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할 때
출애굽기 2장 11~21절
이재훈 목사
하나님의 역사는 누구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악의 세력도 하나님의 역사를 거스르지 못합니다. 지난주에 바로 왕이 히브리 민족을 힘을 약화시키고, 그들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태어난 아들들을 모두 죽이는 잔인한 정책을 썼지만 그 가운데서 ‘모세’라는 하나님의 지도자가 준비되는 과정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뜻을 깨닫고, 행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깨달았지만 하나님의 때가 아니거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으면 실패와 절망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뤄질 때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때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이 삼위일체를 이룹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도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실패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가 그랬습니다.
이집트의 왕자, 정체성은 히브리인
모세가 어느 날 자기 민족을 돌보기 위해 나갔다가 히브리 민족이 애굽 관원에게 매를 맞는 것을 보고 분노합니다.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괴롭힌 이집트 관원을 때려죽였습니다. 그 일로 모세는 바로의 손자라는 신분을 잃어버리고, 광야로 도망치는 신세가 됩니다. 이 사건은 모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입니다. 모세는 120년을 살았는데 그의 인생은 정확하게 삼등분 됩니다. 40년 단위로 구분됩니다.
모세는 40세까지 왕자로 살았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최고의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40세부터 80세까지는 광야에서 양들의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홀로 양을 치며 살았습니다.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80세부터 120세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오늘 살펴 볼 내용은 모세가 40세에 왕자의 신분에서 도망자로 변화되는 과정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사람들이 가진 모든 지혜를 배웠고 그의 말과 행동에 큰 능력이 나타났습니다”(행 7:22).
모세는 애굽 최고의 교육을 받았을 것입니다. 당대 최고의 환경에서 최고의 지도자로 길러졌을 것입니다. ‘요셉푸스’라는 신약시대의 역사가에 의하면 당시 바로에게는 무남독녀가 있었는데 모세를 입양한 여인입니다. 외동딸이 입양한 아들은 문제만 없다면 바로의 뒤를 이어 이집트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40세 이전에는 차기 정권을 물려받을 사람으로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진짜 신분은 히브리인입니다. 모세를 양육한 친어머니는 “너는 히브리인이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계획이 있어서 너를 구원하셨다”고 말해주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만 잊어버리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동족들이 학대를 당하든, 고통을 당하든 상관하지 않았다면 아무런 고민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음속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
모세는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가 40세에 겪었던 사건입니다. 하나는 부정적인 사건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사건입니다.
모세가 40세 되는 해 어느 날 자기 민족이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당하고, 중노동하고 있는 현장으로 갑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모세가 히브리 사람이 매 맞는 것을 보고 흥분해서 이집트 사람을 죽입니다.
“세월이 흘러 모세는 어른이 됐습니다. 어느 날 모세는 자기 민족이 있는 곳에 나갔다가 그들이 중노동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모세는 어떤 이집트 사람이 자기 동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다가 이리저리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이집트 사람을 죽여 모래 속에 묻었습니다”(11~12절).
이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두 가지 중요한 열쇠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모세가 이집트 왕자라는 정체성을 더 크게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을 더 크게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왕자로써, 통치자로써 관원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벌을 주다 죽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히브리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어 죽였는지가 중요합니다. 만약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인 것이 이집트 왕자의 정체성에서 나온 행동이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의 가족들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행동은 충분히 정당화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도망 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자기 민족’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옵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을 보러 간 것입니다.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일 때 히브리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 한 것입니다. 히브리 민족의 정체성이 더 컸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애굽의 왕자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한 ‘모세’
이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는데 필요한 또 다른 열쇠는 모세가 자신의 민족을 돌아봐야겠다고 결심 한 시점입니다. 모세가 자기 민족이 중노동하고 있고, 학대 받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인지 아니면 자기 민족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난 뒤에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다 자란 후에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잠시 죄의 쾌락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4~25).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모세가 이집트를 떠난 것은 바로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오늘 사건만 보면 모세가 사람을 죽이고 도망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라는 것을 거부한 시점이 언제냐는 것입니다. 모세는 계속 왕자로 살고 싶었는데 사람을 죽여서 어쩔 수 없이 왕자의 신분을 버렸다면 히브리서 11장의 기록은 틀린 것입니다. 믿음으로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여서 어쩔 수 없이 내려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40세 이전에 믿음의 결단을 했습니다. 공주의 아들로써 장차 왕의 직위가 준비되어 있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근거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11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어느 날 모세는 자기 민족이 있는 곳에 나갔다가 그들이 중노동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11절).
