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

출이집트기 1장 6~17절
이재훈 목사
역사를 우연의 결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가 우연의 결과라면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 권력자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민중들이 투쟁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또한 진실이 아닙니다. 역사는 우연의 결과가 아닙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His-story)를 ‘그분의 역사(His-story)’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번 주일부터 출이집트기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어떻게 움직여가고 계시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역사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어떠한 민족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혜나 깨달음, 계획도 여호와께 대항할 수 없다”(잠 12:30).
“내가 처음부터 장차 일어날 일들을 밝혔고 오래전에 이미 아직 이뤄지지 않은 일들을 일러 주었다. 내 뜻은 이뤄질 것이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은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사 46:10).
하나님은 역사를 이뤄 가실 때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루셨습니다. 어떤 민족이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대항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로 역사를 움직여 갈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자를 축복하고, 악한 일을 징벌하심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 중에는 선인도 있고, 악인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도 변화시켜 뜻을 이뤄 가셨습니다. 

풍요로움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 ‘이집트’

출이집트기 1장은 야곱과 함께 이집트로 간 열두 아들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출이집트기는 창세기 역사의 연속입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모세오경이 한 권의 책입니다. 창세기, 출이집트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가 구분이 없습니다. 우리는 편의상 구분했지만 한 권입니다.
창세기는 시작의 책입니다. 창세기 12장부터 50장까지는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선택하신 역사입니다. 출이집트기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 가족이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민족사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가족과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한사람, 한 가족, 한민족을 선택하셔서 어떻게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구출하고, 구원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역사는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시는 영적 출애굽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집트 땅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네 가지 영적인 땅이 존재합니다.
첫째, 이집트입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없는 땅입니다. 둘째, 가나안입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동행하시는 땅입니다. 셋째, 광야입니다.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곳에 들어가지 못하는 땅입니다. 넷째, 바벨론 앗시리아입니다. 이방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 머물다 불순종함으로 추방당한 땅입니다. 쫓겨난 땅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땅입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 살았던 애굽과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가운데 사는 가나안,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광야, 가나안 땅을 경험했지만 불순종함으로 쫓겨나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있는 바벨론 땅이 있습니다. 우리는 네 가지 땅을 모두 경험합니다. 한번 출애굽을 경험한 사람들은 다시 출애굽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가나안, 바벨론을 돌아다니면서 전전긍긍 살아갑니다. 우리가 있어야 되는 땅은 광야가 아닙니다. 바벨론도 아닙니다. 가나안 땅입니다.
이집트는 아주 특색이 있는 곳입니다. 히브리어로 이집트를 ‘미츠라임’이라고 하는데 두 개의 좁은 곳이라는 뜻입니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땅이 좁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그 명칭을 쓴 것입니다. 그 밖은 사막입니다. 사막이 위협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 나일강이 있기 때문에 좌우에 있는 좁은 땅은 풍요롭습니다. 이집트 땅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나일강에 풍성한 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집트를 하늘로부터 자유로운 땅이라는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의 풍요로움 때문에 기근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풍요로웠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족속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일강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나중에 모세가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섬기는 신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이집트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가나안 땅은 일 년에 두 차례 우기가 있습니다. 우기에 물을 저장해놓지 않으면 먹을 물이 없는 땅입니다. 가나안 땅은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의존적인 땅입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와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가나안 땅은 의존적인 땅이고, 이집트는 독립적인 땅입니다. 가나안 땅에 사는 것이 더 불편하고 힘들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젖과 꿀이라는 의미를 신학자들이 해석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집트가 더 풍요롭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은 비가 한번이라도 내리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기는커녕 광야가 되어버리는 땅이었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에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해야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이집트는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땅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나일강의 물도 하늘에서 왔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이 스스로 존재한다고 착각했습니다. 그 물의 근원이 하늘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강을 신으로 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일강이 축복을 가져다주고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나일강을  신처럼 섬겼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영적인 상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땅이 바로 이집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집트로부터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독립의 땅에서 의존의 땅으로 구원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출이집트기의 메시지입니다.

