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와 시간 사이에서
전문가 기고
선한 청지기로 세워지는 일꾼들을 축복하며
지하철을 탈 때마다 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장거리를 가는데 무거운 가방을 들고 오래 서 있으면 피로가 몰려온다. 내 나이 60세가 넘었다. 아줌마 반열에서 시니어를 준비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는지 빈 경로석을 넘보게 된다. 혹시나 경로석에 앉기라도 하면 마흔둘에 낳은 늦둥이 막내가 화를 내며 나를 일으켜 세운다. 어르신들이 타면 일어설 것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마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 것 같다. 하나는 어르신들의 경로석을 빼앗으면 안 된다는 윤리의식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엄마가 할머니로 인식되는 게 싫어서일 것이다.
빈자리, 그 잠깐의 기쁨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재미있는 예화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 칼 루이스와 벤 존슨(당시 100미터 달리기 세계랭킹 1, 2위)이 서울 지하철에서 달리기를 하면 누가 이길까? 정답은 ‘한국 아줌마’였다. 환승역에서 지하철 문이 열리면 재빠르게 뛰어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아줌마들의 얼굴에는 안도와 자랑스러움의 미소가 스친다. 빈자리를 발견하는 순간 가방을 먼저 던져 찜해놓고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앉는 경우도 있다.
빈자리를 차지하는 기쁨은 잠시다.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을 떠날 때처럼 각자 종착역에서 내려야 할 타이밍이 반드시 다가온다. 잠시 편안함을 제공하는 그 자리보다 편안함을 주는 내 집이 좋고,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 누리는 영화보다 영원한 안식을 주는 천국 본향이 진짜 돌아갈 자리다.
요즘 성도들은 목사님 설교 말씀보다 주차하기 편리한 교회를 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 주차 전쟁이 심각하다. 교회에서 주차할 때 매번 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리가 없어서 교회 근처 쇼핑센터에 주차할 때도 있지만, 교회 내 좋은 자리에 주차하는 날이면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떠나기가 아깝다. 한번은 주차안내위원의 손짓에 따라 교회 정문을 통과하는데 바로 내 앞차가 정문 입구 오른편 마지막 주차 칸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아깝다! 1분만 일찍 도착했으면 저 자리가 내 자리였을 텐데… 저 사람은 기도 많이 했나?’하며 이기적인 아쉬움이 뇌리를 스쳤다. 아쉬움에 젖어있는데 주차안내위원이 그 차를 앞쪽으로 바싹 당기게 하더니 내 차를 마지막으로 주차하도록 했다. 그 순간 천국 문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것 같은 희열과 감사가 밀려왔다. 주차안내위원한테 90도로 인사하고 본당으로 들어왔다. 마치 변화산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세 개를 지어…”라고 했던 베드로의 심정이었다.
빈자리를 차지하는 기쁨은 잠시다.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을 떠날 때처럼 각자 종착역에서 내려야 할 타이밍이 반드시 다가온다. 잠시 편안함을 제공하는 그 자리보다 편안함을 주는 내 집이 좋고, 이 세상에서 잠시 잠깐 누리는 영화보다 영원한 안식을 주는 천국 본향이 진짜 돌아갈 자리다.
요즘 성도들은 목사님 설교 말씀보다 주차하기 편리한 교회를 택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교회 주차 전쟁이 심각하다. 교회에서 주차할 때 매번 자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자리가 없어서 교회 근처 쇼핑센터에 주차할 때도 있지만, 교회 내 좋은 자리에 주차하는 날이면 집에 가기 싫을 정도로 떠나기가 아깝다. 한번은 주차안내위원의 손짓에 따라 교회 정문을 통과하는데 바로 내 앞차가 정문 입구 오른편 마지막 주차 칸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아깝다! 1분만 일찍 도착했으면 저 자리가 내 자리였을 텐데… 저 사람은 기도 많이 했나?’하며 이기적인 아쉬움이 뇌리를 스쳤다. 아쉬움에 젖어있는데 주차안내위원이 그 차를 앞쪽으로 바싹 당기게 하더니 내 차를 마지막으로 주차하도록 했다. 그 순간 천국 문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것 같은 희열과 감사가 밀려왔다. 주차안내위원한테 90도로 인사하고 본당으로 들어왔다. 마치 변화산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세 개를 지어…”라고 했던 베드로의 심정이었다.
