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호와인줄 알게 될 것이다
이재훈 목사
역사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역사는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관자입니다. 큰 사건뿐만 아니라 작은 사건에도 개입하십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일에도 하나님의 개입이 숨어 있습니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역사를 통해 역사를 움직여 가시는 목적을 분명히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님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언약을 맺고, 구원하시는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려고 역사를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구원과 심판
하나님이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두 축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심판입니다. 죄로부터 건짐을 받는 구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부터의 구원, 질병으로부터의 구원, 얽매이는 모든 상황으로부터의 구원, 내 자신이 묶여 있던 마음의 상처로부터의 구원 등 모든 것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축은 심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구원과 동시에 행하신 일이 바로 심판입니다. 열방을 심판하는 역사가 성경에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삶도 심판하십니다. 최후의 심판만이 심판이 아닙니다. 개인의 삶에도 하나님의 크고 작은 심판이 있습니다. 내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이 무산되는 것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심판 속에서도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고,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를 다스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동시에 심판을 행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말씀을 거역하면서 끝까지 자기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나타나는 사건이 바로 출애굽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단지 이스라엘 민족이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역사가 지금도 동일하게 이뤄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역사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구원의 길과 심판의 길입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의 길로 나오라고 끊임없이 경고하고, 교훈하고, 격려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낙심해있는 모세를 다시 부르셔서 소명을 재확인시켜주시는 내용입니다.
바로와의 대면에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습니다. 바로는 모세의 제안을 완악하게 거절했고, 백성들이 더 많은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비난하고 저주했습니다. 모세 때문에 바로가 자기들을 더 악하게 대한다는 것이 이유입니다. 백성들은 모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비난했습니다. 모세는 낙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다시 한 번 부르셔서 격려하고 중요한 목적을 반복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집트 백성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이심을 알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반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다 시 한번 부르심의 자리로 나갈 때 일어날 일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앞으로 바로가 어떤 모습이 될지,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를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모세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바로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불러 바로에게 가서 내 뜻을 전하라고 하자 모세는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께 ‘제가 입이 어눌한데 어떻게 바로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30절).
이것은 합당한 이유가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신의 능력부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말이 어눌해서 바로를 설득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이 완악한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앞으로 더 완악해 질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마저도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신 이유도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는 것처럼 바로의 완악함도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는 자책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백성들을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목적
“너는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을 다 말해 주어라. 그러면 네 형 아론이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 것이며 이집트 땅에서 많은 표적과 기적을 일으킬 것이다. 바로가 너희 말을 듣지 않으면 내가 이집트에 능력을 행사해서 큰 벌을 내려 내 군대, 곧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내가 내 손을 이집트에 뻗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에서 이끌어 낼 때 이집트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2~5절).
하나님은 모세가 당황하지 않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붙잡을 수 있도록 알려주셨습니다.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바로의 마음이 강팍하게 될 것이고, 또 하나는 그로 말미암아 이집트 땅에 큰 재앙과 벌이 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오게 될 것이고,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이 여호와인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분명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중에 이상해 보이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구약의 난제중의 하나입니다. 분명 이 말씀을 보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조성하고, 악을 일으키시는 분입니까. 바로가 완악해 진책임이 하나님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표현은 바로가 완악해 진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 주권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다른 원인들은 생략하고 최종적인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움
열 가지 재앙에 대한 평가를 보면 중요한 특징이 나옵니다. 다섯 번째 재앙이 있을 때까지 는 바로의 마음이 강팍했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의 마음을 하나님이 강팍하게 했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재앙 이후부터는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섯 번째 재앙이 뚜렷한 분기점입니다. 이 구분을 통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어서 그 지경까지 간 것이 아니라 바로가 스스로 악을 선택하고 마음을 강팍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번의 끔찍한 재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는 스스로 악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느 순간 인자하심의 끈을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끈을 놓으시고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넓습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의 깊고, 넓은 인자하심도 인간의 죄악이 가득하면 끊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무궁하지 않습니다. 악을 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공의로우심이 균형을 이룹니다. 때로는 심판하시지만, 구원을 베푸십니다. 