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
예측을 뛰어넘는 결과나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기적을 경험 한 적이 있습니까. 어떤 기적이었습니까. 그 기적을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워싱턴에 있는 ‘스미스 소시언 박물관’에 가면 미국 대통령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읽던 성경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부분은 빼고 나머지 부분만 이어 만든 성경책입니다. 이신론자였던 제퍼슨은 그 성경을 평생 동안 읽었다고 합니다. 그는 기적은 신앙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학자 볼트만 역시 복음서를 읽을 때 신화적인 요소를 빼고 읽어야 진정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기적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맞을까요. 기적의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치유, 구원, 영생을 위해서
예수님은 여러 가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첫 번째 기적은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입니다. 왜 하필 그 기적이었을까요. 예수님의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과 구원의 역사를 통해서만 인간이 정결케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기적을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해석한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기적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이나 이방민족에게 내려진 재앙입니다. 갈멜산 사건도 그렇고, 출애굽의 사건도 그렇고, 여리고 성도 그렇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치유하고, 회복하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이 기적입니다. 크게 나누면 구약의 기적이 심판이나 재앙이라면, 신약의 기적은 은혜와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평강을 나타냅니다. 기적의 의도를 생각해야합니다. 그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지, 그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적은 꼭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병이 나았다고 잘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병 낫게 해줬더니 건강해져서 죄를 짓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병들고 가난하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더 잘 믿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병들고 가난해진 일이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 자체를 좋고 나쁜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목적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한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시면서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던 유대인들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죄를 사하여 주시는 권세를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성모독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5절).
예수님이 오히려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고, 병을 고칠 수 있지만 죄를 사할 수 있는 권위와 권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막 2:9~10).
10절에 그 의미가 정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풍병자를 고치신 이유입니다. 목적입니다.
어떤 사람의 기도는 들으시고, 어떤 사람의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어떤 사람의 질병은 고치시고, 똑같이 기도했는데 어떤 사람의 질병은 고치지 않으십니다. 일관성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구원을 위해서, 영생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베푸신 기적의 목적은 그것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기적을 통해서 구원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 역사를 위해서 때로 기적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적 뒤에 있는 더 큰 기적
또 다른 기적을 보겠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에만 관심을 기울일 때가 많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예수님이 오천 명을 먹게 하셨다는 기적을 보고 나에게도 그런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그 사건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오병이어 사건 이후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예수님이 곧 생명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과 피를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오병이어 기적의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은 기적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기적이 없으면 냉정하게 주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사역하시는 동안 처음에는 기적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십자가에 가까울수록 기적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제자들마저도 떠났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기적을 베푸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기적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기적이나 표적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적을 경험하십시오. 기적 뒤에 있는 더 큰 기적을 경험하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구원의 기적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 39~42).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 뒤에 하신 말씀이 42절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여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살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보험과도 같습니다. 보험은 여러 가지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막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고를 당해도 그 결과에 대한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해줍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그러나 모든 경우는 아닙니다. 모든 사건의 상황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에게 더 높은 차원의 기반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사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난해도 하나님 앞에서 부유할 수 있는 것은 안정된 기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도 기적, 실패도 기적
기적 자체에만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다. 기적은 요술이 아닙니다. 기적은 사인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사인입니다. 예수님은 몇몇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기도응답의 의미가 있습니다. 체험하는 기적의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눈먼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병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적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기적을 통해 구원에 대해 확신하고, 영생을 소유하십시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가 경험하는 기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는 사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사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구원을 깨닫고,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이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그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도 기적이 될 수 있고, 나쁜 일도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기적이 될 수 있고, 응답 되지 않은 기도도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다면 성공도 기적이 될 수 있고, 실패도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됐다면 그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가진 믿음이 기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그것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는다면 그것 또한 기적입니다.
여러분 삶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통해서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십시오. 기적을 체험하십시오. 그 자체만으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크기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기적을 뛰어 넘는 더 큰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좋은 일도 기적이 될 수 있고, 나쁜 일도 기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됐다면 모든 것이 기적입니다.
/ 권혁빈 목사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