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사역

한국사회는 왜 교황에게 열광하는가?

권위 탈피, 약자들을 찾아 섬기는 낮은 자세에 감동
기독교, 무너진 신뢰 회복 과제 … “회개하고, 소외된 자 섬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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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한민국에 유난히 슬픈 일들이 많았다. 세 모녀 자살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 참담한 사건사고들을 접한 국민들의 마음이 아픔으로 얼룩졌다. 사건을 예방하고 수습해야할 관료들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정치인들은 무능했다. 슬픔에 잠긴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리더도 없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기독교도 제 역할 을 하지 못했다. 그런 때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다.
교황이 한국에 머문 나흘 동안 보여준 행보는 국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가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이 교황에게 열광했다. 겸손하고 청빈한 이미지와 낮은 자세로 섬기는 모습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광화문에서 카퍼레이드 하던 중 세월호 침몰 사고 가족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진심으로 위로했다. 위안부 피해자, 쌍용차 해고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새터민들도 보듬고 껴안았다. 시종일관 낮은 자세로 섬기는 교황의 태도에 한국사회는 큰 감동을 받았다. 그의 말과 행동은 하나였다. 
/ 특별취재팀(정지은, 조은실 기자)
한국사회가 큰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기독교는 무엇을 했나? 과연 한국사회가 교회로부터 위로를 받았을까?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설문결과가 있다. 기독교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체 한국교회는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목회자 윤리 의식 결여, 교회 세습 문제 등 대형교회들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매스컴에 보도되면서 기독교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특정사건에 의한 것만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에서 실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도가 20%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네 번에 걸쳐 실시한 설문결과가 모두 그렇다.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낮은 것은 특정사건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 신뢰도는 19.4%다. 가톨릭(29.2%), 불교(28%), 기독교(19.4%) 순이었다. 종교 중 최하위다. 10명 중 2명만 기독교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기독교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종교인은 8.4%에 불과했다. 게다가 갈등을 유발하는 종교 순위에서는 기독교가 1순위로 꼽혔다.  

 

개신교의 신뢰도 추락, 그 이유는?

 

사람들이 기독교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표적인 이유는 언행불일치와 부정부패였다. 기독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자의 24.8%는 “교회가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고, 이어 비리와 부정부패를 꼽았다. 타 종교에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태도 그리고 강압적 전도와 지도자 윤리의식 결여 등도 꼬집었다.  
기독교 내부에서 개선해야 할 과제로는 타종교에 대한 비판적이고 배타적인 태도, 불투명한 재정 사용, 교회 지도자 윤리의식 결여, 교회 성장주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교인의 삶 등이라고 응답했다. 교회 지도자들이 개선할 부분은 언행불일치, 도덕‧윤리적 문제와 더불어 교회세습을 꼽았다.
한국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사회적 활동은 ‘윤리와 도덕 실천’(45.4%)이 가장 높았고 ‘봉사 및 구제활동’(36.4%)이 두 번째를 차지했다. 
기독교인과 비종교인의 시각 차이도 있었다. 기독교인의 경우 교회의 신뢰회복을 위해 봉사 및 구제활동이 가장 필요하다고 답한 반면 비종교인은 윤리와 도덕 실천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봉사 및 구제활동이라고 응답했다.
  
찬란했던 개신교 역사

 

교황이 방한했을 때 국민들의 반응과 ‘한국교회 신뢰도 여론조사’ 결과만으로도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큰 위기에 빠져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부터 한국교회의 위상이 이렇게 추락했을까. 한국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다. 한국 기독교 초창기만 해도 한국교회는 한국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국교회를 논하지 않고서는 한국사회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교육과 의료사역을 축으로 전개된 선교사업은 한국사회에 없어서는 안 되는 분야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산실이었고, 당시 한국 장로교회가 벌인 ‘농촌경제살리기운동’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농촌을 살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가나안농군학교는 한국의 빈곤문제를 극복하는 대책이 되었다. 안창호, 윤동주, 이승훈 등 기독교 사상가들은 한국 역사를 바꾼 주역들이었다.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항거해 옥중 순교한 주기철 목사(1894~1944)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희생정신을 보여줬다. 또 신사참배 문제로 옥살이 하고, 좌우 대립 과정에서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아들 삼고, 나환자들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낸 손양원 목사(1902~1950년)와 사회복지, 복음전파, 남북 화해 등에 크게 이바지한 공로로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고, 1992년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인식되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한경직 목사(1902-2000년) 등은 한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기독교인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시각장애인과 가난한 청소년 등 사회적 약자를 섬기고 있는 새빛맹인교회‧새빛요한교회 안요한 목사, 영등포역 쪽방촌에서 노숙자와 행려자, 윤락여성, 전과자, 장애인들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하고 있는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인천 지역 노숙인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고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이준모 목사,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제3세계 어린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구두닦이를 하고 있는 샬롬교회 김정하 목사 등은 국내외에서 소리 없이 섬기는 기독교인들이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있다.  그런데도 왜 기독교는 존경받는 어른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까. 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은 주지 못하고 피해만 주는 종교로 인식되고 있을까. 

