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 - 정신질환자의 범죄 예방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 기고
 
정신질환자의 범죄 예방 어떻게 해야 할까?

법과 제도 실효성, 정신질환자에 대한 올바른 인식 
 
 
지난달 벌어진 끔찍한 사건의 충격이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경남 진주시에 살고 있는 한 정신질환자가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끔찍한 사건 말이다. 이 외에도 2016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지난해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임세원 교수 피습사건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면서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 지자체, 민간단체 등에서는 정신질환자들의 범죄 예방을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제도와 법률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자의 범죄는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정신과 전문의 서용진 집사가 정신질환자 관리제도 및 법률의 한계를 알아보고, 정신질환자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 편집자 주
 
문제는 ‘그들’이 아니다
 
조현병은 새롭게 등장한 병이 아니다. 근원은 알 수 없지만 100년 전에도, 200년 전에도, 천 년 전에도 존재했다. 조현병 증상이 심해져 망상이나 환각에 사로잡히면 위험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최근에 밝혀진 것이 아니다. 몇 십 년 전 교과서에도 나와 있고 고대 문헌에도 기술되어 있다. 근래 일어난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조현병을 포함한 중증의 정신질환과 그 위험성에 대해 정부나 언론이 보이는 반응에 대해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조금은 당황스럽고 더 크게는 우려스럽다. 문제는 환자가 아니다. 병도 아니다. 그것은 이미 다 알려져 있던 것이다. 문제는 이분들을 케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위험성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질환자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그들을 어떻게 사회가 케어할 것인지는 늘 논란의 주제가 되어왔다. 정신질환자 역시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고 자기결정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인권적인 관점, 병이 있는 환자로서 치료의 대상이며 정신적 결함이 있으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학적 관점,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위험성을 갖고 있고 자기보호능력이 손상된 사람들이기에 사회로부터 격리하여 보호(순화된 표현이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왔다. 부당하게 병원에 감금되어 이혼당하고 자녀를 빼앗긴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면 인권적 관점이 득세하고, 진주방화사건 같은 큰 사건이 터지면 의학적 관점이나 사회적 관점이 득세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시간이 지나면 결국 흐지부지되고 만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턱없이 부족한 사회적 배려와 케어 시스템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케어의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법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과 인력이다.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강제입원(비자의입원) 절차가 엄격해졌다. 이전까지는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의학적 판단과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가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법에서는 서로 다른 의료기관에 속한 전문의 2인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입원 후 입원적합성 심사제도도 생겨났다. 입원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계속입원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또한 더욱 엄격해져서 불필요한 장기입원을 막고자 했다.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은 의학적으로는 질병의 치료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만 법률적으로 보면 ‘인신구속’의 하나로 인권 침해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에 절대 남용되어서는 안 되고 엄격한 기준과 절차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정법은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러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하지 못한 결과 치료와 보호가 필요한 환자들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 또한 생겨났다. 이번 진주방화사건이 그런 경우였다. 실질적 보호자인 형은 직계가족이 아니라서 보호의무자 자격이 없었고, 유일한 직계가족인 어머니는 수술로 입원 중이었다. 여러 병원에 문의를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고 결국 불행한 사고로 이어졌다.
법을 만드는 분들이 조금 더 현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법은 도덕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름에 대한 선언으로 끝나서는 안 되고, 여러 다양한 경우에도 빈틈없이 적용될 수 있도록 세밀하고 꼼꼼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경우 실질적인 효력이 없는, 사문화된 조항이 되기 십상이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명시된 ‘외래치료명령제’가 그 일례이다. 자타해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에 대해 퇴원 후 반드시 외래치료를 받도록 법으로 강제한다는 매우 필요하고 적절한 법령 같아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외래치료명령의 신청,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구체적 조치, 비용문제 등 허술한 부분이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법에는 있지만 적용한 사례는 손에 꼽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는 강제입원 결정에 필요한 ‘자타해 위험’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또한 매우 난감한 일이다. 자타해 위험이란 정신질환자가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험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는데, 과연 어디까지를 ‘위험하다’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기준이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내린 지침은 있지만 개별 사례에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보니 거의 모든 의사결정을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환자와 가족의 삶이 달린 문제를 판단하는 일은 언제나 크나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신과 전문의와 가족은 의견을 내고 판단은 사법부에서 내리는 ‘사법입원제도’가 고려되고 있지만 제도를 위해 필요한 예산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20년 가까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법과 더불어 정신질환자들을 케어하고 사회 적응을 돕는 지역사회 서비스 역시 너무나 미비하다. 우리나라 시스템에서 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두 기관으로 각 기조지자체 단위에 세워진 정신건강복지센터와 민간기관인 사회복귀시설이 있는데 두 기관 모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례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정신질환자에게 사례관리, 재활프로그램, 교육과 직업훈련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진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경우 등록된 정신질환자가 370명이었는데 센터직원은 10명, 그 가운데 정신질환자 케어를 전담하는 직원은 고작 4명뿐이었다. 한 사람이 100명 가까운 정신질환자를 케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아무리 하소연을 해도 당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더 정확하게는 별 문제가 없다면 현상을 유지하면 된다는 입장에서 인력충원을 해주지 않는다. 정신질환자를 케어하기 위해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정신보건 선진국이라 불리는 호주,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인구에 따라 몇 개소가 필요하며 필요 인력은 몇 명인지가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의 정신건강정책 및 지침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더욱이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 대부분이 계약직 근로자이기 때문에 평균 근속연수가 매우 짧다는 점 또한 문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계약직 근로자로 2년 이상 근무할 경우 정규직 또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도록 되어 있는데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운영체계상 그것이 쉽지 않다 보니 근속연수 2년이 되기 전에 이직을 권고 받거나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는 꼼수를 당하기도 한다. 결국 직업적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한 직원들은 자주 이직을 하거나 아예 정신보건 분야를 떠나게 되고 이는 서비스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법이 허술하고 사회적 관리체계가 빈약하면 결국 그 피해는 환자와 가족에게 돌아가게 되고 궁극에는 전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눈을 갖고 있지 못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심을 가질 만큼의 여유도 없어 보인다. 전 국민의 20%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할 수 있다는 조사결과를 접하면서도 나는 나머지 80%에 포함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특히 크리스천들의 선입견은 일반인보다 심해서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을 아주 수치스럽고 믿음 없는 행위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을 본다.
 