로마서 1장에도 완악한 마음을 내버려 두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이 바로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악을 행할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갈 때 그 길이 막히고, 무너지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데 좋아 보이는 길도 막으실 때가 있는데 그것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길로 빠져들지 않도록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이 있기 전에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심판은 하나님이 붙잡아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심판은 하나님이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까지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재앙까지는 하나님이 바로를 붙잡고 계셨습니다.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섯 번째 재앙 이후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이 강팍한 채로 내버려두셨습니다. 간섭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의 간섭을 거두실 때 무서운 일이 생깁니다. 우리의 마음이 회복불능 상태가 됩니다.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고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주실 때 백성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 증거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출애굽 할 때 여러 나라 인종들이 따라 나왔다고 했습니다. 거기에는 이집트 사람도 있고, 이집트 히브리민족처럼 종살이하는 민족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당시부터 ‘다인종공동체’였습니다. 물론 다른 민족들은 소수였겠지만 다른 민족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출애굽공동체’였습니다. 출애굽공동체를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리실 때 다른 민족들도 이스라엘 민족을 따라 나왔습니다. 그 땅에 재앙이 임할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도 전도하시고,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바로의 신하와 술객들도 하나님의 손길이라면서 대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바로는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통해 그 땅을 심판하셨다는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한번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능력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인자하심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행하면서도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열 번의 재앙이 있었다는 것은 바로가 하나님 역사의 협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주신 것입니다. 열 가지 재앙에 이르기까지 일 년 정도의 기간이 바로에게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그 기회를 거부했습니다. 열 가지 재앙이 내려진 순서를 봐도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을 죽이는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간접적인 재앙부터 직접적인 재앙으로 이어졌습니다. 나일강을 피로 만들고, 메뚜기 떼를 풀고, 그 다음에 가축들에게 이와 종기들이 발하게 했습니다. 간접적인 재앙 다음에는 작물에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최후에 장자가 죽는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배려와 손길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의 재앙을 통해서도 그 땅을 심판하고 백성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끊임없이 기회를 주시고 또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열 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전능하신 분인지를 나타내셨습니다.
열 번의 재앙, 그 이유
“그날 밤에 내가 이집트를 지나가며 사람이든 가축이든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치고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다”(출 12:12).
나일강 물이 피로 변한 것은 ‘핫피라’는 나일강의 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개구리재앙은 ‘헤켓이’라는 개구리 머리를 한 여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파리의 재앙은 ‘케푸레르’라고 하는 곤충의 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생축의 죽음은 ‘나피스’라는 다산의 상징 황소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독종은 ‘세크메트’라고 하는 신, 우박은 ‘누트라’는 하늘의 여신, 메뚜기는 ‘세네미’라는 신, 흑암은 ‘아몬네’라는 태양신에 대한 심판입니다. 장자에 관한 심판은 바로와 바로의 아들을 신격화 한 것을 무너뜨리는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이 우상으로 섬겼던 것들을 무너뜨리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여호와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개인의 삶속에서 심판을 행하실 때는 우리가 우상으로 섬기던 것들을 제거하십니다. 우리가 신처럼 떠받들던 것들이 무너질 때마다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통해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결코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에 구원의 손길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열 번의 재앙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다는 것입니다. 무섭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우습게 여기고, 스스로 마음을 스스로 강팍하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무섭고,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태양빛에 오래 노출되어 있으면 무뎌집니다. 그 빛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못합니다. 눈이 멀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저항력이 무뎌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무뎌질 수 있습니다. 양심이 무뎌지고, 나의 고집과 방법을 고집하면 하나님이 은혜의 손길을 놓을 수 도 있습니다.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단번에 바로의 무릎을 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을 구원하고 심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 번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을 모세가 바로를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내 손을 이집트에 뻗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곳에서 이끌어 낼 때 이집트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출 7:5).
“바로가 ‘내일 하도록 하여라’라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출 8:10).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내가 너와 네 신하들과 네 백성들에게 내 모든 재앙을 보내 온 땅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네가 알게 할 것이다”(출 9:14).
“네가 네 자식과 자손들에게 내가 이집트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매섭게 다루었으며 그들 가운데 내가 어떻게 내 표적을 보여 주었는지를 말해 주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출 10:2).
하나님이 여호와인줄을 알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예언서에도 이 표현이 많이 나옵니다. 에스겔서에도 40번 이상 나옵니다. 역사의 목적은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이 여호와인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더 알게 되었는가?”
축복의 사건이든 절망적인 고난이든지 간에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여호와임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표가 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구원과 심판이라는 두 축을 통해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작은 심판이 임할 때 돌이키지 않으면 더 큰 심판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합니다. 무섭습니다. 길이 있을 때 돌이켜야 합니다. 열 번의 재앙이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생기자 않도록 빨리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마다 주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유일한 분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가 하나님 역사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의 역사의 협력자가 됩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됩니다.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