역사가 주는 ‘자리’의 교훈
대선을 앞두고 캠프에 들어간 지인들이 적지 않다. 구국의 충정이 가득 차서 합류한 사람도 있지만, 지지하는 후보가 대권을 차지하면 본인에게 돌아올 자리에 대한 계산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한 자리다툼으로 얻은 최고의 자리라 할지라도 이 세상 떠날 때는 결국 다 내놓아야 한다. 이웃과 주차 자리를 놓고 말다툼을 하다가 흉기를 휘두르는 사태로 이어지는 것도 자리를 위한 싸움이다.
‘자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나 장소,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 따위를 마련해 놓은 곳, 잠자리를 의미한다. 사회적 집단에서 연령, 성(性), 직업, 소득 등에 따라 결정되는 개인의 위치를 의미하는 포지션(Position)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제도나 규칙에 의해 정해지는 역할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에게 역할이 부여되면 기대에 부응해서 위대한 공헌을 하기도 하지만, 그릇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자리가 주어지면 공멸(共滅)의 비극을 낳기도 한다. 특히 자질이 안 되는 CEO나 지도자한테 자리를 주면 그 공동체의 발전이 수십 년 후퇴할 수밖에 없고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의 히틀러, 16세기 임진왜란을 일으켜 수많은 조선인을 희생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통해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리 욕심이 많았던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목도해야 했다. 영국의 동물학자 존 브래드쇼는 그의 저서 <캣센스(Cat Sense: 고양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야생 습성이 남은 집고양이들의 자리(영역) 싸움에 대해 흥미로운 관찰을 했다.
“서로 접촉을 꺼리고 날카롭게 응시하며 화가 난 소리를 낸다. 자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경직된 자세로 귀를 움찔거린다. 고양이들이 다니는 출입로나 계단 맨 위로 올라가 몇 시간씩 앉아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자리다툼은 인간이나 동물 세계에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는 전쟁이다.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품었던 새로운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곤 한다. 집권 초기에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고 권력의 핵심에 있던 부패세력들을 척결하지만, 말기에 가서는 어김없이 친인척 비리에 연루되거나 측근들을 단속하지 못해 국민에게 지탄받고 감옥에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전임자가 벌여놓은 사업들을 무조건 중단시켜 국고를 낭비하는 보복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이겨 좋은 자리를 계속 차지하려 한다. 최근 한 달 사이 일어난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의 권력이 얼마나 무상하고, 죽음 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 10년 가는 권력이 없다는 옛말을 깨닫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캠프에 들어간 지인들이 적지 않다. 구국의 충정이 가득 차서 합류한 사람도 있지만, 지지하는 후보가 대권을 차지하면 본인에게 돌아올 자리에 대한 계산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한 자리다툼으로 얻은 최고의 자리라 할지라도 이 세상 떠날 때는 결국 다 내놓아야 한다. 이웃과 주차 자리를 놓고 말다툼을 하다가 흉기를 휘두르는 사태로 이어지는 것도 자리를 위한 싸움이다.
‘자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나 장소,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의자 따위를 마련해 놓은 곳, 잠자리를 의미한다. 사회적 집단에서 연령, 성(性), 직업, 소득 등에 따라 결정되는 개인의 위치를 의미하는 포지션(Position)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제도나 규칙에 의해 정해지는 역할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인에게 역할이 부여되면 기대에 부응해서 위대한 공헌을 하기도 하지만, 그릇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 자리가 주어지면 공멸(共滅)의 비극을 낳기도 한다. 특히 자질이 안 되는 CEO나 지도자한테 자리를 주면 그 공동체의 발전이 수십 년 후퇴할 수밖에 없고 나라가 망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의 히틀러, 16세기 임진왜란을 일으켜 수많은 조선인을 희생시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다. 이성계는 위화도회군을 통해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자리 욕심이 많았던 다섯째 아들 이방원에 의해 두 차례에 걸쳐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목도해야 했다. 영국의 동물학자 존 브래드쇼는 그의 저서 <캣센스(Cat Sense: 고양이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야생 습성이 남은 집고양이들의 자리(영역) 싸움에 대해 흥미로운 관찰을 했다.
“서로 접촉을 꺼리고 날카롭게 응시하며 화가 난 소리를 낸다. 자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경직된 자세로 귀를 움찔거린다. 고양이들이 다니는 출입로나 계단 맨 위로 올라가 몇 시간씩 앉아 상대의 움직임을 제한한다.”