누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 줄까?
 
정신질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다. 그들은 병으로 고통 받고 소외와 배제와 차별로 인해 상처받는다. 물론 과거에 비해 법이나 사회서비스 모두 나아지고 있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이들에 대한 시선이 따가워질 뿐 아니라 법적, 제도적으로 거센 압박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오해와 선입견은 잘 모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본인이 알고 있는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 언론으로부터 알게 된 자극적인 뉴스로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그들과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이러한 편견과 오해가 무너져야 한다. 사회뿐만 아니라 정신질환자와 그들의 가족들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나의 병, 우리 가족의 병을 잘 인지하고 관리해야 한다. 특히 환자 스스로 건강을 잘 케어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이 사회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크리스천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예수님의 사랑 안에 그 답이 있다. 예수님이 살았던 당시 문둥병은 죄와 저주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마찬가지로 세리와 창기도 가까이하셨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통념과 편견, 낙인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강도 만난 사람을 피해 갔던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그럴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두려움과 회피일 뿐이었다. 그 두려움과 회피를 극복한 사람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오늘날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들은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온몸으로 감당하고 있다. 어쩌면 질병 자체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두려울지도 모른다. 누가 그들의 이웃이 되어 줄까? 소외되고 거절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명령은 너무나 단호하고 분명하다. 우리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 때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회복될 것이다.
/ 서용진 집사(정신과 전문의, 수원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