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고맥락 언어와 저맥락 언어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고맥락 언어와 저맥락 언어
 
칠레 남부 지역 ‘야간족’이 사용하는 단어 중에 ‘마밀라피나파타이(Mamihlapinatapai)’가 있다. 이 단어는 간단히 설명하기 힘들다. 길게 설명해야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뜻을 굳이 설명하면, ‘서로에게 꼭 필요한 일이지만 자신이 나서서 감당하기는 싫고, 상대방이 알아서 해주기를 원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조별 과제를 할 때 누가 조장이 될 것인지를 정하는 때 분위기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야간족에서 살면 누구보다 상대방의 필요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말하지 않는 숨은 의도를 찾을 수 있는 감각이 그 어느 사회보다 많이 필요할 것이다. 외부 사람이 이들과 함께 살면서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면 매우 무례한 사람 혹은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 정도로 취급될 것이다. 필요한 게 있어도 철저히 상대방이 먼저 알아주기까지 기다리는 게 그 종족의 전통이고 관습이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표현보다 간접적인 표현을 많이 하는 문화일수록 그 사회를 ‘고맥락 사회’라고 분류한다. 고맥락 사회에서는 고맥락 의사소통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수많은 제스처와 간접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이 발달되어 있다.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고맥락 언어를 사용하는 게 보편화되고 익숙해진 방식이다. 고맥락 사회에서 ‘마밀라피나파타이’라는 단어는 충분히 이해가 될 것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그 무엇이라 서로 여기며 살아간다.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서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여유가 있는 사람이 짐도 지면서 살아가는 것을 ‘사람 사는 냄새 나는 관계’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 분위기의 사회에서는 눈치가 빠를수록 유능하고, 마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을 수 있다. 
고맥락 문화와 비교되는 문화가 저맥락 문화다. 저맥락 문화에서 소통은 단어와 사실적인 표현 위주로 이루어진다. 집단보다 개인 대 개인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경향도 있다. 저맥락 문화에서는 돌려서 말하기보다 직접적으로 자신의 필요와 불편함을 상대방에게 표현한다. 그렇게 표현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교육받는다. 고맥락 문화와 고맥락 언어를 하루아침에 습득하지 않은 것처럼, 저맥락 문화에서 살아왔던 사람도 하루아침에 저맥락 언어를 습득하지 않는다. 정말 오랜 시간, 세대를 거치면서 습득한 문화이자 언어 스타일이다.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스타일에 대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저맥락 문화에서 ‘마밀라피나파타이’라는 단어는 이해하기 몹시 어려울 것이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문화에서 자란 사람이 “알아서 해줘”라는 눈빛을 보내는 고맥락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마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고맥락 문화에서 살게 된다면 말로 표현되지 않는 메시지와 제스처를 학습해야 할 것이다. 저맥락 문화에서 살게 된다면 그 문화 분위기에 맞는 언어를 익혀야 할 것이다. 물론 둘 다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는 과정을 동반하게 된다. 
당신의 부부 사이에서는 어떠한가? “내 배우자는 퇴근해서 아무것도 안 해요! 그냥 소파에만 누워있어요!”,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내가 분노의 눈빛을 보내도 전혀 몰라요”, “내 배우자는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말 몰라요”, “눈치가 전혀 없어서 이제는 포기 상태에요!”라고 말하는 부부가 있다. 말해도 전혀 듣지 않고, 눈빛을 수없이 보내도 알아채지 못하는 배우자를 바라보면서 “이것까지 말해야 하나?”, “이런 것도 몰라주는 당신이 원망스럽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부부 사이에 고맥락 언어가 계속해서 오작동 된다고 할 수 있다. 연애 때는 부부 사이에 고맥락 언어가 문제없이 사용되었더라도, 차츰 저맥락 언어와 고맥락 언어를 오가면서 사용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고맥락 언어와 저맥락 언어를 두고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쌓아온 전통과 문화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살아온 배경이 다를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자랐던 환경이 직접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환경이었을 수도 있고, 그와 정반대로 자신의 속마음이나 기대를 절대로 표현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 만일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결혼했다면 표현 방식에서 잦은 충돌을 경험할 것이다. 나의 방식도 수정하고, 상대방의 표현 방식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절충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더 깊은 결속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실 ‘마밀라피나파타이’와 같은 고맥락 언어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에게 관심이 있으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얼마나 관심을 갖고 상대방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마음과 필요를 읽고 자진해서 배우자의 마음에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다. 때로는 봉사로, 때로는 뜻하지 않는 선물 등의 형태로 배우자에게 즐거움과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적절히 상대의 필요를 읽을 수 있는 관계의 센스도 익히고, 자신의 필요와 마음을 적절히 표현하는 자세도 연습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벧전 3:8~9).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그런 당신이 좋다> 저자)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