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성경이 말하는 저출산 문제의 실효성 있는 해결책
전문가 기고
“그곳에서 번성하고 수가 줄지 않게 하라!”
성경이 말하는 저출산 문제의 실효성 있는 해결책
성경이 말하는 저출산 문제의 실효성 있는 해결책

최근 새로 임명된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그간 저출산 고령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안한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부위원장이 과거 논문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젠더 분석-저출산 담론의 재구성을 위하여>(2018년)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개최한 ‘2020 인구포럼 운영’에서 제시한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취지의 주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원인은 여성의 재생산 권리(자유로운 낙태를 통하여 자녀 수 및 출산 간격을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가 자유롭게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정부 정책이 출산 장려를 위해 여성의 재생산 권리를 규제하는 것이었고, 여성들의 재생산 권리가 법적 혼인 관계 중심의 정상 가족(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혼인을 통해 이루는 것) 이데올로기 등에 의해 제약받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저출산 국가가 되었다. 이처럼 성별 불평등한 가족 구조와 노동시장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출산율 회복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상 가족 규범에서 벗어난 출산 지원 정책이 이뤄져야 저출산 문제가 해결된다.”
낙태권 확대와 부모-친자로 구성된 가족을 깨뜨리는 것이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하나님의 질서보다 우선시하는 문화에서는 이런 주장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다시 세워야 할 무너진 세 가지 기초
작년 미국에서 낙태 제한하는 것을 금지시켰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돕스’ 판결로 뒤집혔다. 이로 인해 낙태를 제한할 수 있는 법을 입법할 수 있는 권한이 각 주에 부여되었다. 하지만 돕스 판결 이후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려는 주법을 도입하려고 했던 캔자스 주의 주민 투표가 부결되었고, 미시간 주에서는 미국 역사상 가장 급진적으로 낙태권을 옹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몬태나 주에서는 낙태 과정에서 죽지 않고 살아난 아기들을 살릴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법보다 개인 선택의 자유가 더 소중하며, ‘낙태는 강간, 근친상간, 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쁘다’는 식의 상대주의적 사고가 대중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팀 패짓(신학자, 작가)과 존 스톤스트리트(콜슨기독교세계관센터 회장)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기초(터)가 무너지고 있는데 의인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시 11:3)는 말씀을 인용하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 세워야 할 무너진 세 가지 기초를 제시했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유일한 근거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고이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잃어버리면 존재의 기반으로 자율성과 자아표현과 같은 막연한 생각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 얄팍한 자아라는 개념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의 자율성과 자아표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희생되어야 한다.
둘째,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진리를 옹호해야 한다. 지금 시대와 같이 상대주의에 사로잡힌 문화에서는 “개인적으로는 프로라이프(낙태 반대, 생명존중)”라고 말하면서도 때에 따라 낙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들의 잘못된 관념이 팽배하고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이러한 이슈들이 도덕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셋째, 아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기 위한 최적의 상황은 혼인 상태의 엄마와 아빠가 있는 환경이다. 아버지나 남편이 없는 가정이 더 일반적인 상황이 된다면 더 많은 태아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낙태가 ‘자율성’이나 ‘선택’의 문제로 포장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미혼 상태의 여성들이(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성들 때문에) 혼자서는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낙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재생산권’이라는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재생산권을 주장하는 사고는 자녀를 일종의 권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자녀를 축복이라고 했지, 성인의 권리라고 하지 않았다. 사무엘의 출생과 같이 성경에서 자녀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허락하실 때 왔다.
사람들이 자녀를 하나님이 설계하신 방법이 아닌 것을 찾고, 정상 가족을 신화나 이데올로기라 격하시키면서 보조 생식기술을 써서 아이를 만들고, 가족과 부모의 의미를 재정의하면, 의도적으로 한 아이에게서 생물학적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양친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게 된다. 성인들이 자녀를 권리로 취급할 때마다 아이들이 양친에 대해 갖는 권리는 필연적으로 침해된다.
1973년 제정된 미국 통일양육법에서 부모의 정의는 “혼인 상태와 무관하게 한 자녀의 생물학적 친부모”였다. 하지만 2002년 보조 생식기술이 많이 사용되면서(생물학적 친부모는 아니지만) 정자 기증, 난자 기증,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얻은 사람들도 부모의 정의에 포함되었다. 2015년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로 동성혼이 인정되자 비혼 상태의 동성파트너까지 입양 절차 없이 한 아이의 부모로 인정되었다.
케이티 파우스트(아동인권 운동가, 작가)는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를 선택적인 것으로 만들면 부모 됨에 있어 엄마와 아빠도 선택적인 것이 된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팀 패짓(신학자, 작가)과 존 스톤스트리트(콜슨기독교세계관센터 회장)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기초(터)가 무너지고 있는데 의인들이라고 별 수 있겠는가?”(시 11:3)는 말씀을 인용하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시 세워야 할 무너진 세 가지 기초를 제시했다.
첫째,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유일한 근거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고이다. 인간으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잃어버리면 존재의 기반으로 자율성과 자아표현과 같은 막연한 생각밖에 남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이 얄팍한 자아라는 개념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의 자율성과 자아표현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희생되어야 한다.
