편견인지 모른다는 점’에서 스스로 인식하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편견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이 말씀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롬 13:9). 
편견을 넘어서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을 때’ 가능하다. 편견은 우리를 심판자로 만들어 서로 판단하게 하고 분리시킨다, 하지만 사랑은 우리를 준행자로 만들어 서로 관용하고, 연합하게 한다. 
편견은 예수님 앞에 선 나의 이웃을 ‘불결하다’면서 그가 깨끗해지면 받아들이겠다는 조건을 달게 한다. 반면 사랑은 예수님 앞에 선 나의 이웃을 존귀하게 대하고, 그의 부족함보다 크신 예수님의 은혜를 믿고 중보하게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의 모든 편견에서 자유롭기를 소망한다. 
/ 이호준 목사(양재 차세대 파워웨이브)

작성자  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