모세가 단순히 여행을 간 것이 아닙니다. 목적과 계획, 그리고 의도를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길을 가던 중에 우연히 본 것도 아닙니다. 그 현장을 보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간 것입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모세는 자기 민족을 위해 살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보다’라는 단어도 반복됩니다. 모세는 그들이 중노동 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보다’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모세는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는 그런 의미로 쓰였습니다. 모세는 그 현장을 보기 위해 갔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는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히브리서도 맞고 출애굽기도 맞습니다. 또 다른 근거가 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난 이후 바로가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세와 바로가 관계가 좋았다면 이 일로 죽이려고 했겠습니까. 이 시대 통치자의 가족들이 사람을 죽였다면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바로가 곧 법이었습니다. 바로의 말 한마디면 안 되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왕자가 관원 한 사람 죽였다고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다. 관원 한 명 죽였다고 왕자를 죽이는 시대가 아닙니다. 이 사건 있기 전에 바로와 모세가 불편한 관계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모세가 이집트 왕자로써의 신분을 거절한 또 다른 사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는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모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관원을 죽였다고 해서 죽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세는 왕자의 신분을 내려놓고 민족을 위해서 살겠다,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신다면 내어 드리겠다고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세가 믿음의 결단을 하고 애굽 관원을 죽였기 때문에 옳은 일입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결단은 옳은 것입니다. 모세는 분명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일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그 다음 행동은 실패했습니다. 그가 동족을 구하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은 것은 올바른 선택이지만 그의 행동은 잘못됐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성숙한 믿음입니다.
모세는 과도하게 반응해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모세의 감정 이면에 지도자 의식이 숨어있습니다.
“모세가 마흔 살이 되자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집트 사람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그 편을 들러 갔다가 그 이집트 사람을 쳐죽이고 원수를 갚아 주었습니다. 모세는 자기 동족만큼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해 그들을 구원해 내실 것을 깨닫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행 7:23~25).
25절이 중요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정했습니다. 아마 어머니가 알려줬을 것입니다. 성인되어서는 스스로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일하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히브리 백성들 그 누구도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억울하게 학대당하는 히브리 사람을 보고 모세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분명 정의감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정의감이 정의를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때를 벗어난 성급한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언제,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묻지 않고 행동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자신을 구원자로 부르셨다는 것은 알았지만 스스로 구원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구원자가 아니라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뤄져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와 방법이 아니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믿음의 결단을 한 사람의 실패
하나님은 모세를 육적인 지도자로 부른 것이 아닙니다. 육적인 지도자들은 때로 옳지 않은 방법을 사용하고 역사를 정당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여러분, 모세의 두려움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때가 아니거나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아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다.
“이리저리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는”(12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행하는 사람은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눈치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때도 아니었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도망친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했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실패에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지도자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히브리 민족끼리 싸우고 있을 때 모세가 간섭을 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모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를 자신들의 통치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백성들을 어떻게든 이끌어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왜 히브리 사람들의 일에 개입했을까요.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일하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것 또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백성들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결국 모세는 광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모세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닙니다. 모세는 절망했지만 그것이 하나님 역사의 종말이 아닙니다. 동족들이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모세를 지도자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 없는 자의 실패가 아니라 믿음의 결단을 한 사람의 실패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결단을 했다고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결단 이후 한걸음 한걸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 열매가 나타나고, 역사가 나타납니다.
모세의 실패는 일시적인 절망일 뿐입니다. 하나님을 등진자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향해 나아가는 자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도 새로운 역사를 이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40년 동안 광야에 두시고 지도자로 준비시켰습니다.
계속 믿음의 길을 가십시오
절망에 빠져 도망갔던 모세가 피곤에 지쳐 우물가에 갔는데 거기서 아내가 될 여인을 만납니다. 모세가 지쳐 우물가에 있는데 유목민들이 물을 뜨고 있는 여인들을 괴롭혔습니다. 모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합니다. 그가 애굽에서 닦았던 싸움 실력과 애굽의 관원을 쳐 죽일 수 있는 용맹성으로 연약한 여인들을 보호해줬습니다. 그 여인의 아버지가 깜짝 놀라 모세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딸 중에 ‘십보라’라는 여인을 모세에게 아내로 줍니다.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입니다. 모세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일을 계기로 광야에 정착하게 됩니다. 히브리 민족이 학대 받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던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동족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고 개입했던 모세를 향한 부르심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어디를 가든지 불의를 참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문제의식이 없는 사람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거룩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해 공의를 행하건, 사랑을 행하건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를 행하면서 정의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합니다.
모세는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마음을 받으시고,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광야에서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분명 믿음의 결단을 했지만 믿음의 길을 걷다 실패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의 결단을 했다고 해서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것 자체가 만사형통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합니다. 우리도 모세처럼 실패합니다. 절망합니다. 분명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는데 역사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더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결단 위에 서있다면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서도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실패 속에도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내다보면서 계속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믿음의 결단을 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해야합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