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비교하지 말고 감사하라!

전문가 기고
 
비교하지 말고 감사하라!
하나님의 선물 ‘은사(달란트)’를 대하는 태도
 
 
우리는 타인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경험을 종종한다. 소개하는 자리와 대상에 따라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기관과 역할로 자신을 소개한다. 학생의 경우 “OO학교 O학년 학생”이라고 자신을 설명하고, 성도의 경우에는 “OOO교회 성도”로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만약 소속을 빼고 자신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필자가 대학에서 과와 학년을 빼고 옆 학우에게 자신을 소개해보라고 했을 때 당황한 학생들의 표정은 이 질문이 생각보다 쉽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가 소속된 공동체는 아주 특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공동체 외에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한 선물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번 칼럼을 통해 각자에게 주신 풍성한 하나님의 선물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은메달리스트와 동메달리스트
 
사진 한 장이 있다. 종목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세 명의 선수가 시상대 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올림픽이 열리면 우리는 흔히 이런 장면을 보게 된다. 이 선수 중에서 가장 환하게 웃고 있는 선수를 찾아본다면 어떤 메달을 딴 선수일까? 가운데에 있는 금메달을 딴 선수일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조금 더 어려울 수 있다. 금메달을 제외하고, 은메달과 동메달 선수 중에는 어떤 선수가 더 활짝 웃고 있을까? 은메달? 아니면 동메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이란 책에서 코넬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연구를 소개하며, 메달 획득 순간과 시상식에 서는 순간 모두 동메달을 딴 선수가 은메달 선수보다 밝은 표정을 지으며 행복해 한다고 하였다. 메달을 획득하는 순간 은메달과 동메달 선수 모두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의 의미가 다름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은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안타까워서 운다. 반대로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기뻐서 운다. 시상식에 선 순간 은메달을 딴 선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의 경우 ‘조금만 더 속도를 냈다면 금메달을 딸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웠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동메달 선수는 반대일 것이다. 아쉬운 순간도 많지만 그런데도 메달을 딸 수 있었던 좋았던 순간을 떠올릴 수 있다. 잘못하면 메달을 따지 못한 노메달리스트가 될 수도 있었는데, 메달을 얻은 것에 행복해하는 것이다. 은메달 선수는 메달의 색이 중요하지만, 동메달은 메달 자체가 중요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은메달 선수가 동메달 선수보다 행복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객관적인 소유와 주관적인 행복이 비례관계는 아니라는 말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부족한 것이 많지만, 가진 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동메달 선수와 같은 관점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현재 객관적으로는 가진 것이 많지만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후회하는 은메달 선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놓친 순간도 많지만 현재 가진 것에 감사하는 동메달 선수에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메달리스트의 이야기를 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 각자 필요에 따라 주신 ‘은사(달란트)’를 대하는 태도를 점검해 보기 위함이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잘 경영하기보다 없는 것을 주목하고, 비교하는 우리의 모습이 세계 2위라는 위치에도 안타까워하는 은메달리스트의 마음과 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노인복지관에서 강의 요청을 받은 경험이 있다. 강사료가 적다며 죄송한 마음에 이메일로 강의 요청을 하셨다. 마침 일정이 가능하기도 하고, 전에도 강의했던 노인복지관인지라 기쁜 마음으로 갔다. 특강이 끝나고 한 분이 인사를 하시며 필자에게 어디 사는지 물어보셨고, 다음에 연락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1~2개월 지났을 즈음 그분이 문자메시지를 주셨는데, 집 근처에 개인 사무실이 있는지 물으시며 주일에 해당 주소로 한번 놀러 오라고 하셨다. 재개발 지역에 있는 한 건물의 소유주였던 그분은 한 층이 일 년 동안 비워진 상태로 있었다며 원하면 무료로 사용하라고 하셨다. 너무 놀랐다. 그 시기 집 근처에 사무실과 강의장을 함께 겸비한 공간이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에 감사하며 귀한 도움을 받아 그 공간을 리모델링했다. 그리고 그 사무실을 잘 관리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에 ‘조금 더 좋은 건물이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감사’의 자족보다 더 좋은 건물에 눈길이 가는 모습을 보았다. 마음이 그러하니 처음 마음과 달리 사무실 관리도 소홀하게 되고, 잘 활용해야 한다는 부담만 있을 뿐이지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영역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은 영역까지 넓혀본다면, 선물을 주신 분의 마음과 다르게 받는 이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작고 보잘것없는 그것이
누구의 손에 드려지는지를 보라!
 
성경에서는 은사(달란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8~11).
하나님께서 그의 뜻대로 성령님을 통해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귀한 선물이 정말 다양하다. 그런데 주신 분은 주셨다고 하시는데 받은 사람이 받지 않았다는 듯이, 주시지 않은 것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면 어떠할까? 1달란트를 받은 자와 같이 주신 분의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두고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분명 은사(달란트)라고 생각하는데 정작 자신은 비교하느라 인정하지 못하고, 은사라는 선물을 간과하거나 축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에 따라 은사(달란트)를 대하는 태도가 분명 달라질 것이다. 
날이 저물어 갈 때, 예수님과 제자를 따라 수많은 사람이 빈들에 모여 있다. 제자들은 이백 데나리온으로 떡을 사서 먹여야 할지 예수님께 질문했다. 예수님께서는 떡이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이때 한 소년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민다. 제자들이 생각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양이지만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주시니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떡과 물고기가 열두 바구니에 넘쳐났다. 그것을 경험한 이가 오천 명이나 되었다. 
만약 나에게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있었다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빈들에 모인 수많은 성인이 한 눈에 들어오는 상황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냥 혼자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먹거나 숨긴 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중이 아닌 예수님으로 시선을 옮기면 어떠할까? 가진 것은 적고 보잘것없지만, 예수님께서 사용하신다면 드릴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놀라운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생생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내 손에 있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무엇인가? 나에게 있지만 작고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이다. 나에게 주신 재능뿐 아니라 자녀, 남편, 아내는 어떠한가? 내 마음에 흡족하지 못한가? 다른 가정과 비교할 때 부족한 것 투성인가? 내 기준으로 너무 부족해서 다른 누구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그것이 예수님의 손길에 의해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입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작은 것은 없다. 그것이 누구의 손에 드려지는지를 보기를 바란다. 예수님께 드려진 은사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 한건수 교수(수원온누리교회, 국민대 겸임교수)


 
<발문>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 작은 것은 없다. 
그것이 누구의 손에 드려지는지를 보기를 바란다. 
예수님께 드려진 은사가 그분의 때에,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것을 믿음으로 선포하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