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상자
출애굽기 2장 1~10절
이재훈 목사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때 새로운 사람을 준비시킵니다.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부딪히면 제도나 개혁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지만 하나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준비시켜 새 역사를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1장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상황이 절망적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해서 그들이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혹사시켰습니다. 태어나는 모든 아들들을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까지 내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절망적이고 무서운 역사가 임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부재를 원망하기도 했고, 그리워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성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이 이루어져서 그들이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겪고 있는 이해하지 못하는 일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통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좋은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지만 좋지 않은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 상황
하나님은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실행하십니다.
출애굽기 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과 탄식의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구원과 희망의 역사를 준비하고, 실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때 믿음의 가정을 사용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상당수가 애굽의 문화에 동화되어 있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행전과 히브리서 여러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믿음의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따랐지만 그들은 우상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 가운데 아므람과 요게벳이라는 부부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부를 통해 고통스런 역사를 구원의 역사로 바꾼 모세가 태어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부부를 택하셨을 당시 상황은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축제입니다. 큰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선호하는 시대에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정말 큰 기쁨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태어날 당시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딸이 태어났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아들이 태어나면 죽임을 당하는 시기였습니다. 아들을 낳은 부모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시대가 어둡고, 암울하고, 절망 속에 있다 해도 생명의 역사는 계속 됩니다. 하나님은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여인들을 통해 역사를 변화시키셨습니다.
사탄은 절대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악의 세력도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특별한 계획을 위해 창조된 모세
레위지파 출신 아므람과 요게벳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3개월 동안 아들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발라 물이 새지 않도록 만들어 아들을 담아 나일강 갈대 사이에 띄워 놓았습니다. 마침 그곳에 온 바로의 딸이 아기를 보고 자신의 아들로 삼았습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드라마틱한 휴먼스토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므람과 요게벳이 나옵니다. 그들이 아들을 숨긴 것은 당연합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입니다. 어떻게 자식이 죽는데 그냥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분명 자식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것은 단순한 자식사랑 때문만은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넘어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들의 행동이 믿음의 행동이었을까요.
첫째, 모세의 부모는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불의한 명령을 거역할 용기가 있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대치되는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를 보여줍니다. ‘아들을 3개월 동안 숨겼다’는 내용을 보십시오. 숨기는 것 자체가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요. 믿음 때문입니다.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용기 있는 행동을 합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모세 부모의 행동을 믿음으로 해석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출생했을 때 그 아이를 석 달 동안 숨겼습니다. 이는 그 아이가 남다른 것을 보고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히 11:23).
두 가지 이유를 들어서 믿음의 행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가 남다른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여자가 임신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가 너무나 잘생겨 3개월 동안 숨겨 두고 키웠습니다”(2절).
오늘 본문에서는 외모가 잘생겼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히브리서에서는 ‘남다른 것을 보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보면 ‘토브’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을 때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주는 감격 때문에 모든 사람들은 아기를 축복하고 칭찬합니다. 생명이 주는 신비입니다. 모세의 부모도 아이를 정말 예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세가 주님의 질서와 계획에 합당한 아이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모세가 태어났는데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남달리 아름다웠습니다. 모세의 부모가 세 달 동안 그를 집에 숨기면서 기르다가”(행 7:20).
창세기 1장의 의미를 스데반 집사가 정확하게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에게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 부모의 행동은 믿음이다
둘째, 그들은 왕의 명령을 고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아들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은 명백하게 하나님을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만약 이 시대에도 무고하게 백성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독재자가 있다면 그것을 과감하고 용기 있게 거부해야 합니다. 통치자의 지침과 명령이 하나님의 생명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면 교회는 그것을 대항해야 합니다. 모세의 부모가 그랬습니다.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악한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진정으로 두려워할 대상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 어떤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진정 두려워해야 할 대상을 두려워하는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아들을 맡겼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들의 아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보호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나일강 둑에 띄운 것입니다.
여러분, 아이를 보호할 장소로 물위가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위험한 장소 아닐까요. 가능한 아이를 강에서 멀리 떨어져 있게 하는 것이 보호하는 행동 아닐까요. 강둑에 아이를 띄운 것은 겉으로 보기에 전혀 보호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세를 흐르는 강물에 던진 것이 아닙니다. 물이 멈춰 있는 강둑 사이에,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띄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호해주시기를 원하는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두면 탄로날수 있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갈대 사이 강물에 띄운 것입니다. 그 아이가 강물에 빠지도록 방치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지혜를 만든다
갈대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발라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보호했습니다. 예방책도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위험을 자초한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습니다. 미리 예방하고 준비함으로써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아주 섬세하게 위험을 예방하고 강물 위에 띄우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세의 누나가 그 광경을 지켜보게 했습니다.
