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영원의 관점으로 오늘을 산다!

신앙에세이  
 
영원의 관점으로 오늘을 산다!
 
몇 년 전 새우 수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 줄지어 바위 위로 걸어가는 영상이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새우가 물 밖으로 이동하는 이 생경한 광경을 보고 많은 사람이 매우 놀랐다. 사람들이 이 영상을 보고 열광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불가능해 보이는 여정을 가능하게 하는 신비한 이유에 대한 호기심 아닐까? 
자연스럽고 일반적인 흐름에 역행하는 동물들의 신비한 생태는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어떤 가수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찬 연어들을 주제로 노래했고, 어떤 가수는 민물장어의 꿈을 상상하며 노래했다. ‘대체 저 생물은 무엇을 얻기 위해 저렇게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는 동물들의 본능이 열정에 목마른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곤 한다.  
방송에서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이 수년 동안 비슷한 포맷으로 반복해서 나오는데도 여전히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절실하고 간절한 열정과 도전을 생동감 있게 지켜보고, 응원하고, 댓글을 달고, 문자메시지 투표에 참여하는 것에 많은 사람이 기쁨을 느낀다. 사람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과 희생하는 헌신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 마음에 더욱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을 향한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안정적인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사자는 많은 동물을 죽일 힘을 갖고 있지만, 허기를 채우면 사냥하지 않는다. 동물들은 본능적인 욕구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배부르고 평안해도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타인의 열정과 헌신, 알 수 없는 동물의 행동에 열광하는 것 같다. 우리가 그렇게 가슴 벅찬 일을 하며 살도록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모험에 대한 욕구가 있다.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모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또한 인간이 동물과 다른 부분이다. 원해도 하지 않는다.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모험 욕구를 잠잠하게 하는 안정 욕구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 밖을 걷는 새우를 보면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른 이의 도전기를 들으면서 적당히 만족한다.
우리 안의 모험 욕구와 안정 욕구가 함께 충족될 수는 없는 것일까? 나의 삶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가슴 뛰는 위대한 일에 참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우리의 갈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삶의 목적지를 인식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에서 바울은 우리의 현실을 장막에 비유했다. 바울이 보기에 우리의 삶은 장막에 머무는 것과 같다. 장막은 임시 거주 공간이다. 그래서 장막은 불편하다. 수명도 짧다. 영원히 장막에 거할 수는 없다. 장막이 때를 다하는 순간 어떻게 되는가? 그때는 우리를 위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예비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장막에 살면서 영원한 하늘의 집을 사모하는 자들이다. 성령님께서 이를 보증해 주시기에 우리는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살 수 있다. 그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의 것(롬 14:8)임을 믿고, 무엇을 하든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행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끝이 무엇인지 미리 알려주셨다. 언젠가 장막을 벗고 하늘의 영원한 처소에 거하는 것을 믿는다면 현실에 지배되지 않고, 장차 맞이하게 될 마지막의 눈으로 오늘을 볼 수 있게 된다. 영원의 관점으로 오늘을 살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주신 소망으로 오늘을 새롭게 하기를 기도한다.
/ 김윤식 목사(서초D공동체)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