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믿으면 참으로 믿고, 나라를 사랑하거든 참으로 사랑하라“
믿음의 선배를 찾아서- 전덕기 목사
“주를 믿으면 참으로 믿고, 나라를 사랑하거든 참으로 사랑하라“
삼일절 새벽. 양재 온누리교회 기쁨홀에 이른 시간부터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Wake up Korea’를 주제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다. 온누리교회는 매년 삼일절에 구국기도회를 개최하고 있다. 삼일절을 보내면서 소개하고 싶은 믿음의 선배가 있다. 한국교회 최초 구국기도회를 시작한 인물이다. 전덕기 목사. 그의 애절한 나라사랑 이야기다.
상동교회와 전덕기 목사
한국교회 최초 구국기도회는 상동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전덕기 목사가 중심이었다.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전덕기 목사(1875~1914)는 스크랜턴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 상동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민중목회에 사명이 있는 청년들을 모아 상동청년회를 조직했다. 독립협회에도 가입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 이듬해 을사밀약 파기 상소를 내고 시위를 하며 민중을 일깨웠다. 일본군의 진압으로 실패로 끝났지만 이때부터 상동교회는 민족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상동교회에는 애국지사들이 모여 매일 구국기도회를 열렸다. 전덕기 목사는 인재를 양성하고 민중을 계몽하는데 힘을 쏟았다.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하기도 했다. 정식 초청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점점 심해지는 일제의 탄압으로 전덕기 목사가 속해있던 신민회는 해외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며 항일운동을 준비했다. 일본은 항일운동의 싹을 자르기 위해 105인 사건(총독암살미수사건)을 조작했다. 이 사건으로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의 실체가 드러났다. 신민회는 일제에 의해 지도부가 와해되었다. 1913년 일제의 방해로 상동청년학원까지 문을 닫게 되었다. 이미 그의 몸은 쇠약해져 있었다. 39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빚을 진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에 모여 추모했다.
짧지만 누구보다 의미 있게 살다간 전덕기 목사. 그의 삶을 보면서 지금을 얼마나 소중하게 보내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본다. “주를 믿으면 참으로 믿고, 나라를 사랑하거든 참으로 사랑하라고” 설교하던 그의 메시지가 귀가를 맴돈다.
/박잎새 기자 leaf@onnuri.org
작성자 조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