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가족과 함께 떠나는 '신앙교육여행'] 데이트 선교사와 금산교회

가족과 함께 떠나는 ‘신앙교육여행’
 
테이트 선교사와 금산교회
그 사랑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다. 땅을 뜨겁게 달구는 해가 그만 좀 떴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7월의 해는 시간을 더 길게 끌면서 떠 있다. 무더운 7월의 해보다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7월의 해가 떠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이어지는 사랑 이야기다. 그 사랑 이야기를 찾아 7월 신앙교육여행은 전라북도 김제로 떠나보려 한다.
1884년 2월 미국성서공회가 발행하는 잡지 <Bible Society Record; BSR>에 한 조선인의 간절한 열망이 담긴 편지가 실렸다. “조선에 선교사를 파송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이수정의 호소였다. 이 편지는 선교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선교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마침내 1885년 4월 그가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뎠다. 조선 최초의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정신없이 바쁜 첫 번째 사역기를 마치고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돌아갔지만, 마냥 쉬지 않았다. 다양한 곳에서 선교 보고뿐만 아니라 조선 선교를 알리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1891년 내쉬빌 선교대회에서 그의 강연은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쉽지 않은 과정을 통과하고 마침내 1892년 조선으로 파송된 미국 남장로교 7인의 선발대 중 한 사람인 ‘테이트(Lewis Royd Tate) 선교사’다.
테이트 선교사는 정열적인 활동가였다. 전라북도 전주를 중심으로 익산, 정읍, 태인, 남원 등 조선인 조사와 함께 전도여행을 하며 선교에 매진했다. 그는 다리를 약간 저는 장애를 가졌음에도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일을 보고 아니할 수 없는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떤 해에는 약 500개 마을을 방문해서 성경과 소책자 약 4천 권을 판매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그는 단순히 복음을 선포하고 확장하는 일에만 매진하지 않았다. 올바르게 신앙이 세워지도록 엄격하게 검증하고 가르쳤다.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을 갖게 되어 세례를 청원하더라도 ‘진정한 열매’를 확인하기 전까지 문답하고 평가했다. 함부로 세례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사역 열매가 증거로 남아 있는 교회가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금산교회’다.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 활동 덕분에 금산리 용화마을에서 예배가 시작되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헌신으로 예배당도 세워졌다. 예배당 모양 자체가 우리나라에 몇 개 남아 있지 않은 ‘ㄱ’자 교회다. 예배당 모양이 주는 특별함 때문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반만 보는 것이다. 이 교회가 품고 있는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건네는 ‘조덕삼과 그 집안의 마부 이자익’의 이야기를 꼭 현장에서 확인해야 방문의 완성을 할 수 있다.
금산교회가 더욱 특별한 것은 오래된 교회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건물을 힘들여 보존하고, 그 옆에 새로운 예배당을 세웠다. 옛 교회의 자취와 함께 오늘날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금산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뤄진 일임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방문했으면 좋겠다.
“조선을 긍휼히 여겨달라”는 이수정의 호소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닿았고, 조선을 사랑하고 안타깝게 여겼던 언더우드의 마음이 테이트 선교사에게 전해졌다. 테이트 선교사의 전도 활동이 금산교회를 세웠고, 금산교회가 품고 있는 기독교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 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무리 끊으려 해도 소용없다. 이어지고 또 이어져 결국 열매를 맺는다. 신앙교육여행에서는 그 사랑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8월에도 테이트 선교사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사랑의 발자취를 소개하려 한다. 테이트 선교사의 사랑과 전도 활동이 또 다른 열매를 맺은 곳 ‘전라북도 전주시’를 소개할 예정이다.
/ 이세영 목사(대전온누리교회)

작성자  홍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