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신앙으로 물들다 – 인천편
대한민국 선교의 관문 인천
초기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1883년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인천은 육상교통과 해상교통을 이어주는 요충지가 되었다. 각국의 상공업 시설과 종교, 교육, 문화 시설들이 설립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제물포를 통해 대한민국 최초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것이 한국 개신교 선교의 시작이었다.
제물포와 내리교회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는 제물포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 아침, 일본에서 이수정이 번역한 한글성경을 안고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들이 제물포에 도착했을 때 한국은 정치, 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외국인 여성이 자유롭게 생활하기 어렵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독신 선교사 언더우드는 서울로 올라가 광혜원을 운영하던 알렌의 집에 머물렀다. 아펜젤러 부부는 내리교회 주변에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가정예배를 드리고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관찰했다. 그러면서 한국 선교에 대한 비전을 그려 나갔다. 그것이 한국 감리교회의 씨앗이 되었고,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전개된 인천, 강화지역 선교의 싹이 되었다.
1891년 아펜젤러는 ‘웨슬리기념교회’라는 이름으로 예배당을 짓는다. 6칸으로 된 단층 건물이었는데 바깥은 하얗고, 지붕은 일본식이었다. 이것이 후일 내리교회로 발전하였다. 1901년 웨슬리기념교회는 십자 모양을 지닌 서구식 건물로 다시 지어진다. 남녀신도의 자리를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칸막이를 최초로 없앤 교회이기도 하다. 현재 내리교회는 1987년 신축한 ‘선교100주년기념성전’이다.
아펜젤러는 순직하기까지 교육과 선교의 초석을 놓았다. 1888년 아펜젤러의 후임으로 온 존스 선교사는 빼어난 한국어 실력을 뽐냈다. 내리교회를 거점 삼아 교육, 선교, 행정, 출판, 이민, 학술, 연구 등에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1901년 한국인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은 김기범은 제물포 선교의 첫 열매이다.
현재 내리교회 2층 입구에는 아펜젤러(초대 담임목사), 존스(2대 담임목사), 김기범(한국인 최초의 목사이자 3대 내리교회 담임목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3층 역사전시관에는 교회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유물과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인천시 중구 내동 29번지)
초기 선교사들 흔적 고스란히 남아
영화 초등학교 건물과 영화 여자정보고등학교 건물사이에 영화학교 본관동이 있다. 영화초등학교는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학교이다. 내리교회 2대 담임목사 존스 목사와 결혼한 마거릿 벤젤이 내리교회에서 여자 어린이를 교육한 것이 영화학당의 시초가 되었다. 벤젤 여사가 자신의 집을 오픈해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우리나라 최초 서구식 초등교육기관 ‘영화초등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최초의 여성 박사 김활란, 유아교육의 개척자 서은숙 박사, 이화여대의 김애마 학장, 영화배우 황정순 등이 모두 영화학교 출신이다.
1910년 3월 준공된 이 건물의 내부는 전형적인 주일학교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구조는 반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구성된 맞배지붕구조이며, 3층 발코니는 인(人)자형태로 내부에 서까래를 노출시켰다. 3층은 예배실이다. 십자형 평면으로 계획하여 종교적 의미를 가미시켰다. 영화초등학교는 1911년 지금의 자리에 신축하고 이전했다.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인천 유형문화재 제 3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시 동구 우각로 44)
영화 초등학교에서 동남쪽으로 100m정도만 가면 옛 여자 선교사들이 사용한 숙소가 나온다. 당시 창영동은 미국 감리교 한국서(西)지방 선교기지로, 남녀 선교사들의 생활공간이 이었다. 지금은 ‘창영사회복지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미국 감리교에서 파견한 여선교사들의 합숙소로 사용했던 사택이었다. 복지관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나오는 인천세무는 당시 남자 선교사들의 숙소로 사용된 장소다. 창영사회복지관 건물은 빨간 벽돌로 근세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다. 내부 1층은 큰 방으로 되어 있고, 2층은 여러 개의 골방으로 선교사들이 쉴 수 있는 구조였다. 인천 유형문화재 제 18호에 지정되어 있다. (인천시 동구 창영동 42-3)
내리교회에서 비탈길을 따라 서쪽으로 5분 정도 올라가면 성공회 내동교회가 나온다. 1890년 종국신부 코르페(고요한 주교)와 내과의사인 랜디스가 인천에 도착하면서 성공회 선교가 시작된다. 고요한 주교는 현재 인성여자고등학교 체육관 뒤에 있던 교회를 중심으로 포교에 전념하고, 랜디스 선교사는 현재 자리에 성누가 병원을 개설하고 의료구호사업에 전념하며 교세를 확장했다. 건물의 형태는 외벽을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다. 교회 앞에는 영국병원이라고 쓰여 있는 비석과 의학박사 엘리바랜디스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인천시 중구 내동 3번지)
‘선교 인천’을 꿈꾸다
“오늘 사망의 빗장을 부수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1885년 4월 5일, 아펜젤러의 제물포 도착 보고서 내용이다. 1986년, 기독교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며 인천항이 보이는 작은 언덕에 공원과 100주년기념탑이 세워졌다. 탑 중앙에는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 선교사 형상이 세워져있고, 탑신 각면에는 당시 우리 한국 민중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탑 위에 있는 종은 바다를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초기 선교사들의 아름다운 선교역사를 통해 인천이 한반도 전역에 복음을 흘려보내는 선교의 관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인천은 국제공항, 경제자유구역 지정, 2014년 아시안 게임 등을 통해 알려지고 성장하고 있다.
과거 선교의 통로로 사용된 지역인 만큼 앞으로도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 열정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른 지역보다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앞장서는 ‘선교 인천’이 되기를 소망한다.
/ 조은실 기자 ces@onnuri.org
인천 기독교 유적지 탐방 일일 코스
영화초등학교->창영교회->내리교회->성공회 내동교회->한국선교 백주년 기념탑
(이 외에도 인천 기독병원, 국제성서박물관, 한국선교역사 기념관 등이 있다)
*근처 가볼만한 곳
월미도: 육지와 이어진 섬으로, 문화예술 공연과 월미 축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소래포구: 작은 어촌을 이루고 있다. 각종 젓갈류, 꽃게, 어시장으로 유명하다.
차이나타운: 중국식 거리로, 조선 시대 말기부터 만들어졌다. 자장면이 이곳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 (위에서부터)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내리교회 앞에 놓여있는 아펜젤러(초대 담임목사), 존스(2대 목사), 김기범(3대 목사 흉상, 성공회내동교회, 영화초등학교, 창영사회복지관
작성자 조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