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에세이] 새벽기도회 참관기
신앙에세이
새벽기도회 참관기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이 가득한 이른 시간임에도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이는 기대와 사랑의 마음으로, 어떤 이는 밤새 씨름한 인생의 문제를 짊어지고, 어떤 이는 습관적으로 오기도 한다. 그 이유가 어떠하든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반기시는 영혼들이다. 단상에서 설교하는 목사님은 항상 “새벽에 기도하시는 영혼들을 축복합니다”라고 인사하신다. 단순한 인사말이지만, 그 안에는 성도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양재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는 짧고 간결하다. 무엇보다 설교 이후 세 번의 기도시간이 압권이다. “주여!”라고 부르짖는 간절한 함성에 마귀가 떠나가고, 믿음이 샘솟는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기도는 어찌 됐건 ‘통성기도’라 할 수 있다. 침묵기도, 묵상기도, 향심기도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성도들이 한데 모여 크게 기도하는 것만큼 간절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새벽마다 그렇게 통성기도를 하는가 보다.
선교 현장에 나가보면 외국 선교사들이 통성기도를 ‘코리안 기도’라고 부른다. 영미권 교회는 주로 하나님과 대화하듯 문장으로 기도하는데, 한국 교회는 큰소리로 ‘합심기도’를 선호하다 보니 ‘코리안 기도’라고 하는 것 같다. 한 외국 선교사가 나에게 “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나요? 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는 게 아니라 간절함의 강도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간청기도를 강조하시고, 찾고 부르짖으라고 하셨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영혼의 막힌 것들이 풀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는 ‘통곡의 벽’이 있다. 단상이 다른 곳보다 높아서 아래에서 벽을 보고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계시는데, 마치 유대인들이 서서 기도하는 통곡의 벽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여러 유형의 성도님들이 계신다.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는 분, 서서 벽을 잡고 기도하는 분, 큰소리로 ‘방언기도’ 하는 분 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의 제단을 쌓으신다. 한 번은 그 모습에 감동해서 매일 방언으로 서서 기도하시는 분을 인터뷰했다.
“집사님, 어떻게 그렇게 매일 한 시간씩 방언으로 기도하실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니 “처녀 적부터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제는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집사님 남편이 “여보, 그만 기도하고 가자”라고 하셔야 마무리를 하신다. 막지 않으면 온종일 기도하실 분 같았다. 내 눈에 그 집사님은 ‘양재동 여선지자’로 보였다.
시대가 악하고 미래가 어두운 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면 희망이 생긴다. 6~70년대 보릿고개 시절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치며 기도에 전념했던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의 표어가 떠오른다. 오늘따라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님의 간결한 설교가 마음에 와닿고, 성도님들의 기도 소리가 논밭의 개구리 소리처럼 정겹고 아름답게 들린다. 그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위로를 경험했다. 눈물이 흐르고, 마치 천국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배당에 있는 모든 분이 천사처럼 보였고, 강대상 파이프 오르간이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거룩한 성도님들과 함께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예배당을 나왔더니 양재동의 전경이 펼쳐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가운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야곱이 벧엘에서 본 새 아침의 태양이 바로 저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 허원희 목사(과천의왕 공동체)
양재온누리교회 새벽기도회 설교는 짧고 간결하다. 무엇보다 설교 이후 세 번의 기도시간이 압권이다. “주여!”라고 부르짖는 간절한 함성에 마귀가 떠나가고, 믿음이 샘솟는다. 개신교를 대표하는 기도는 어찌 됐건 ‘통성기도’라 할 수 있다. 침묵기도, 묵상기도, 향심기도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성도들이 한데 모여 크게 기도하는 것만큼 간절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새벽마다 그렇게 통성기도를 하는가 보다.
선교 현장에 나가보면 외국 선교사들이 통성기도를 ‘코리안 기도’라고 부른다. 영미권 교회는 주로 하나님과 대화하듯 문장으로 기도하는데, 한국 교회는 큰소리로 ‘합심기도’를 선호하다 보니 ‘코리안 기도’라고 하는 것 같다. 한 외국 선교사가 나에게 “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나요? 왜 그렇게 큰 소리로 기도하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하나님이 귀가 안 들리시는 게 아니라 간절함의 강도를 그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예수님이 간청기도를 강조하시고, 찾고 부르짖으라고 하셨잖아요. 우리는 그렇게 기도해야 영혼의 막힌 것들이 풀립니다”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양재온누리교회 사랑홀에는 ‘통곡의 벽’이 있다. 단상이 다른 곳보다 높아서 아래에서 벽을 보고 기도하는 성도님들이 계시는데, 마치 유대인들이 서서 기도하는 통곡의 벽처럼 보인다. 이곳에는 여러 유형의 성도님들이 계신다. 무릎을 꿇고 두 손 높이 들고 기도하는 분, 서서 벽을 잡고 기도하는 분, 큰소리로 ‘방언기도’ 하는 분 등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의 제단을 쌓으신다. 한 번은 그 모습에 감동해서 매일 방언으로 서서 기도하시는 분을 인터뷰했다.
“집사님, 어떻게 그렇게 매일 한 시간씩 방언으로 기도하실 수 있나요?”라고 여쭤보니 “처녀 적부터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제는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집사님 남편이 “여보, 그만 기도하고 가자”라고 하셔야 마무리를 하신다. 막지 않으면 온종일 기도하실 분 같았다. 내 눈에 그 집사님은 ‘양재동 여선지자’로 보였다.
시대가 악하고 미래가 어두운 현실에서 기도하는 성도님들의 모습을 보면 희망이 생긴다. 6~70년대 보릿고개 시절 “조국이여 안심하라”고 외치며 기도에 전념했던 가나안 농군학교 김용기 장로님의 표어가 떠오른다. 오늘따라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님의 간결한 설교가 마음에 와닿고, 성도님들의 기도 소리가 논밭의 개구리 소리처럼 정겹고 아름답게 들린다. 그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위로를 경험했다. 눈물이 흐르고, 마치 천국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배당에 있는 모든 분이 천사처럼 보였고, 강대상 파이프 오르간이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 계신 것처럼 느껴졌다. 이 아름다운 장소에서 거룩한 성도님들과 함께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한참을 울고 나서 예배당을 나왔더니 양재동의 전경이 펼쳐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가운데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야곱이 벧엘에서 본 새 아침의 태양이 바로 저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린다.
/ 허원희 목사(과천의왕 공동체)
작성자 박지혜 기자 wisdom7@onnuri.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