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 성경적 세계관으로 답하다] 저출산 문제, 교회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인구감소, 성경적 세계관으로 답하다
저출산 문제,
교회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교회가 해답을 제시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해리 덴트가 언급한 ‘인구절벽(The Demographic Cliff)’을 한국 사회가 현실로 맞닥뜨리고 있다. 인구절벽에서 떨어져 민족이 소멸할 위기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실천할 힘과 의지가 있는지 아직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인구가 감소하면 산업이 쇠퇴하고, 세수가 줄어들고, 생산인구가 부족해 경제가 멈추게 된다는 사실은 기독교인과 교회에게도 동일한 문제다.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순종 도구로 쓰임 받을 때였다. 만일 저출산 문제를 우리의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세속적 분석 틀에서 벗어나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믿음의 실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출산을 설명하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크게 산업화 및 도시화가 가져온 생활 양식의 변화,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가족 내 돌봄 인력의 부족으로 축약할 수 있다. 먼저 생활의 편리와 개선 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돌이켜 자급자족 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환경을 위해서 덜 쓰고, 재생하고 공유해서 쓰는 게 필요하겠지만, 산업구조를 과거로 회귀시킬 수는 없다. 산업화와 여성의 사회진출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한 가족에 대한 가치관 변화도 살펴보자.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3대가 함께 살던 확대가족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 사람들이 배우자 및 자녀들과 핵가족을 이루는 가족의 소규모화를 겪었다. 1970년에는 5인 이상 가구 비율이 61.5%에 달했지만, 2022년에는 1인과 2인으로 이루어진 가구가 63.8%다. 약 50년 만에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제는 높은 비혼율과 이혼율로 인해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가 개인이 되어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하는 집단주의가 강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친 국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우세해진다. 개인주의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폭정, 특정 이데올로기를 위한 전체주의에 맞서는 개념으로, 개인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그 결과도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 공동체와 개인을 분리하는 사회적 원자화, 공동선과 약자돌봄에 대한 무관심 등을 설명하는 부정적 의미로 혼용되기도 한다. 개인의 유익과 사회적 유익이 갈등할 때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개인을 우선하고, 특히 사회적 지원이 부족할 때 더욱 개인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가족 내 돌봄 인력의 부족’은 여성에게 충분한 지원 없이 희생을 요구해온 데 대한 저항과 개인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보인다.
출생률 조절의 필요성을 훨씬 오래전에 체감한 서구 사회에서는 남성의 가사노동을 독려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도 남녀 구분 없이 가사와 육아를 당연히 함께하는 일로 인식해 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부부에게 자녀를 갖는 일은 여전히 경제적, 시간적으로 엄청난 도전이다. 그들에게 특히 생명처럼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기본적 의식주가 가장 절박했던 산업화 이전에는 곳간에서 인심이 났다. 종일 굶다가 친구가 이끌고 간 교회에서 입안 가득한 초코파이의 행복한 단맛을 경험했던 성인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를 다시 찾아가고 싶어졌다. 자기 자식을 먹이기도 충분하지 않던 시절 성도들의 헌금이 그들의 생명이었고, 그 생명으로 전달된 초코파이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메타포(metaphor)가 되었다.
