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 이해에 선행하는 믿음
신앙에세이
이해에 선행하는 믿음
최근 요한계시록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상징적 표현들과 마지막 날에 대한 수많은 단어들, 우리가 실제적으로 보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설명들을 내 짧은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지혜로 해석한 것을 지식적으로 채울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었다. 부분적일 뿐이었다. 눈을 감은 채 코끼리의 다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코끼리의 다리를 코끼리의 전부로 착각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요한계시록 뿐 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아침에 눈을 뜨는지, 어떻게 아침밥을 소화시키는지, 지구는 왜 자전하고 있는 것인지, 태양은 왜 뜨거운 것인지,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는 나의 생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뇌에 있는 뉴런과 시냅스의 화학, 전기 작용이라면 그런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며 왜 작동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 다시 찾아오는 분명한 깨달음은 나는 아주 작은 점이라는 사실이다.
평생토록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존재 그것이 나의 존재이겠지만, 내 안에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은 갈망과 하나님의 뜻을 더 이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아이러니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픈 마음, 목이 마른데 마실 물은 고사하고 마실 수 있는 입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각하니 나에게 허락된 이해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니 모든 것은 달랐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을 알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깨달음과 이해는 믿음이었다. 나는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었다. 믿기 때문에 이해를 갈망하는 것이었다.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했을까. 믿음은 이해에 앞서 존재했다.
믿음 그것 또한 내 것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위로부터 내려온 선물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아무 자격도 없었지만 허락됐다. 나를 주어로 시작하는 믿음은 없었다. 완전한 성령의 선물 그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으로 인해 이해를 갈망했고, 믿음으로 인해 이해를 얻었다. 믿음과 이해 또는 신앙과 이성은 대립하는 개념 같지만 사실은 양립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되는 은혜였다.
분명 앞으로의 인생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넘쳐날 것이다. 아마 눈을 감는 그날까지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지 않음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적합한 이해를 허락하실 줄로 믿는다. 믿음은 이해에 선행한다.
/ 최종현 전도사(여호수아공동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지혜로 해석한 것을 지식적으로 채울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었다. 부분적일 뿐이었다. 눈을 감은 채 코끼리의 다리를 잡고 있는 것이었다. 코끼리의 다리를 코끼리의 전부로 착각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생각해보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요한계시록 뿐 만이 아니었다. 세상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아침에 눈을 뜨는지, 어떻게 아침밥을 소화시키는지, 지구는 왜 자전하고 있는 것인지, 태양은 왜 뜨거운 것인지,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는 나의 생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뇌에 있는 뉴런과 시냅스의 화학, 전기 작용이라면 그런 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존재하며 왜 작동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 다시 찾아오는 분명한 깨달음은 나는 아주 작은 점이라는 사실이다.
평생토록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작은 존재 그것이 나의 존재이겠지만, 내 안에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은 갈망과 하나님의 뜻을 더 이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아이러니하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픈 마음, 목이 마른데 마실 물은 고사하고 마실 수 있는 입조차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각하니 나에게 허락된 이해가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니 모든 것은 달랐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의 길을 알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깨달음과 이해는 믿음이었다. 나는 이해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었다. 믿기 때문에 이해를 갈망하는 것이었다.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삼위일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믿음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했을까. 믿음은 이해에 앞서 존재했다.
믿음 그것 또한 내 것이 아니었다. 전적으로 위로부터 내려온 선물이었다. 나에게는 정말 아무 자격도 없었지만 허락됐다. 나를 주어로 시작하는 믿음은 없었다. 완전한 성령의 선물 그것이 믿음이다. 그 믿음으로 인해 이해를 갈망했고, 믿음으로 인해 이해를 얻었다. 믿음과 이해 또는 신앙과 이성은 대립하는 개념 같지만 사실은 양립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되는 은혜였다.
분명 앞으로의 인생 가운데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넘쳐날 것이다. 아마 눈을 감는 그날까지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하지 않음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 거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가장 적합한 이해를 허락하실 줄로 믿는다. 믿음은 이해에 선행한다.
/ 최종현 전도사(여호수아공동체)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