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강단>여호와의 유월절
(출애굽기 12장 1~14절)
“유월절 각 집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이재훈 목사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정치혁명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17세기 왕권에 항거했던 영국의 급진주의자들과 1960년대 미국의 인권운동가들, 남미의 해방신학자 등 전 세계에서 사회적 혁명운동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사회혁명이 불필요하고 위험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출애굽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일어났는지, 또 그 결과를 모르면서 정치적 혁명의 심벌로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출애굽은 타고난 지도자 모세의 지도력과 백성들의 항거가 만든 사회적 운동이 아닙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능, 기적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순종했을 뿐입니다. 백성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의 강한 손과 전능하신 능력에 출애굽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정치적 사건으로 오해하는 것은 유월절 없는 출애굽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사건이 없었다면 출애굽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유월절과 출애굽을 분리시켜 생각한다면 출애굽은 모세가 주동했고, 백성들의 저항으로 이뤄낸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을 통해 본 출애굽은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사건입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이 이집트 땅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심판과 구원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계속 거역했습니다. 마음이 강퍅해져서 계속되는 재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에 대한 경고가 바로에게 주어졌습니다. 유월절은 이 마지막 경고를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모세는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밤중에 내가 온 이집트에 다닐 것이다. 그러면 이집트의 처음 난 모든 것들, 곧 왕좌에 앉은 바로의 맏아들로부터 맷돌 앞에 있는 여종의 맏아들까지 그리고 가축의 처음 난 모든 것들이 다 죽게 될 것이다. 이집트 온 땅에 큰 부르짖음이 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있지 않을 것이다’”( 11:4~6).
하나님이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땅에 큰 울부짖음과 부르짖음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대도 바로는 마음이 강퍅해져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로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에 내가 이집트를 지나가며 사람이든 가축이든 처음 난 모든 것들을 치고 이집트의 모든 신들을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호와다.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 너희 사는 집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이 표시가 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너희를 멸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12~13절).
하나님은 한집에 한 마리의 일 년 된 숫양을 잡아 그 피를 그 집의 문 양 틀과 위틀의 좌우 인방과 문설주라고 번역된 곳에 바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치시고 장자를 치시는 재앙을 일으키시고 애굽에 임하실 때 그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넘어가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피가 발라져 있는 집은 재앙이 임하지 않고 멸망치 않을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당신의 본성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래서 죄에 대해 분노하실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그 진노가 풀릴 때까지 불의와 불법, 그리고 악을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바로와 이집트에 내리신 심판은 단지 그가 이스라엘의 지배자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에 그 땅을 심판하고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심판의 대상
심판에 대해 말씀하실 때 주목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사람들만 심판하신 것이 아닙니다.
11장 5절에 ‘이집트에 처음 난 모든 것들’라고 했고, 12장 12절에서는 ‘그날 밤 내가 이집트를 지나가며’라고 했습니다. 장소가 중요합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이 재앙의 대상입니다. 이집트 사람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과 다른 민족 사람들도 재앙의 대상입니다. 이집트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이 대상이 됩니다. 이 관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부터 심판에서 면제된 것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 사람들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심판이 해당되지 않고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해당된다면 이스라엘인은 의인이고, 이집트 사람들은 죄인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수호신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유월절 사건을 일으키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수호신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유월절을 통한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신 것은 모든 민족의 주인이시고, 심판자이시며, 구원자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집트 땅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이건, 애굽 사람이건, 에디오피아 사람이건 상관없이 이집트에 모든 처음 난 것은 재앙의 대상입니다.
그 약속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
하나님은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일 년 된 숫양의 피를 그 집의 좌우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피를 바른 집은 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치시는데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고 그 표시를 한 집은 넘어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하시는 동시에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 딜레마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면 사랑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우리 마음속에 사랑이 일어나면 분노가 사라집니다. 그렇게 항상 치우칩니다. 하나님은 다릅니다.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갈등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딜레마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 딜레마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려주신 약속을 따라 순종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행하지 않았다면 동일한 재앙을 받습니다. 반대로 다른 민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대로 행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때 다른 종족들도 많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나갔습니다. 양 떼와 소 떼도 아주 많았습니다”(38절).
다른 종족들도 함께 출애굽 했다는 것을 보면 유월절과 출애굽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 역사에서 다른 민족도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당시 최고의 문명국가였던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만 종살이를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과 함께 종살이하던 여러 민족들이 출애굽 할 때 함께 나왔습니다.
출애굽공동체는 처음부터 다민족공동체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수호신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만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다른 민족도 동일하게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고 약속대로 행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이라도 재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집트 온 땅을 심판하실 것이고, 심판으로부터 구원받는 방도를 알려 주셨습니다. 구원을 받느냐 안받느냐는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느냐 참여하지 않느냐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혈통이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이것이 유월절 출애굽의 사건의 중요한 관점입니다.
심판은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집트 땅에 임할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방법은 피를 통한 구별이었습니다.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 너희 사는 집에 피를 발랐으면 그것이 표시가 돼 내가 그 피를 볼 때 너희를 그냥 지나칠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너희를 멸망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13절).
피를 식별표시로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눈에 잘 띄게 하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왜 피를 바르라고 했을까요. 피가 발라져 있는 것은 단순한 식별표시가 아닙니다. 피가 발라져 있다는 것은 심판을 이미 시행한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을 피할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구원과 복음을 깨닫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할 때 심판이 면제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복음을 잘못 깨달은 것입니다. 심판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은 심판이 면제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에게 주어진 심판이 시행된 것입니다. 예수님께 시행된 심판이 나에게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심판 받을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나도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것은 심판이 시행 된 것입니다.
