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
크리스천을 위한 부부상담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
한 소통 전문가가 일상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이 말을 계속 되뇌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되고, 상황을 통제할 여유를 갖게 된다. 살면서 의사소통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기분 나쁘게 말하거나 이유 없이 공격적으로 말을 뱉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상대의 마음이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몹시 상한다. 단순히 기분이 상하는 단계를 넘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통제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이 튀어나온다. 세미나에서 배웠던 고상하고 공감적인 대화 방법이 머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의사소통을 배우기 전의 거칠고 전투적인 대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 대상과 격렬하게 말싸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과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고 나면 손해는 자신에게 고스란히 남게 된다. 싸운 시점이 아침이라면 그 하루를 완전 망친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삶의 많은 영역에서 선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정서적으로 가장 건강하다. 삐뚤어진 말로 공격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동의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이 우리 안에 있는 공격성을 사용해서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하게 다투고 나면 자신의 마음에 남는 게 긍정적인 감정과 마음이 아니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좌절감과 분노가 남는다.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건강하고 성숙하게 삶의 주도권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 결과가 분명 다를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싸울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분명히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상대방이 내던지는 감정의 쓰레기를 받지 않을 것인가?’ 등의 선택에서 주도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유익할 것이다.
소통 전문가는 입이 거칠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과 대면했을 때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부정적 감정의 쓰레기를 마음에 받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삶의 주도성을 발휘한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냉정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주도성을 가진 표현을 한다. 물론 공손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전달했더라도 이미 마음이 꼬여있거나 타인을 무시하는 게 일상이 된 사람은 태도에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주도성은 성숙을 추구해 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성품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 대단한 수준의 의사소통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다음 여전히 태도의 변화 없이 쏘아붙이는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말이 통하면 다행이지만, 전혀 통하지 않을 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라면서 포용적으로 상황을 수용한다면 상황이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 자신이 손해를 보고, 무시당한 것이 화가 나지만, 포용적으로 상황을 수용했을 때 따라오는 이점이 있다.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성숙해진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하루를 망치지 않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가족은 함께 살면서 의도하지 않게 주고받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외모를 가지고 장난스럽게 비하하는 말을 하는 가족이 있을 수 있다. 놀랍게도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정말 편하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은 함께 살면서 행복한 기억도 갖고 있지만, 대못이 박힌 것처럼 아픈 말과 상대방의 무례했던 행동을 마음에 두고 살기도 한다. 배우자가 했던 말 중에 아팠던 말을 마음에 두기도 하고, 양가 부모 중에 서운하게 했던 말을 마음에 담아두기도 한다. 간혹 만나는 형제나 친척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나 섭섭했던 말을 상처로 담아두기도 한다. 상대가 누구든 고약하게 했던 말과 무례한 행동으로 받은 상처와 고통에 끌려간다면 삶이 더욱 우울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상처에 함몰되어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된다.
상처를 줬던 상대방과 기분 나쁜 기억을 지우기 어렵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내 삶의 주도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픈 과거 경험까지 포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과거 누군가 했던 가슴 아팠던 말과 행동에 더는 끌려가지 않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라면서 가족 구성원과의 부정적 경험을 포용적으로 다시 볼 수 있다면 가족 관계가 조금 더 편안해질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모습이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타나기 쉽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말과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좋다가 어떤 특별한 시점에 자신의 모난 부분이 표출될 때가 있다.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불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시기를 지나는 시점에서 파괴적인 말과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갈등 증폭의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에 여전히 끌려다니면 삶이 안타까움의 연속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기억을 돌이킬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가족 관계와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마음을 늘 괴롭히는 가까운 누군가의 말과 행동, 표정이 가슴 깊이 아리게 남아있다면 불완전한 상대와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정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 (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그런 당신이 좋다> 저자)
한 소통 전문가가 일상에서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다. 이 말을 계속 되뇌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되고, 상황을 통제할 여유를 갖게 된다. 살면서 의사소통이 전혀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기분 나쁘게 말하거나 이유 없이 공격적으로 말을 뱉는 유형의 사람들이다. 상대의 마음이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려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몹시 상한다. 단순히 기분이 상하는 단계를 넘어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통제하기 어려운 말과 행동이 튀어나온다. 세미나에서 배웠던 고상하고 공감적인 대화 방법이 머리에서 사라져 버린다. 의사소통을 배우기 전의 거칠고 전투적인 대화 방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 대상과 격렬하게 말싸움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과 목소리를 높여서 싸우고 나면 손해는 자신에게 고스란히 남게 된다. 싸운 시점이 아침이라면 그 하루를 완전 망친다.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삶의 많은 영역에서 선택의 주도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정서적으로 가장 건강하다. 삐뚤어진 말로 공격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행동의 자연스러운 진행 방향이 우리 안에 있는 공격성을 사용해서 적극적으로 대적하는 것이다. 그런데 심하게 다투고 나면 자신의 마음에 남는 게 긍정적인 감정과 마음이 아니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 같은 좌절감과 분노가 남는다. 공격적으로 행동하고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건강하고 성숙하게 삶의 주도권을 사용할 수 있다면 그 결과가 분명 다를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싸울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 ‘분명히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상대방이 내던지는 감정의 쓰레기를 받지 않을 것인가?’ 등의 선택에서 주도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면 유익할 것이다.
