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책 읽어주는 목사 <산을 넘은 아리게>

책 읽어주는 목사
 
도전, 대가 그리고 누림
 
<산을 넘은 아리게>
가즈코 G. 스톤 저 / 중앙교육연구원 / 7,000원
 
이 책은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이다. 지금부터 약 8년 전쯤 첫째 아이에 읽어 주었고, 며칠 전에는 셋째 딸에게도 읽어주었다. 딸이 아직 어려 세 번째 장에서 덮었지만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리게’라는 악어다. 보통 악어는 아니다. 모험에 도전하고, 그 도전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할 줄 아는 악어다. <갈매기의 꿈>에 나오는 ‘조나단 리빙스턴’과 흡사하다. 
아리게와 친구들은 멀리 있는 산을 보면서 호기심을 갖는다.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출발한다. 그러나 가까이 갈수록 산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리게의 친구들은 산이 생각보다 높고 험하다는 것을 알고 돌아선다. 그러나 아리게는 돌아서지 않는다. 고생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리게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산의 정상에 올라선다. 그의 앞에는 긴 강과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챙겨간 도시락을 그 풍경과 함께 먹는다. 이제 남은 여정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강을 타며 헤엄을 치고, 넓은 바다까지 이른다. 이 책은 아리게가 친구들에게 그들이 사는 섬의 지도를 자랑스레 그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이 동화에서 나는 진리의 한 면을 보았다. 모험의 시작은 마음의 소망이었다. 저 산 너머를 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은 마치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식과 흡사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빌 2:13)’ 하신다. 나는 자녀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먼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가운데, 마음의 소원대로 해보라고. 실수하지는 않을까, 누군가를 실망시키지는 않을까 망설이다가 놓치는 복이 얼마나 많은지… 물론 예방주사도 필요하다. 인생은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도전한다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안락한 의자에 앉아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듣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은 마치 아리게가 먼발치에서 바라본 산과 같다. 그 약속 성취의 여정에는 출발 때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도전들이 있다. 가나안을 향하던 이스라엘이 경험한 광야처럼 고통, 조롱, 기다림이 가득하다. 그것은 언제든 돌아서고 싶은 유혹이 된다. 
아리게가 경험한 산 위의 아름다운 풍경은 도전한 자, 대가를 지불한 자들의 것이다. 듣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듣고 행동하는 사람의 것이다(약 1:22). 나는 나와 나의 자녀들이 ‘나로 나의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는(합 3:19)’ 하나님의 초청에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기를 원한다. 
아리게가 돌아가 지도를 그려준 것처럼, 승리는 반복되고 기세(氣勢)는 계승(繼承)된다. 한 명의 돌파는 공동체와 사회의 돌파로 이어질 수 있다. 1945년 영국의 로저 배니스터 선수가 1마일 달리기에서 4분 벽을 깨자(3분 59초 주파, 도착 직후 의식을 잃었지만), 22년 동안 그 누구도 넘지 못했던 기록이 한 달 만에 10명의 선수들에 의해 돌파되었다.
사무엘하 21장에는 거인족을 죽인 다윗의 용사들의 기록이 이어진다. 유독 다윗 시대에 용사가 많았던 것은 다윗이 그려놓은 지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이것이다. 죽음과 무덤의 산을 정복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지도를 그리셨다. 
온누리교회를 알아갈수록 멀리서 보던 것보다 큰 산 임을 발견한다. 교회를 세워온 교역자들과 성도들 모두가 어떤 헌신과 기도로 교회를 세워왔는지 감탄하며 배우는 것이 많다. 청년 목회자로서 그 돌파를 이어가고 싶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맞이하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우리 청년세대가 멋지게 도전하고 돌파하기를 기대한다. 문득 이 글을 쓰면서 ‘위험한 교회’ 그리고 ‘코뮤니타스’ 메시지가 생각난다. 동화 속 악어 ‘아리게’처럼 우리 모두 산을 넘어서길 소망해본다.
/ 조준목 목사(길공동체)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