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목사 <냉정한 이타주의자>
책 읽어주는 목사
하나님의 마음과 청지기의 마음
<냉정한 이타주의자>
윌리엄 맥어스킬/ 부키/ 16,000원
윌리엄 맥어스킬/ 부키/ 16,000원
남아프리카인 트레버 필드는 매우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이 남성이 어느 날 선한 아이디어를 발견한다. 그것은 ‘플레이펌프(Playpump)’인데 아이들이 일명 ‘뺑뼁이’라고 부르는 놀이기구와 펌프를 결합시킨 것이었다. 플레이펌프는 아이들이 놀이하듯 뺑뺑이를 돌리면 펌프에서 물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삶에 필요한 물을 기를 수 있도록 만든 기구다. 이 기구는 물 부족을 즐겁게 해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소개되었다. 플레이펌프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급기야 플레이펌프 캠페인이 시작되었는데 유명인들의 SNS와 신문방송을 넘어서 정치인들까지 합세한 커다란 선한운동이 되었다. 플레이펌프가 아프리카 각지에 설치되었고 수백만 달러가 모금 되었다. 하지만 몇 년 후 실사단이 플레이펌프가 설치된 지역을 방문했을 때 어느 지역에서도 더 이상 플레이펌프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플레이펌프를 돌리는 아이들이 빨리 지치고, 여성들에게도 일이 되었다. 일반 펌프보다 낮은 효율 때문에 플레이펌프는 지역주민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폐물이 되었다.
이 책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한 것을 위한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것인지 묻는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청지기로서 부르심’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스리고 정복한다. 또한 이 명령은 창세기 명령의 연장선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청지기는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발전시켜야 한다.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주인이 길을 떠날 때 세 명의 종에게 각각 5달란트(한 달란트는 노동자 20년 치 급여에 해당),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 떠난다.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하는데 5달란트를 가진 자는 5달란트를 남기고, 2달란트를 가진 자는 2달란트를, 한 달란트를 가진 자는 땅에 묻었던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왔다. 그 행동에 대해 주인은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 남긴 자에게 동일하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한 달란트 가진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과 이 책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청지기는 ‘맡은 자’다. 주인의 것을 관리하되 자신의 맘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주인의 방식대로 관리해야 한다. 그 의미로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옳으나 선한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주인의 것을 임의대로 사용하거나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소명을 무시하고 그대로 두는 일은 청지기로서 잘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빌 2:13)이시다. 하나님의 뜻인 소원을 잘못 관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원을 받은 자가 선한 목적으로 현실성 없는 사역과 봉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체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 플레이펌프를 만드는 청지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청지기는 ‘종’이다. 종은 주인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5달란트, 2달란트 가진 자가 불의로 재물을 불렸다면 주인이 칭찬했을까? 오히려 손해를 보더라도 주인의 뜻 안에서 행했던 빚진 종을 칭찬한다. 교회는 효율성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여기는 곳이 바로 교회다. 때로는 한 영혼을 위해서 많은 재정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곳이 교회다. 전부 허비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행하는 곳이 교회다. 때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플레이펌프와 같은 비효율적인 일을 하더라도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기꺼이 플레이펌프를 돌리는 곳이 교회다. 세상과 구별된 기준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청지기는 명심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원한다. 천하를 주고도 한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역과 일터에서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마음을 갖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 김성웅 목사(대전 온누리교회)
이 책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한 것을 위한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것인지 묻는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청지기로서 부르심’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우리는 청지기로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스리고 정복한다. 또한 이 명령은 창세기 명령의 연장선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을 얻은 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청지기는 하나님께 받은 소명을 발전시켜야 한다.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주인이 길을 떠날 때 세 명의 종에게 각각 5달란트(한 달란트는 노동자 20년 치 급여에 해당),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 떠난다.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하는데 5달란트를 가진 자는 5달란트를 남기고, 2달란트를 가진 자는 2달란트를, 한 달란트를 가진 자는 땅에 묻었던 한 달란트를 가지고 왔다. 그 행동에 대해 주인은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 남긴 자에게 동일하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한 달란트 가진 자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과 이 책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청지기는 ‘맡은 자’다. 주인의 것을 관리하되 자신의 맘대로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다. 주인이 원하는 대로, 주인의 방식대로 관리해야 한다. 그 의미로서 선한 일을 하는 것은 옳으나 선한 일을 하는 방식에 있어서 주인의 것을 임의대로 사용하거나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소명을 무시하고 그대로 두는 일은 청지기로서 잘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분(빌 2:13)이시다. 하나님의 뜻인 소원을 잘못 관리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원을 받은 자가 선한 목적으로 현실성 없는 사역과 봉사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체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 플레이펌프를 만드는 청지기가 될 수 있다.
둘째, 청지기는 ‘종’이다. 종은 주인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5달란트, 2달란트 가진 자가 불의로 재물을 불렸다면 주인이 칭찬했을까? 오히려 손해를 보더라도 주인의 뜻 안에서 행했던 빚진 종을 칭찬한다. 교회는 효율성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한 것으로 여기는 곳이 바로 교회다. 때로는 한 영혼을 위해서 많은 재정과 노력을 쏟을 수 있는 곳이 교회다. 전부 허비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행하는 곳이 교회다. 때로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플레이펌프와 같은 비효율적인 일을 하더라도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면 기꺼이 플레이펌프를 돌리는 곳이 교회다. 세상과 구별된 기준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청지기는 명심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를 원한다. 천하를 주고도 한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과 사역과 일터에서 냉정하고 효율적으로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의 마음을 갖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추천한다.
/ 김성웅 목사(대전 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