“아기의 누나는 멀찌감치 서서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4절).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를 기대하며 지켜 본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창의적인 계획을 실행했습니다. 믿음은 지혜를 만들어냅니다. 이들이 모세를 갈대상장에 담아 아무 곳에 둔 것이 아닙니다. 5절 이하를 보십시오. 그곳은 바로의 딸이 목욕하는 곳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믿음에서 나온 지혜입니다. 창의적인 계획입니다. 그들은 왜 바로의 딸이 오는 곳을 선택했을까요. 당시 애굽에서 바로의 딸에 대한 소문이 많았을 것입니다. 어느 시대건 통치자의 가족이나 통치자의 성품, 통치자의 행동이 백성들에게 회자됩니다. 바로의 딸에 대한 이야기가 백성들에게 회자되었다면 아마 아버지와는 다르게 선한 사람이라고 회자되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흉악하고, 잔인하고, 못된 성품이지만 딸은 달랐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줬을 것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바로의 딸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세를 보호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바로의 딸이 한 번도 오지 않은 곳에 모세를 두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바로의 딸이 그 곳에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놓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떤 계획을 세웠습니까. 모세의 누나가 달려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히브리 유모를 데려다가 이 아이의 젖을 먹일까요?” 이것도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바로의 딸이 그 아이를 발견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누나가 달려가서 히브리 유모를 소개하는 계획과 지혜가 담겨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계획하고, 하나님이 바로의 딸을 움직여 주시도록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그들의 계획을 축복하셔서 바로의 딸의 마음에 긍휼의 마음이 생기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 역사의 주인공
“바로의 딸은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대신해 젖을 먹여라. 내가 대가를 주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여 키웠습니다”(9절).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축복하고 응답하셨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모든 어머니들이 당연히 해야 되는 자기 아들에게 젖을 먹이면서 월급을 받았습니다. 아들 젖먹이면서 월급 받은 분계십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유머러스한 분이십니까. 바로의 딸이 월급을 줄 테니까 아이를 키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은 아이러니한 상황을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러니가 무엇입니까. 예기치 않은 일들을 통해서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을 막기 위해 태어나는 아들들을 죽이라는 잔인한 계획을 세웠지만 그 계획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원자가 준비되었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바로는 지혜로운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그 계획은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사탄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바로가 그 무서운 명령을 내리자 모두가 벌벌 떨고 있었지만 그의 딸은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바로의 딸은 히브리 아이를 아버지가 주는 용돈으로 키웠습니다. 아버지가 준 돈으로 바로를 무너뜨리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키웠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역전의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아이러니 연출의 대가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런 아이러니가 많이 나옵니다. 악인이 자신의 꾀에 넘어가는 경우입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이라는 관리가 유대인들을 진멸하고, 모르드개를 형틀에 매달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형틀에 자기가 달렸습니다. 자기가 세운 악한 꾀에 자기가 걸려 멸망했습니다.
“악인은 자기 죄악에 걸리고 그 죄의 올무에 걸려든다”(잠 5:22).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는 바로의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준비시켰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사의 아이러니입니까.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통해 세상의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힘과 권력으로 세상을 움직이시는 것이 아니라 아무 힘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를 변화시키십니다. 한 아기를 준비시킴으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보호하고 키우는데 사용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인들입니다. 아이도 여인이 낳고, 산파도 여인입니다. 누나가 바로의 딸에게 가서 담대하게 말했고. 그의 어머니가 키웠습니다.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여인들이 등장했습니다. 남성중심의 시대에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들은 여성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통해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셨습니다.
바로의 딸이 아이의 이름을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물에서 건진아이라는 의미로 모세라고 지었습니다. 고대일수록 태어날 때에 나타난 현상을 이름으로 썼습니다. 바로의 딸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놀라운 작명이었습니다. 예언적인 이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으로부터 건져낼 구원 사역자로 부르셨습니다. 모세가 담겨 있던 갈대상자의 히브리어는 노아의 방주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와 동일합니다. 이것은 모세를 구원한 갈대상자가 노아의 가족을 구원했던 방주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방주는 무엇을 예표합니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에 통로가 됩니다. 우리도 불의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고, 믿음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계획을 담대하게 실행한다면 이 세상 속에서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하나님의 계획에 실행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역사에 주인공인 믿음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역사의 절망 가운데서 모세를 태어나게 하시고,
믿음의 부모를 통해 준비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용하여 주옵소서.
환경과 역사 그리고 통치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믿음으로 역사를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쓰시는 믿음의 가정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믿음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계획을 담대하게 실행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