자리다툼은 인간이나 동물 세계에서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는 전쟁이다.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품었던 새로운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곤 한다. 집권 초기에는 대대적인 개혁을 하고 권력의 핵심에 있던 부패세력들을 척결하지만, 말기에 가서는 어김없이 친인척 비리에 연루되거나 측근들을 단속하지 못해 국민에게 지탄받고 감옥에 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도 전임자가 벌여놓은 사업들을 무조건 중단시켜 국고를 낭비하는 보복정치를 계속하고 있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선거에서 이겨 좋은 자리를 계속 차지하려 한다. 최근 한 달 사이 일어난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면서 이 세상에서의 권력이 얼마나 무상하고, 죽음 이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은 누구도 예외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권불십년(權不十年), 10년 가는 권력이 없다는 옛말을 깨닫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자리’의 역설
성경은 자리의 역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권고하신 예수님(막 12:39)은 안식일에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가셨을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눅 14:8~9).
자리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남유다의 네 번째 왕위에 오른 여호사밧은 선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인물이다. 등극 초기에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고 율법을 유다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선정을 베풀었다. 3대 왕인 아사 때까지만 해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계속 긴장 관계에 있었지만, 여호사밧 때부터는 남북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물론 북쪽 아람 세력이 크게 확장하면서 위협이 되었고, 이를 북이스라엘과 공동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통한 정치적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온 나라를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물들게 한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여호사밧이 사돈 관계를 맺고 연합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그 역할과 판단에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세상에서 부족함 없는 영화를 누리면서 나라가 강해지고 풍요로움에 익숙해진 자리에서 여호사밧은 영적 긴장감을 놓치고 판단력을 상실했다. 그는 죽기 5년 전 아들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지만, 여호람은 왕이라는 자리에 올라 죄 없는 방백들을 죽이고 악행을 거듭했다. 사람은 평화롭고 좋은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을 떠날 수 있고, 간절함이 없어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와 한국 교회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자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봉사자의 자리이다. 해마다 엄격한 절차로 임직 대상자와 피택장로가 추천되고 일정 훈련과정을 수료한 다음 일꾼으로 세워진다. 공동체와 사역 영역에서 나보다 낫거나 나를 능가하는 일꾼들이 추천되고 세워져서 교회의 한 모퉁이를 감당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올해도 선한 청지기 자리에 좋은 일꾼들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성령의 바람으로, 권능을 힘입어 영적 열매들을 가득 맺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협력하는 그리스도의 계절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눅 14:8~9).
자리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가장 빛난다. 남유다의 네 번째 왕위에 오른 여호사밧은 선한 왕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 인물이다. 등극 초기에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고 율법을 유다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선정을 베풀었다. 3대 왕인 아사 때까지만 해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은 계속 긴장 관계에 있었지만, 여호사밧 때부터는 남북관계가 상당히 우호적으로 변하면서 긴장감이 느슨해졌다. 물론 북쪽 아람 세력이 크게 확장하면서 위협이 되었고, 이를 북이스라엘과 공동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방 여인과 결혼을 통한 정치적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었다. 이방 여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아 온 나라를 바알과 아세라 숭배로 물들게 한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여호사밧이 사돈 관계를 맺고 연합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그 역할과 판단에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 것이다. 세상에서 부족함 없는 영화를 누리면서 나라가 강해지고 풍요로움에 익숙해진 자리에서 여호사밧은 영적 긴장감을 놓치고 판단력을 상실했다. 그는 죽기 5년 전 아들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지만, 여호람은 왕이라는 자리에 올라 죄 없는 방백들을 죽이고 악행을 거듭했다. 사람은 평화롭고 좋은 자리에 있을 때 하나님을 떠날 수 있고, 간절함이 없어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와 한국 교회에 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자리가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나가는 봉사자의 자리이다. 해마다 엄격한 절차로 임직 대상자와 피택장로가 추천되고 일정 훈련과정을 수료한 다음 일꾼으로 세워진다. 공동체와 사역 영역에서 나보다 낫거나 나를 능가하는 일꾼들이 추천되고 세워져서 교회의 한 모퉁이를 감당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올해도 선한 청지기 자리에 좋은 일꾼들이 세워졌으면 좋겠다. 성령의 바람으로, 권능을 힘입어 영적 열매들을 가득 맺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협력하는 그리스도의 계절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