누구도, 어떤 상황도, 대항할 수 없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고 대단히 강대해졌으며 땅에는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 차게 됐습니다”(7절).
네 가지 표현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번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손을 많이 낳았고, 크게 번성하였고, 대단히 강대해졌으며, 가득 차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1장의 기록만 보면 이스라엘이 강대해진 원인은 한 가지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았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원인분석입니다. 창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왜 이렇게 번성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창 12:1~2).
이것이 직접적인 원입니다. 더 분명한 원인입니다. 그들이 자식을 많이 낳았기 때문에 큰 민족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그 민족이 강성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후손들은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창세기 역사를 보면 그의 가족에게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변화된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그들이 애굽으로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나안에 기근이 있었고, 애굽에는 풍성한 양식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에 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사용하셔서 70명이나 되는 가족들을 살리고 보존하셨습니다. 애굽의 풍성한 자원을 통해 그 민족을 번성시켰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이집트로 갔습니다. 모든 연약함과 형편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집트로 보내 수 백 년 동안 강성한 민족으로 성장시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누구도, 어떤 상황도, 대항할 수 없고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이뤄진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민족이 강성해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삭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루셨습니다. 여기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역사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반드시 이뤄집니다. 오랜 시간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체되는 것을 계획이 방해 받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한 시대는 세대를 내다보며 일하지 못합니다.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몇 년 앞만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몇 세대를 내다보는 비전을 가져야합니다. 더디 이뤄지지만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의 안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강대하게 만들겠다는 약속을 주신지 430년이 지났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죽었습니다. 요셉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첫째,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는 민족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가나안 땅은 광활한 땅입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살기에 굉장히 넓은 땅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자손들을 강대하게 만들기 위해 당시 최강국을 사용하셨습니다. 당시 애굽은 최대 문명국가였습니다.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에서 그 민족을 번성하게 만들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셨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습니다.
“네 자손은 4대 만에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15:16).
400년 후에 돌아오게 될 것인데 그 이유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을 주시고, 그들을 강대하게 하시고, 그 땅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차원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심판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하고, 기다리고, 시간을 더 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흐른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이뤄집니다. 지체되는 것 같고, 더디 이뤄지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하나님

둘째, 하나님의 역사는 위대한 주님의 사람이 떠나도 반드시 이뤄집니다. 어떤 지도자의 부재가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출이집트기는 1장에서는 요셉의 죽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요셉이 죽은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세워졌습니다. 요셉의 죽음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후손 70여 명을 이집트로 인도해 그곳에서 번영하고, 번성하도록 보좌했습니다. 그런 요셉의 죽음은 이스라엘에게 큰 손실입니다. 큰 보호막이 없어진 것입니다. 요셉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이집트로 내려갈 수 없었을 것이고, 고센 땅에 정착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강성해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도구로 사용하셨지만 역사의 주인공은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자식을 많이 낳아 크게 번성하고 대단히 강대해졌으며 땅에는 이스라엘 자손들로 가득 차게 됐습니다”(6~7절).
요셉이 이집트의 정착과 번성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 번성의 역사는 요셉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역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 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떠난 후 이스라엘은 더 번성하고 강성해졌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수백 년 동안 특권을 누렸습니다. 요셉이 죽고 나서 그 특권은 사라졌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변화된 환경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큰 보호막이 없어졌다 할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계속 이뤄집니다. 이제 하나님이 보호막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더 특별한 은총이 이뤄질 것입니다.

억압할수록 번성하고, 핍박할수록 성장하고
 
셋째, 하나님의 역사는 악한 세력의 대적과 억압이 있을 지라도 반드시 이뤄집니다. 이 세상의 힘이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요셉이 살아있었을 때 그 땅은 보호와 번영의 땅이었습니다. 이제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이 그 땅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속박과 고통의 땅이 되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은 애굽 민족의 혈통이 아니라 또 다른 민족입니다. 앗수르인이 애굽 왕조의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 백성이 전에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에 거류하였고 앗수르인은 공연히 그들을 압박하였도다”(사 52:4).
앗수르 태생의 왕은 강성하게 된 이스라엘 민족을 두려워했습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그들이 대적들과 연합해서 자신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두려움에서 나온 염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를 대적할 의사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왕은 자신의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노동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혹사시켰습니다.  그들의 삶을 고달프게 했고 그들의 숫자를 줄이려고 했습니다. 신생아들이 태어나면 아들은 죽이고, 딸은 살려두는 악행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를 대항하는 어떤 세력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억압하면 할수록 이스라엘 자손은 오히려 더욱 번성하고 인구도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두려워서 그들을 심하게 혹사시켰습니다”(12~13절).
억압할수록 더 번성하고 인구도 많아졌습니다. 교회 역사도 그렇습니다. 핍박 받을수록 성장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쇠퇴하는 지역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핍박이 없습니다. 자유만 있고 풍요가 있습니다. 그런 곳의 교회는 점점 쇠퇴합니다. 핍박이 있고, 억압이 있는 땅의 교회는 성장합니다. 중국의 크리스천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1억 명이 넘습니다. 어느새 중국의 크리스천들이 많아졌습니다. 중국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엄청난 핍박이 있습니다. 가정교회들이 얼마나 핍박당했습니까. 수많은 선교사들이 믿음의 씨앗을 뿌렸지만 열매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사이 중국의 가정교회가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머지않아 중국은 최대 기독교 국가가 될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위대한 반전을 위한 준비

출애굽기 1장이 보여주는 교훈은 분명합니다. 시간이 지연되고, 상황이 바뀌고,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대항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대항할 수 없다는 진리를 믿어야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을 더 의존하게 될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역사라면 결코 대항해서는 안 됩니다. 순종해야합니다.
한 시대의 상황 속에 갇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습니까. 하나님이 출애굽기 역사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하나님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상황이 바뀌고, 더 열악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위대한 반전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하면 위대한 역사가 이뤄질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상황이 바뀌고, 열악해지는 것은 하나님이 위대한 반전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십시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