소통 전문가는 입이 거칠고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과 대면했을 때 마음에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부정적 감정의 쓰레기를 마음에 받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 삶의 주도성을 발휘한다. 먼저 자신의 마음을 냉정하게 표현한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주도성을 가진 표현을 한다. 물론 공손하고 직접적으로 말을 전달했더라도 이미 마음이 꼬여있거나 타인을 무시하는 게 일상이 된 사람은 태도에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주도성은 성숙을 추구해 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성품이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사실 대단한 수준의 의사소통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다음 여전히 태도의 변화 없이 쏘아붙이는 상대방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말이 통하면 다행이지만, 전혀 통하지 않을 때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라면서 포용적으로 상황을 수용한다면 상황이 극단으로 가지 않는다. 자신이 손해를 보고, 무시당한 것이 화가 나지만, 포용적으로 상황을 수용했을 때 따라오는 이점이 있다.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성숙해진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하루를 망치지 않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가족은 함께 살면서 의도하지 않게 주고받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외모를 가지고 장난스럽게 비하하는 말을 하는 가족이 있을 수 있다. 놀랍게도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정말 편하게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은 함께 살면서 행복한 기억도 갖고 있지만, 대못이 박힌 것처럼 아픈 말과 상대방의 무례했던 행동을 마음에 두고 살기도 한다. 배우자가 했던 말 중에 아팠던 말을 마음에 두기도 하고, 양가 부모 중에 서운하게 했던 말을 마음에 담아두기도 한다. 간혹 만나는 형제나 친척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했던 말이나 섭섭했던 말을 상처로 담아두기도 한다. 상대가 누구든 고약하게 했던 말과 무례한 행동으로 받은 상처와 고통에 끌려간다면 삶이 더욱 우울하고 고통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 상처에 함몰되어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게 된다.
상처를 줬던 상대방과 기분 나쁜 기억을 지우기 어렵다.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할 수도 없다. 어쩌면 내 삶의 주도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픈 과거 경험까지 포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과거 누군가 했던 가슴 아팠던 말과 행동에 더는 끌려가지 않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때도 있지”라면서 가족 구성원과의 부정적 경험을 포용적으로 다시 볼 수 있다면 가족 관계가 조금 더 편안해질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한 모습이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에서 나타나기 쉽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말과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다. 한결같이 좋다가 어떤 특별한 시점에 자신의 모난 부분이 표출될 때가 있다. 자신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불완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시기를 지나는 시점에서 파괴적인 말과 행동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갈등 증폭의 시기에 발생했던 사건에 여전히 끌려다니면 삶이 안타까움의 연속이 될 것이다. 믿음으로 부정적인 기억을 돌이킬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가족 관계와 결혼 생활에서 자신의 마음을 늘 괴롭히는 가까운 누군가의 말과 행동, 표정이 가슴 깊이 아리게 남아있다면 불완전한 상대와 자신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정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 황규복 박사, 김숙경 소장 부부 (두란노 결혼예비학교 부부 강사, <그런 당신이 좋다> 저자)
작성자 김다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