둘째,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진리를 옹호해야 한다. 지금 시대와 같이 상대주의에 사로잡힌 문화에서는 “개인적으로는 프로라이프(낙태 반대, 생명존중)”라고 말하면서도 때에 따라 낙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들의 잘못된 관념이 팽배하고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장기적으로 이러한 이슈들이 도덕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셋째, 아이들을 보살피고 보호하기 위한 최적의 상황은 혼인 상태의 엄마와 아빠가 있는 환경이다. 아버지나 남편이 없는 가정이 더 일반적인 상황이 된다면 더 많은 태아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낙태가 ‘자율성’이나 ‘선택’의 문제로 포장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미혼 상태의 여성들이(아이를 원하지 않는 남성들 때문에) 혼자서는 아기를 키울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낙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재생산권’이라는 용어 자체에서 알 수 있듯이 재생산권을 주장하는 사고는 자녀를 일종의 권리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은 자녀를 축복이라고 했지, 성인의 권리라고 하지 않았다. 사무엘의 출생과 같이 성경에서 자녀는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허락하실 때 왔다.
사람들이 자녀를 하나님이 설계하신 방법이 아닌 것을 찾고, 정상 가족을 신화나 이데올로기라 격하시키면서 보조 생식기술을 써서 아이를 만들고, 가족과 부모의 의미를 재정의하면, 의도적으로 한 아이에게서 생물학적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양친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게 된다. 성인들이 자녀를 권리로 취급할 때마다 아이들이 양친에 대해 갖는 권리는 필연적으로 침해된다.
1973년 제정된 미국 통일양육법에서 부모의 정의는 “혼인 상태와 무관하게 한 자녀의 생물학적 친부모”였다. 하지만 2002년 보조 생식기술이 많이 사용되면서(생물학적 친부모는 아니지만) 정자 기증, 난자 기증,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얻은 사람들도 부모의 정의에 포함되었다. 2015년 ‘오버거펠 대 호지스’ 판결로 동성혼이 인정되자 비혼 상태의 동성파트너까지 입양 절차 없이 한 아이의 부모로 인정되었다.
케이티 파우스트(아동인권 운동가, 작가)는 “결혼에서 남편과 아내를 선택적인 것으로 만들면 부모 됨에 있어 엄마와 아빠도 선택적인 것이 된다”고 정확히 지적했다.
아빠, 엄마, 자녀는
‘자명한 삼각형’
‘자명한 삼각형’
GK 체스터턴은 가족을 아빠, 엄마, 자녀의 삼면이 있는 ‘자명한 삼각형’으로 지칭하며, 아이를 낳기 위해 한 남자와 여자가 필요하고, 문명이 지속하려면 아이는 새로 태어나야 하고, 가족이라는 자명한 삼각형은 무너뜨릴 수 없으며, 오히려 이 진리를 무시하는 문명이 무너질 거라고 했다. 그는 1920년대에 이미 정상 가족을 벗어난 형태의 가족이 가족의 대안으로 제안될 것을 예견하면서 현실 때문에 가족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했다. 즉, 아이들은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고, 엄마는 남편이 필요하고, 아빠는 아내가 필요하며 이것은 사회나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너무나 완고한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가족에 대한 정의를 바꿀 수 있는 척하면서 가족을 의도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은 마치 이미 비가 내리고 있는데 비를 막겠다고 우산을 들고, 물뿌리개 호스로 식물에 물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기초와 거대한 세속 문화의 물결을 뒤집고, 세계 최고 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케이티 파우스트가 최근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나라가 걱정되시나요? 집을 사고 텃밭을 만들고 결혼을 잘하세요. 자녀를 많이 낳고, 자녀들이 결혼을 잘하도록 도와주세요. 훌륭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세요. 공직에 출마할 필요도 없고, 팟캐스트를 시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씽크탱크를 이끌 필요도 없어요. 가장 강력하고 문화를 거스를 수 있는 일은 당신의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예레미야 29장 5~6절.”
그녀가 말미에 예로 든 <예레미야서> 29장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낸 하나님의 말씀이다.
“집들을 짓고 그곳에서 살라. 정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나는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해 아들들과 딸들을 낳으라. 너희 아들들을 위해 그 아내들을 취하고 너희 딸들을 결혼시켜 그들이 아들딸들을 낳게 하라. 너희가 그곳에서 번성하고 수가 줄지 않게 하라”(렘 29:5~6).
우리가 비록 영적으로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삶은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주장했던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진정한 인간의 번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실을 존중하고 기리는 데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 하선희 집사(강남E공동체, 콜슨 펠로우즈 한국지부 대표)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기초와 거대한 세속 문화의 물결을 뒤집고, 세계 최고 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를 위해 우리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케이티 파우스트가 최근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나라가 걱정되시나요? 집을 사고 텃밭을 만들고 결혼을 잘하세요. 자녀를 많이 낳고, 자녀들이 결혼을 잘하도록 도와주세요. 훌륭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세요. 공직에 출마할 필요도 없고, 팟캐스트를 시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씽크탱크를 이끌 필요도 없어요. 가장 강력하고 문화를 거스를 수 있는 일은 당신의 가정에서 일어납니다. 예레미야 29장 5~6절.”
그녀가 말미에 예로 든 <예레미야서> 29장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낸 하나님의 말씀이다.
“집들을 짓고 그곳에서 살라. 정원을 만들고 그곳에서 나는 열매를 먹으라. 아내를 취해 아들들과 딸들을 낳으라. 너희 아들들을 위해 그 아내들을 취하고 너희 딸들을 결혼시켜 그들이 아들딸들을 낳게 하라. 너희가 그곳에서 번성하고 수가 줄지 않게 하라”(렘 29:5~6).
우리가 비록 영적으로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삶은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주장했던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진정한 인간의 번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실을 존중하고 기리는 데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 하선희 집사(강남E공동체, 콜슨 펠로우즈 한국지부 대표)
영적으로 바벨론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삶은
세상의 해결책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인간의 번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실을
존중하고 기리는 데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삶은
세상의 해결책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인간의 번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실을
존중하고 기리는 데서만 발견되기 때문이다.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