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이재훈 목사

무엇인가를 성급하게 이루려고 할 때 실수를 많이 합니다. 준비하지 않고 섣불리 성과만 기대하면 더 큰 실패를 합니다. 모세가 40세에 애굽의 관원을 죽인 사건은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사건은 모세가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하려다 일어났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애굽의 왕궁에 두신 것도,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려는 계획도 알았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 면에서 모세는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혈기와 방법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자에서 양치기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뤄가는 과정과 방법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합니다. 모세는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가 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범했습니다. 그 결과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애굽의 왕자로 살다 광야에서 양을 치는 양치기가 되었습니다. 이 얼마나 급격한 변화입니까. 애굽의 궁전에서의 생활과 미디안 광야에서의 목자 생활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큽니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서두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에굽 왕궁에서 40년 동안 모세를 준비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모세는 지도자가 될 자격을 갖췄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니었습니다. 준비가 더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실패를 통해서 그를 지도자로 준비시키셨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준비가 필요했을까요. 만약 하나님이 모세에게 ‘광야에서 40년만 버티면 너를 사용하겠다’는 말씀을 미리해주셨다면 견디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을 치다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돌아보면 원하지 않았던 삶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준비시키는 광야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모든 일이 진행된 이후에 그 일이 하나님이 나를 훈련시키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은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

하나님은 모세가 애굽에서 보낸 40년 보다 광야에서 보낸 40년을 더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모세는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자원이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모세가 80세가 된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모세의 눈앞에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의 천사가 떨기나무 가운데 타는 불꽃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있는데 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내가 가서 저 이상한 광경을 봐야겠다. 어떻게 떨기나무가 타지 않는 것일까?’라고 말했습니다”(2~3절).
모세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떨기나무는 가시덤불입니다. 아주 낮은 관목류의 가시덤불류로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여름철 뜨거운 태양 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화되어서 불이 붙고 소멸되는 현상들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광야에 오래 지낸 사람들에게 나무에 불이 붙는 것은 희한한 광경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큰 불이 떨기나무에 붙었는데 타지 않은 현상입니다. 모세가 가시덤불 나무에 가까이 갔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시각적 도구를 통해 사람을 부르시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별을 보여주면서 약속을 주셨고, 야곱에게는 꿈속에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를 보여주면서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보여주시며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가 보여주는 상징적인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불이 계속 타려면 재료가 필요합니다. 땔감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불은 떨기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지 않는 불입니다. 불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그 어떤 도움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불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는 구름기둥 가운데 불로써 임재 하셨습니다. 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에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런 분인지를 알아야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하나님의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분입니다. 죄에 대한 거룩한 심판을 행하시는 분입니다. 이 불은 심판을 상징합니다. 떨기나무를 상징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세네’인데 ‘저주’라는 의미입니다. 떨기나무는 저주의 나무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받아 마땅한 인류를 의미합니다.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할 인류에 심판의 불이 임했으나 인류가 소멸되지 않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줍니까. 복음입니다. 그리고 은혜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이 불은 저주를 대신 담당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는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저주받아 마땅한 인류에 심판이 임했으나 심판을 견디게 되었습니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

셋째,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은 떨기나무는 하나님의 백성을 보여줍니다. 이 나무는 백향목이 아닙니다. 멋진 나무가 아닙니다.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려진 나무입니다.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버려진 민족이었습니다. 신명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받은 고난을 철을 녹이는 용광로와 같은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을 불가마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불같은 시련을 받았지만 하나님이 보전해 주셨다고 고백했습니다.
넷째,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는 사역자를 의미합니다. 타지 않는 사역자, 소진 되지 않는 사역자를 의미합니다. 불타서 소멸되는 사역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은 타지 않는 나무 같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결코 우리를 태우지 않습니다. 우리를 소멸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쓰고 버리지 않습니다.
모세가 자신의 열정과 비전, 계획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했을 때는 금방 타고 소멸되는 나무였습니다. 모세는 소진 되었습니다. 애굽에서의 40년이 타서 없어졌습니다. 광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80세 된 모세를 불렀을 때 그는 더 이상 타서 소멸되는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불이 붙어있지만 타지 않는 나무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부르심과 임재 가운데 있는 사역자는 절대 소멸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120세까지 쓰임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120세에도 눈이 흐리지 않았습니다. 지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80세부터 40년 동안 인생의 불이 불었지만 소멸되지 않고 하나님께 쓰임 받았습니다.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부르심 가운데 있는 사람은 절대로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 가운데 있는 사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때까지 소멸되지 않습니다.

순종하고, 복종하고, 따라가는 인생

모세가 타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 속에 하나님이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가 자세히 보러 오는 것을 보시고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네 신을 벗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4~5절).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인간이 가까이 하지 못할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모세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땅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은 우리가 가까이 하지 못할 거룩한 분입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최고의 경외감을 표시입니다. 복종의 표시입니다. 순종의 표시입니다. 종들이 주인 앞에서 절대 순종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당신의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을 벗는 심정으로 나아가야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이제는 인생을 스스로 주도하지 말고 철저하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복종하고, 따라가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러고는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모세는 자기 얼굴을 숨겼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기가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6절).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거룩한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시더니 이번에는 인간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먼저 사람에게 오셔서 약속을 주시고, 행하심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가까이 오십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되셨고, 이삭의 하나님이 되셨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역사 속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으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셨고, 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내가 가까이 하지 못할 그 거룩한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나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음의 조상들하고만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려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 속에 내려오셔서 고통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다고 소개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들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들이 감독관들 때문에 울부짖는 소리도 들었다. 나는 그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내려온 것이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 내고 그 땅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어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내게 들렸고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억압한 것을 내가 보았다. 그러니 이제 너는 가거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로 보내 너로 하여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게 할 것이다”(7~10절).
동사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행동을 표현하는 동사들을 주목하십시오. 7절에 ‘내 백성의 고통을 보았다’,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고통을 잘 안다’, 8절의 ‘내가 내려온 것이다’, ‘내가 이집트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내고 내가 너를 이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9절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고 내가 보았다’, ‘내가 너로 하여금 이끌어 내겠다’
동사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보았고, 들으셨고,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내려오셨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이끌어 낼 것입니다. 행동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하지 못할 거룩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임재 하셔서 약속을 맺으시고 언약을 지키십니다. 뿐만 아니라 내려오셔서 고통 받는 백성들을 구원하십니다. 보시고, 주목하시고, 아시고, 구원하시는 행동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내려오셔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위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으로 내려오십니다. 시내산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은 백성들과 함께 장막가운데 거하십니다. 장막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은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우리 속까지 거하시는 분입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왜 내려오십니까. 우리가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가까이 할 수 없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언약을 통해 내려오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모세에게 주신 부르심 가운데 왜 내려오셔서 구원하신다는 단어로 사용했을까요. 모세를 통해서는 일시적으로 내려오셔서 백성을 구원하시지만, 성육신 하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온전히 내려오셔서 우리의 메시아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통해 출애굽 하는 역사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가운데 있는 우리들의 고통을 들으시고, 아시고, 보시고, 내려오셔서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분의 사역을 미리 보여주기 위하여 모세에게 부르심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의 능력이나 자질, 자원보다 중요한 것이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그 부르심대로 온전히 행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먼저 깨닫고 확신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을 벗고 말씀 앞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십니까. 얼마나 거룩하신 하나님입니까. 또 내려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낮아지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제 모세를 통해 출애굽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맞이하십시오. 그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십시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