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신앙에세이] 참된 영성

신앙에세이
 
참된 영성
 
작은예수 40일 새벽기도회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40일간 예배드리면서 큰 은혜를 받았다. 선포된 말씀 가운데 은혜받은 말씀이 있어 나누고자 한다. <누가복음> 15장 29~32절 탕자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환대하며 잔치를 벌이고 살진 송아지를 잡자 맏아들이 화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 종노릇하고 무슨 말씀이든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며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창녀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 집에 돌아오니까 아버지는 그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눅 15:29~30). 
맏아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이해가 된다. 이제까지 아버지 앞에서 성실한 삶을 살았던 자신에게는 전혀 보상이 없고, 가출해서 재산을 탕진한 동생에게는 잔치를 베풀면서 환대했다는 게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예수님을 향한 분노의 마음이 담긴 메시지이기도 하다. “왜 율법을 지키며 성실한 삶을 살아온 우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죄짓고 불성실한 자들을 환대하고 영접하는가?” 이 말은 죄인을 의인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불공평한 처사에 대한 불만이었다. 동시에 성실히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거부의 표현이었다. 여기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지 않느냐? 또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그를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잔치를 벌이며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눅 15:31~32)
아버지가 말하는 복이란 너와 내가 함께 있는 것이고, 너는 나의 상속자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며, 하나님의 것이 다 우리의 것이라는 확신이 삶을 만족시킨다는 것이다. 나는 이 아버지의 대답에서 참된 영성과 종교생활의 차이를 확연히 깨닫게 되었다. 참된 영성이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것이 다 나의 것이며,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생을 힘들게 하는 원인인 결핍과 부족이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그분의 원대한 신성과 능력이 우리에게 전수 된다면 얼마나 풍성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겠는가?
반면에 율법의 준수에 목을 매고, 그에 따른 명예와 보상에 집착하는 것은 전형적인 종교 생활의 표상이다. 영성이 깊은 신앙생활이 아닌 종교 생활을 하면 나 중심, 남에게 보여주는, 성과 위주의 삶을 살게 된다. 혹시 은연중에 자신의 신앙이 종교 생활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위임 목사님이 설교 중에 들려주신 예화가 생각난다. 어느 교회 장로님이 새로 부임한 목사에게 “앞으로 목회할 때 새신자 강조하지 말고, 차세대 우선하지 말고, 땅끝 이야기도 하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하면 이곳을 지키고 있는 성도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장로님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는 되지만, 그렇게 되면 결국 신앙이 자라지 못하고, 교회가 죽게 된다. 죄인이 돌아오고 죽었던 동생이 살아나도 환대하지 못하고, 도리어 화를 내는 사람이 탕자의 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종교 생활을 하면 삶에 만족이 없고, 결코 새신자가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다음세대에게 신앙 유산을 전수하지 못하고,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종교 생활이 아닌 하나님과 늘 함께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수받는 깊은 영성을 소유해야 한다. 그래서 경쟁과 물질주의가 가득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한다. 
/ 허원희 목사(과천의왕공동체)
 

작성자  김다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