피뢰침이 벼락을 막아내는 것이 아닙니다. 흡수해 버리는 것입니다. 피뢰침이 있는 건물이 벼락의 피해가 없는 것은 벼락을 막아낸 것이 아니라 흡수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내가 받을 심판이 이미 시행된 것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그 피가 발라져 있는 집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 피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생명을 상징합니다. 죽어진 생명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속죄입니다. 그 집에 임할 심판이 다른 대상의 희생과 재물을 통해 집행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표시로 피를 바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은 어떤 집이냐를 보시지 않습니다. 그 집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를 보시지도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인지 다른 민족인지 보시지 않습니다.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느냐 아니냐, 바리새인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 집에 피가 발라져 있는지를 보십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위해 제단에서 속죄를 하는 용도로 주었던 것이 바로 피다. 이는 생명을 속하는 것이 피기 때문이다”(레 17:11).
그 피는 하나님이 정하신 희생제물이였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 년 된 숫양을 잡아 그 피를 바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희생제물의 피를 의지하고, 그 약속 안에 거하는 자는 그가 받을 심판을 이미 받은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유월절 각 집에 발라진 어린양의 피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예수님의 피가 왜 보혈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시고 열납하신 대속의 피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할 때 각 집마다 발라졌던 어린양의 피를 보고 하나님의 심판이 그냥 지나치셨듯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나를 대신한 죽음이라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모든 영혼들은 심판이 이미 임한 자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어린양의 피
오늘 본문에서 유월절 잡는 양을 표시할 때 쓰인 관사가 특이합니다. 12장 전체에서 유월절 양의 희생을 설명할 때 얼마나 많은 양이 죽임을 당했습니까. 각 가정마다 양들을 잡았으면 수많은 양들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그 많은 양들을 표현할 때 복수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한 번도 복수를 쓰지 않고 전부 단수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유일하신 대속제물이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때도 항상 단수를 썼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민족을 이룰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관사는 계속 바뀝니다. 출애굽기 12장 3절에 보십시오. 어린양 한 마리 ‘a lamb’입니다. 그냥 평범한 어린양 한 마리입니다. 그 어린양이 신비한 힘이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제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한 마리 어린양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 ‘양 한 마리에 식구가 너무 적으면’이라고 할 때 양은 ‘The lamb’입니다. 한 마리 양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해서 믿음으로 드려지면 속죄제물이 되는 양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희생제물의 효과를 발휘하는 바로 그 양입니다. 예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을 보여주는 양입니다. 그 양이 5절에서는 너희의 어린양이 됩니다. ‘your lamb’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나의 죽음으로 믿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눈으로 바라보면 예수님은 유일하신 양입니다. 바로 그 어린양입니다.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허락하신 그 어린양입니다. 그 어린양이 나의 양이 되시는 것입니다. 나를 대신해 죽음 당하신 양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의 심판을 지나가게 한 사건이 창세기에도 예표되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나타난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드린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백세 된 아브라함이 얻은 그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기 위해서 아들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길을 가는 중에 이삭이 이상하게 여기고 아브라함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버지 번제 할 나무와 불은 있는데 왜 제물은 없습니까? 번제해야 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 제물이 바로 너라고 대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시리라.”
자기도 모르게 한말인데 성령이 감동을 주셔서 기가 막힌 대답을 했습니다. 가서 이삭을 잡아서 드리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이 “손대지 말라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아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을 손대지 말라고 하셨을 때 근처를 둘러보니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해서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사건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의 순종을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번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준비한 양이 이삭을 대신하여 죽임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중지된 번제’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이삭이 죽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이삭은 죽었습니다. 양이 대신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의 번제를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유월절의 사건에서 어린양의 피를 바른 집마다 이미 심판이 임한 것으로 여기시고 살려주신 사건과 동일한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백성
믿음의 강도에 따라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구원하시지 않지 않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잘못 이해하면 내 믿음의 강도에 따라서 구원받고, 구원받지 못한다고 착각합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것은 내 믿음이 강하면 구원받고, 약하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나를 붙잡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유월절을 통한 출애굽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건이 있던 날을 첫해의 시작으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봄입니다. 봄을 첫해의 시작으로 만들었습니다. 진정한 생명의 시작은 유월절을 경험했을 때입니다. 죽은 목숨과 같았던 우리들이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 생명이 시작되었을 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영원한 삶의 시작점입니다.
유월절 양의 죽음을 통해 그 문에 피를 바를 뿐만 아니라 그 고기를 먹으라고 했습니다. 쓴 나물과 함께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누룩 없는 빵을 먹으라는 것은 그 값진 희생을 통해 구원받았으면 거룩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정월 14일 저녁입니다. 그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붙어있는 절기입니다. 쓴 나물을 함께 먹으라는 것은 과거 애굽에 살았던 삶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을 가지고 힘들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었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쓴 나물과 누룩 없는 빵을 먹을 때 허리에 띠를 차고 황급히 먹어라고 했습니다. 신속하고 온전하게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그날 밤에 먹으라는 것은 대속의 은혜가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출애굽 사건이 어떻게 정치적 혁명의 심벌이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기적으로 이뤄낸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심판을 보여줍니다.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속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적 출애굽을 한 우리도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정리 김남원 부장 one@onnuri.org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