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호의 홀리바디(Holy Body)] 영·혼·육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
정주호의 홀리바디(Holy body)
영·혼·육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
성경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하고, ‘일용할 생명의 양식’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말씀을 먹는다’라고 표현한다. 말씀을 먹으면 영혼의 생명이 살아난다. 마찬가지로 몸에 좋은 영양소를 먹는 것은 몸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성경은 우리가 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채소와 과일, 고기를 잘 먹으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우리는 식탐이나 스트레스를 마취시키기 위한 진통제로 폭식과 야식 등을 한다. 또 극한의 다이어트나 우울감으로 인한 거식증이나 편식, 극단적인 식단 등으로 몸의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한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하루 먹을 양식이다. 곧 오늘 하루를 살아갈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겸손함이 있을 때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먹고도 남을, 내일도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음식을 저장하듯 몸에 쌓아 넣는 것은 식탐이며 과욕이다.
<고린도전서> 8장 13절은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만 배불리 채우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채움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음식 자체는 부정하지 않다. 죄가 없다. 하지만 음식을 바라보고 먹는 사람의 마음에 식탐이 있다면 이마저도 탐욕이다. 물욕, 명예욕과 다를 게 없다. 또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면 건강을 해칠뿐더러 체지방도 늘어난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까지도 살리는 능력의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다. 하지만 식사 외에 야식을 먹으면서 살을 빼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역사적으로 이런 기도 응답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실천, 노력과 성실을 대적하는 나태와 게으름, 편해지고자 하는 본능의 욕심과 싸움이기 때문이다. 의지와 본능의 싸움은 하나님의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쉽게 구분하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본능을 거스르며 오늘도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적절한 양과 영양소의 주어진 분량만큼만 감사히 먹는 절제의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의 양식을 먹는 것도 다르지 않다. 때로 성경을 기간 내에 빨리 일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보통 말씀을 읽을 때, 단순한 읽기의 정확을 요구하는 ‘정독’, 분량을 빨리 해치우려는 ‘속독’, 최근 유행하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며 넓게 읽는 ‘통독’을 선택한다. 하지만 필자는 꼭꼭 씹어 먹는 방법인 ‘심독’을 권하고 싶다. 심독은 문맥 속 의미를 깊이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의 의도를 좇아가며 자신의 삶과 연결해 성찰하는 읽기 방법이다. ‘성찰적인 독서’ 또는 ‘묵상적 독서’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 성경 읽기는 내 안에서 울림을 찾아가게 도와준다. 그뿐만 아니라 내적 변화와 외적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읽기 속도가 늦더라도 한 줄의 말씀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내가 변화되고 살아가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두 가지 양식을 겸손하고, 감사하고, 기쁘게 깨달으며 먹어야 한다. 육의 양식만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몸은 살되 영혼이 점점 죽어가는 삶을 살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만 먹고 육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영혼을 담고 살아갈 몸이 죽는다.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고루 섭취해야 몸도 살고, 영도 살아난다. 오늘도 몸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을 위한 양식을 날마다 공급해 주시고, 하루하루 삶을 연장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 정주호 대표(중종로공동체, 스타트레인대표, 재활과학박사)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창 1:29).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창 9:3).
성경은 우리가 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채소와 과일, 고기를 잘 먹으라고 말씀한다. 그런데 우리는 식탐이나 스트레스를 마취시키기 위한 진통제로 폭식과 야식 등을 한다. 또 극한의 다이어트나 우울감으로 인한 거식증이나 편식, 극단적인 식단 등으로 몸의 건강을 해치는 일을 한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은 하루 먹을 양식이다. 곧 오늘 하루를 살아갈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겸손함이 있을 때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먹고도 남을, 내일도 먹을 수 있는 분량의 음식을 저장하듯 몸에 쌓아 넣는 것은 식탐이며 과욕이다.
<고린도전서> 8장 13절은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나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서만 배불리 채우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채움으로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자 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음식 자체는 부정하지 않다. 죄가 없다. 하지만 음식을 바라보고 먹는 사람의 마음에 식탐이 있다면 이마저도 탐욕이다. 물욕, 명예욕과 다를 게 없다. 또 음식을 과하게 섭취하면 건강을 해칠뿐더러 체지방도 늘어난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까지도 살리는 능력의 하나님이고, 예수님이다. 하지만 식사 외에 야식을 먹으면서 살을 빼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에는 응답하지 않으신다. 역사적으로 이런 기도 응답은 들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지와 실천, 노력과 성실을 대적하는 나태와 게으름, 편해지고자 하는 본능의 욕심과 싸움이기 때문이다. 의지와 본능의 싸움은 하나님의 선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쉽게 구분하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본능을 거스르며 오늘도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적절한 양과 영양소의 주어진 분량만큼만 감사히 먹는 절제의 습관을 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의 양식을 먹는 것도 다르지 않다. 때로 성경을 기간 내에 빨리 일독하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보통 말씀을 읽을 때, 단순한 읽기의 정확을 요구하는 ‘정독’, 분량을 빨리 해치우려는 ‘속독’, 최근 유행하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며 넓게 읽는 ‘통독’을 선택한다. 하지만 필자는 꼭꼭 씹어 먹는 방법인 ‘심독’을 권하고 싶다. 심독은 문맥 속 의미를 깊이 해석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동시에 저자의 의도를 좇아가며 자신의 삶과 연결해 성찰하는 읽기 방법이다. ‘성찰적인 독서’ 또는 ‘묵상적 독서’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다. 이 성경 읽기는 내 안에서 울림을 찾아가게 도와준다. 그뿐만 아니라 내적 변화와 외적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읽기 속도가 늦더라도 한 줄의 말씀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대로 내가 변화되고 살아가는 것이 더 큰 가치가 있다.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 분리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두 가지 양식을 겸손하고, 감사하고, 기쁘게 깨달으며 먹어야 한다. 육의 양식만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몸은 살되 영혼이 점점 죽어가는 삶을 살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만 먹고 육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영혼을 담고 살아갈 몸이 죽는다.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을 고루 섭취해야 몸도 살고, 영도 살아난다. 오늘도 몸의 생명과 영혼의 생명을 위한 양식을 날마다 공급해 주시고, 하루하루 삶을 연장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드린다.
/ 정주호 대표(중종로공동체, 스타트레인대표, 재활과학박사)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