온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이 시대에 교회가 해법을 제시한다면, 자녀 출산과 양육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교회공동체의 따뜻한 시간을 나누어주는 게 답이 되지 않을까? 교회의 비전을 차세대 양육과 지원에 둔 안산의 K교회는 성도들의 평균 자녀 수가 3명 이상이라고 한다. 교회에는 평일에도 아기를 안고 나온 부모님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교회에 오면 자녀를 기르며 느끼는 신앙적 어려움이나 양육 문제 등을 나눌 수 있고, 다른 성도들의 아이를 잠시 맡아주기도 하며 육아에 지친 부모들의 손을 쉬게 해 준다. 맞벌이로 아이와 눈 맞춤할 시간이 부족한 가정,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다문화가정, 행복한 공동체를 염원하는 지역사회 가정을 교회가 따뜻하게 반기며 넉넉한 시간을 내어 주는 사랑방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 정상원 집사(강남C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기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순종 도구로 쓰임 받을 때였다. 만일 저출산 문제를 우리의 생존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세속적 분석 틀에서 벗어나 성경적 세계관으로 이해하고, 믿음의 실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출산을 설명하는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 크게 산업화 및 도시화가 가져온 생활 양식의 변화,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여성의 사회진출에 따른 가족 내 돌봄 인력의 부족으로 축약할 수 있다. 먼저 생활의 편리와 개선 욕구를 바탕으로 하는 산업화와 도시화를 돌이켜 자급자족 시대로 돌아갈 것인가? 환경을 위해서 덜 쓰고, 재생하고 공유해서 쓰는 게 필요하겠지만, 산업구조를 과거로 회귀시킬 수는 없다. 산업화와 여성의 사회진출 결과이자 원인이기도 한 가족에 대한 가치관 변화도 살펴보자. 한국 사회는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며 3대가 함께 살던 확대가족에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한 사람들이 배우자 및 자녀들과 핵가족을 이루는 가족의 소규모화를 겪었다. 1970년에는 5인 이상 가구 비율이 61.5%에 달했지만, 2022년에는 1인과 2인으로 이루어진 가구가 63.8%다. 약 50년 만에 완전히 역전되었다. 이제는 높은 비혼율과 이혼율로 인해 사회를 이루는 기본 단위가 개인이 되어가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위계질서가 뚜렷하고, 공동체를 개인보다 우선하는 집단주의가 강했다. 그러나 산업화를 거친 국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우세해진다. 개인주의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폭정, 특정 이데올로기를 위한 전체주의에 맞서는 개념으로, 개인이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그 결과도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 공동체와 개인을 분리하는 사회적 원자화, 공동선과 약자돌봄에 대한 무관심 등을 설명하는 부정적 의미로 혼용되기도 한다. 개인의 유익과 사회적 유익이 갈등할 때 개인주의는 필연적으로 개인을 우선하고, 특히 사회적 지원이 부족할 때 더욱 개인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가족 내 돌봄 인력의 부족’은 여성에게 충분한 지원 없이 희생을 요구해온 데 대한 저항과 개인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보인다.
출생률 조절의 필요성을 훨씬 오래전에 체감한 서구 사회에서는 남성의 가사노동을 독려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도 남녀 구분 없이 가사와 육아를 당연히 함께하는 일로 인식해 가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부부에게 자녀를 갖는 일은 여전히 경제적, 시간적으로 엄청난 도전이다. 그들에게 특히 생명처럼 부족한 것이 시간이다. 기본적 의식주가 가장 절박했던 산업화 이전에는 곳간에서 인심이 났다. 종일 굶다가 친구가 이끌고 간 교회에서 입안 가득한 초코파이의 행복한 단맛을 경험했던 성인들은 힘들고 어려울 때 교회를 다시 찾아가고 싶어졌다. 자기 자식을 먹이기도 충분하지 않던 시절 성도들의 헌금이 그들의 생명이었고, 그 생명으로 전달된 초코파이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강력한 메타포(metaphor)가 되었다.
온 사회가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이 시대에 교회가 해법을 제시한다면, 자녀 출산과 양육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교회공동체의 따뜻한 시간을 나누어주는 게 답이 되지 않을까? 교회의 비전을 차세대 양육과 지원에 둔 안산의 K교회는 성도들의 평균 자녀 수가 3명 이상이라고 한다. 교회에는 평일에도 아기를 안고 나온 부모님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교회에 오면 자녀를 기르며 느끼는 신앙적 어려움이나 양육 문제 등을 나눌 수 있고, 다른 성도들의 아이를 잠시 맡아주기도 하며 육아에 지친 부모들의 손을 쉬게 해 준다. 맞벌이로 아이와 눈 맞춤할 시간이 부족한 가정,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다문화가정, 행복한 공동체를 염원하는 지역사회 가정을 교회가 따뜻하게 반기며 넉넉한 시간을 내어 주는 사랑방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 정상원 집사(강남C공동체, 온누리세계관학교)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