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이재훈 목사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지만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제사장이 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모든 교회는 사도행전적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적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교회입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로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로 끝납니다.

“예수께서 고난당하신 후에 자신이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 사도들에게 직접 보여 주셨고 40일 동안 그들에게 나타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3).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고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행 28:31).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을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해서 사도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담대하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역사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첫 번째 사명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합당하고,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충실해야합니다.

브라질 선교사였고, 미국 에즈베리 신학교 교수인 하워드 스나이드 교수는 교회에 관해 많은 글을 썼습니다. 그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 교회자체를 세우는 교회로 규정지을 때 언제나 문제가 생긴다’는 글을 썼습니다. 또 그는 ‘교회는 세상을 해방시키기 이전에 교회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해방되어야 한다’는 글도 썼습니다.

인도에서 사역했던 스탠리 존스라는 20세기 위대한 감리교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한 글을 남겼습니다.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글입니다.

‘나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는 정도까지만 충성할 작정이다. 나의 최고의 충성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다. 만일 교회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서로 갈등한다면 나는 결국 하나님 나라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도록 만드는 교회에 대한 잘못된 충성은 무엇이든지 교회에 해로운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교회자체에 대한 충성,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는 교회에 대한 충성은 해롭다고 했습니다. 또 교회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 서로 충돌하면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만 충성할 수밖에 없다고 썼습니다. 이 글은 교회를 비판하던 사람이 쓴 글이 아닙니다. 그는 일평생 복음을 전했고, 20세기 가장 위대한 선교사로 손꼽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교회에 대한 충성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옵니까?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에 대해 질문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충성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 것인지 물어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보라.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20~21절).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올지는 당시 유대인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구약성경 곳곳에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해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다가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표적을 행하고, 놀라운 가르침을 주는 예수님이 메시아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냐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동문서답처럼 보이는 대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한 ‘보라. 여기에 있다’, ‘보라.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기 때문이다”(20~21절).

예수님의 대답은 동문서답이 아닙니다. 정확한 답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묻지 않고, 모르고 있었고,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교훈까지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언제나 더 깊은 말씀을 주십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질문의 의도와 뜻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가 무슨 질문을 하는지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때에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질문의 의도까지 모두 아시고,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과 더불어 질문한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까지도 가르쳐 주십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올지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로마제국으로부터 유대왕국을 해방시켜주고, 예루살렘이 온 세상의 수도가 되고, 유대인으로 오시는 메시야가 온 세상의 왕이 되는 모습을 꿈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함이 어느 때입니까?”

예수님과 동행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기대했던 하나님 나라는 정치적으로 회복되는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데 만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잘못된 시간에 나가면 못 만나고, 약속장소와 다른 곳에서 기다리면 못 만납니다. 또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나가도 만나지 못합니다. 만나려던 사람이 내 앞에 있는데도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기다렸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영 볼 수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후에 우리는 그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먼저 씨앗의 비유입니다. 씨앗이 떨어져 땅에 심겨졌을 때 사람들 눈에 씨앗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씨앗은 땅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 나라는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누룩비유도 있습니다. 누룩이 밀가루 반죽과 함께 섞이면 누룩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누룩이 영향을 미치는 것도 처음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룩은 빵 전체를 부풀게 하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씨앗과 누룩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모습으로 옵니다.

베들레헴 구유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의 씨앗처럼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씨앗이 썩어지듯 죄악으로 인해 썩어지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처음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표적을 행했을 때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면서 사람들의 기대가 깨져버렸습니다. 그들이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예수님이 만족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을 뒤엎고 유대왕국이 세계제일의 왕국이 되는 것을 꿈꿨는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말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들이 기대했던 모습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버린 것은 돈에 대한 탐심도 있었지만 누구보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잘못된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실망감과 절망감이 배신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미 왔지만 완전히 오지 않았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하는 말도 틀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에는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없는 것 같지만 있습니다.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에 담긴 첫 번째 의미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온 것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주신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더 자세하게 해석하면 하나님 나라가 뚫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지 않던 사람들의 역사 속에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도 유대인과 비슷할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부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온전히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지만 완전히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연합군이 승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군사용어로 ‘D-day’라고 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승리, ‘V-day’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D-day와 V-day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D-day라면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뤄지는 날은 V-day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완전히 임하지 않은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 시대를 주셨을까요.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데 왜 이런 기간을 주셨을까요. 바로 그것이 우리가 선교해야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직 심판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은혜 때문에 이미 임했지만 아직 완전히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의 책임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전도에 책임이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너희 안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나라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영토, 국민, 주권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려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토가 있어야하고, 주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토(장소)는 어디입니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곧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일정한 장소에 임하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셨고, 장막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만드셨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를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곧 하나님이 임재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되심으로 우리가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장소입니다.

이 시대에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배처소를 마련하면서 성전건축이라고 말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성전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 가운데 임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성전건축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성전건축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성결하게 되는 것이 바로 성전 건축입니다.

 

세상 속의 제사장

 

‘너희 안에’ 라는 단어에는 일차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표현의 일차적 의미는 우리 심령과 영혼 속에 하나님 나라가 가장 먼저 임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제도, 문화, 정치, 건물 속에 임하기 전에 우리의 영혼과 마음 속에 먼저 임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너희 안에’라는 표현을 ‘네 안에’로 바꾸면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와 공동체에 임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임했다고 합니다. 물론 각자의 심령 속에 임하지만 나만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경험했다고 생각할 위험이 있습니다.

존 웨슬레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내 믿음이 거의 파산할 뻔한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혼자 거룩을 추구할 때였다. 그리스도인이 참되게 거룩하고자 한다면 고립된 상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적 공동체가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안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합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 일만 하나님 나라의 일이고, 교회 울타리 밖의 일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는 제사장 공동체입니다. 제사장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야합니다. 나만 제사장이 아니라 공동체가 제사장이 되어야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의 제사장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왔습니다. 그분의 지체가 됨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속의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증거하는 공동체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적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지만 이 시대에는 종교화 된 교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갇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교회입니다. 교회에 대한 충성은 언제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충성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충성을 가리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교회요, 사도행적적인 교회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