 

교회의 존재 이유, ‘빛과 소금’

 

그 이유로는 기독교 내부적으로 분열되면서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유산을 계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개교회주의로 인해 한국교회 전체 이미지 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존경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남긴 메시지를 되새겨야 할 때다. 그 속에 답이 있다.  
한국교회의 아버지 길선주 목사는 “나는 아간과 같은 죄인이올시다”라고 했고, 주기철 목사는 “이놈이 주님이 좌정하실 자리에 앉아있습니다”라고 회개했다. 한경직 목사는 “나는 죄덩어리”라고 고백했다.
믿음의 선배들이 했던 회개의 전통을 이어받아야 한다. 과거 기독교는 국민들에게 구원의 등불 같은 존재였다. 더 낮아지고 소외된 자들을 섬겨야 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기독교와 교회의 역할 아닌가.

 

<전문가 의견>

두 가지 도전과 한 가지 우려
교황의 한국방문이 지난지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멀리서도 그 진동은 많이 느낄 수 있었다.  100만명의 인파가 교황의 시복식 행사를 보기 위해 모였고, 그의 말과 행동, 그가 만났던 사람들과 그들의 반응은 존경과 감동 그 이상이었다. 왜 ‘한국사회는 교황에게 왜 그토록 열광할까?’ 이 질문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은 단순하지만은 않지만, 이 글을 통해서는 오늘날 한국 사회 속에서 위기에 처한 교회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 보았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도전과 한 가지 우려이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
교황은 이번 한국방문을 통해 타자(他者) 즉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장애인들을 만나 격려하며,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 또한 명동성당에서의 미사에 쌍용자동차 해고자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 송전탑 주민들을 초청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자 하였다. 그런 교황의 모습을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이 시대에 자취를 감춘 듯한 옛 시대의 성자를 다시 만난 듯 환호했다. 

‘타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인간의 삶과 역사에 있어 늘 중요한 것이지만, 이는 특히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라고도 할 수 있다. 근대의 경쟁적 그리고 산업주의적 소용돌이 속에 무시되었던 소수의 권익과 목소리가 이제는 시대정신을 관통하는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된 것이다.  교황이 보여준 태도와 행보는 바로 그러한 시대적 코드에 부응하는 모습이고,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더욱 회복하고 집중해야 할 사역이요, 약화되었던 기독교 윤리의 회복에 대한 자극이요 도전이다.   

 

사회적 접촉점의 활용
교황의 방문은 카톨릭 신자들 뿐 아니라 비신자, 나아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까지 관심을 갖게했다.  그의 겸손하고 소박한 리더십, 사회와 역사에 관한 관심, 구제와 윤리 등의 사회적 문제들에 관한 그의 행동과 메시지는 교회를 넘어선 영향력을 갖는다. 교황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선정되었고, 2013년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뽑히기도 했다.  또한 ‘프란치스코 효과’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그의 말과 행동은 교회와 세상과의 접촉점을 활용, 즉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되어 세상 속에 들려지고 있다.   

교회는 세상 한 가운데 존재하고, 또한 세상에서 하나님나라를 확장하는 소명 공동체이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도들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시키고, 어떤 비전과 소명을 가지고 세상에서 어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과 훈련에 더 힘을 기울어야 한다. 나아가 교회 내의 문제 뿐 아니라 세상이 씨름하고 있는 문제들에 더욱 함께 고민하며 말씀과 탁월한 전문성을 통해 대안을 마련함으로 우리가 가진 복음의 진실성과 가치를 세상 속에서 드러내야 할 것이다.

 

대중주의(populism)의 위험
세상이 완전한 곳이 아닌 이상 인기와 영향력이 있는 곳에는 또한 함정도 있다. 이는 교황이나 어떤 특정한 사람을 질투하거나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로 인한 대중의 확대된 해석과 섣부른 판단을 우려하는 것이다. 교황으로 인해 한국사회에서 카톨릭 교회에 대한 인식이 좋아진 것은 충분히 예상되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를 향한 존경과 사랑이 그가 믿는 교리와 속한 공동체의 진정성을 보장한다는 판단에는 보다 정교하고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역으로 최근 뉴스거리가 된 개신교의 부끄러운 사례들을 전체 개신교의 지표로 여기며 필요 이상의 부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반성과 성찰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섣부르게 부정적으로 일반화하는 태도는 이 시대 교회들을 향한 사탄의 공격에 동조하는 것이고 모호한 대중주의의 함정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교황의 방문은 한국교회와 사회에 크고 중요한 과제들을 남겨주었다고 보여진다. 최근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리더십에 대한 실망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교황의 방문은 국민들의 영적, 사회적 갈증을 표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그 드러난 해답들을 가지고 한국교회가 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냉철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이 시대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효과적으로 전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권혁빈목사

/권혁빈 목사(얼바인 온누리교회, 前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 교수)

 

 

작성자  조은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