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전문가 기고]인간을 향한 사랑과 공감의 힘!

인간을 향한 사랑과 공감의 힘!
다음세대와 눈높이 맞추고, 공감의 폭 넓히기   
 
 
주일 자모실에서 봉사하다 보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함께 예배드리던 시절이 기억날 때가 많다. 엄마 품에 안겨 젖병을 물고 있는 아기, 앉아서 아빠가 주는 이유식을 받아먹는 아기, 자모실에 들어오면서 양말 벗어 던지는 아기, 아장아장 걸으며 남의 과자를 빼앗거나 찬양이 나오는 영상 스크린을 보면서 두 팔 벌려 손뼉 치는 아기 등 천진난만한 모습들이다.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부모의 품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 언제든 달려와 다시 안긴다는 것이다. 부모들도 수시로 아이를 바라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아이의 언어로 대화한다. 남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자녀의 눈높이에 맞추기 때문에 대화가 통한다. 아이가 아직 말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 우리 부부도 수천 번 “엄마”, “아빠”를 선창하며 따라 하게 했던 기억이 있다. 
 
교회 떠난 ‘가나안 청소년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해라, 하지 마라”는 부모의 훈육 영역 안에 있던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그 품에서 벗어나려 하고, 부모와 잦은 충돌을 시작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비유와 시청각 교육방법을 많이 쓰셨다. 왜일까? 그것은 스스로 낮춰 우리 눈높이에 맞춰서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위함이셨을 것이다. 사춘기 때부터 시작된 부모와의 갈등은 청년이 될수록 골이 깊어진다. 진로와 결혼 선택에서도 부딪치게 되고, 말이 통하지 않는 부모와 함께 사는 게 불편해져서 나가 살기도 한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눈을 맞추기 위해 유치할 정도로 노력했던 부모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맞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오히려 회피하다가 결국 좁혀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님과 함께 출석하던 교회를 떠나고,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익숙해진 온라인 영상 예배가 더 편해졌다. 여러 기독교 미디어에서 매주 마음에 드는 목회자의 설교를 골라 듣는다. 그마저도 귀찮아지면 믿음에서 떠나버린다. 
우리는 어쩌면 자녀의 신앙교육을 주일학교에만 맡겨둔 채 칭의(justification)와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한 설명조차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말씀 앞에 회개하고, 비전을 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기도 응답을 받은 체험적 신앙이 있는지 진지하게 살펴본 적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온누리교회는 차세대 교육이 탄탄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주일학교가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교회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와 기도가 필요하다. 아이들은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떠난다. 목회자나 임직자 자녀 중에도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자녀를 조기유학 보낸 한 유명 목사님이 나이 50세를 바라보는 자녀가 좋은 직장에 다니는데도 결혼 생각도 하지 않고, 교회도 나가지 않는다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일반 부모들처럼 자녀의 영적 성장보다 좋은 대학, 안정된 직장을 얻는 것에만 초점을 둔 결과 아닐까? 최근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지앤컨리서치(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서 교회 비출석 중고생 2백 명을 대상으로 신앙 의식과 생활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를 했다. 그 결과 믿음은 있는데 교회는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난 시기가 중학생이 50%로 가장 많았고, 고등학생 25.5%, 초등학생과 그 이전 24.5% 순이었다. 교회를 떠난 이유는 “꼭 교회에 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가 3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공부 때문에”(26.5%), “개인적 이유”(19.0%)가 뒤를 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대다수(84.5%)가 교회 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22%)했거나 “어느 정도 참여”(62.5%)를 해왔다는 것이다. 센터 측은 “비교적 활발하게 교회 활동을 한 청소년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점에서 대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를 떠난 청소년 60%가 다시 돌아올 의향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천주교에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청소년 사역에 대한 이해 부족 및 주입식 교육, 평신도 교사 훈련 부족, 가정 내 신앙 전수의 단절 등을 꼽았다.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초등학생까지 내려왔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청소년을 살려야 한다고 일반과 교계에서 각종 세미나를 열고 있지만, 문제점만 지적할 뿐 대책을 내놓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유럽이나 북미 역시 상황이 심각하다. 네덜란드는 19세기 말 전체 국민의 60%가 개신교인들이었는데 지금은 등록된 6,900개 교회 중에서 20% 이상인 1,400개 교회가 술집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예배에 참석하는 성도는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요즈음 유치원생들에게 가장 뜨거운 명절은 설날이나 추석이 아니다. 핼러윈 축제라고 한다. 얼마 전 3백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핼러윈 축제에 참가한 젊은이 중에는 크리스천도 다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탄을 숭배하기 위해서 몰려간 것이 아니라 재미가 있어서 갔을 것이다. 기독교계는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문화적 요소가 무엇인지 눈높이를 맞추고 살펴봐야 한다. 
찬양(CCM) 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정통찬송가와 클래식 성가, 복음적인 CCM을 선호하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CCM을 거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많은 고민을 하며 현장에서 활동하는 크리스천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있다. 최근 한 지상파TV에서 우승한 보컬 그룹 회사 대표는 “요즘 청소년들은 메타버스 같은 가상세계 미디어에 익숙하고, 유튜브로 춤을 배워 아이돌만큼 춤을 잘 추기 때문에 CCM이나 랩도 수준 높은 댄스가 들어가야 마음을 연다”고 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지역마다 댄스와 뮤지컬, 랩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를 열고 있는데, 랩 가사에 시편과 복음서 말씀을 담아 그들과 함께 열창하고 있다. 이단으로 규정하는 한 종파에서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천만 명의 유저를 끌어들여 팬클럽을 형성했고, 방송 깊숙이 진출해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반면 개교회주의인 기독교계는 관심조차 없고 문화에 한참 뒤져있다. 
필자는 교회 밖 아이들을 위한 문화사역에 하나님의 기름 부르심이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목회자의 설교보다 스타에게 더 영향을 받는 젊은이들의 현실을 기성세대가 인정하는 게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회 안팎의 청소년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려면 그들의 생각과 관심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감을 위한 ‘마인드셋’
 
바람직한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신뢰를 쌓기 위해 끊임없이 공유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 SNS가 공유를 용이하게 만들어 줬다. 다음세대들에게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주입하기보다 개방에 책임을 부여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 경험이 부족한 세대의 실패를 용서하는 아량도 필요하다. 이러한 마인드셋(mindset; 사고방식)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심리학자 테오도어 립스는 “공감이야말로 미적 대상을 감상하는 데 꼭 필요한 역할일 뿐만 아니라 의식을 지닌 생명체로 서로를 인식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라고 주장했다. 타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내 마음이 상대방의 마음을 모방하는 것, 곧 공감에 있다고 본 것이다. 
하룻밤 2,200만 원 하는 호텔에 머물렀던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의 2,500조 재산은 천지 주관자인 하나님 앞에서는 티끌과도 같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가장 가난한 이들과의 공감을 위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그분은 미천한 죄인인 인간을 향해 눈물을 흘리고, 율법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며 엄격한 유대인의 절기를 파격적으로 깨뜨리셨다. 경건해 보이는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당시 가장 천대받던 세리, 창기들과 함께 식사하셨다. 
예수님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인간을 향한 사랑과 공감의 힘이었음을 기억하자. 미래의 교회인 다음세대와 눈높이를 맞추고, 공감의 폭을 넓혀야 한다. 
/ 김수민 권사(동대문중랑공동체, 칼럼니스트)      

 
<발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을 향한 사랑과 공감의 힘입니다. 
다음세대와 눈높이 맞추고, 공감 폭을 넓히십시오. 
 

작성자  정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