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교회의 존재목적

이재훈 목사
배에서 사용하는 기구 중에 발음이 비슷한 두 개의 기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닻이고, 또 다른 하는 돛입니다. 닻은 영어로 ‘Anchor’입니다. 배가 정착하거나 정지되어 있을 때 파도에 휩쓸러 가지 않도록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또 하나는 돛입니다. 영어로 ‘Sail’입니다. 비교적 작은 배가 바람을 이용해 목적지로 향할 수 있도록 방향을 조정하는 기구입니다. 불어오는 도전과 변화를 에너지로 바꾸어서 목적지로 갈수 있도록 해주는 기구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에는 변하지 말아야 할 목적과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아주 근본적인 것입니다. 시대와 문화,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닻처럼 뿌리내야 할 비전이 있습니다. 동시에 시대와 문화, 도전과 변화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에너지로 변화시켜 주는 돛과 같은 전략도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닻과 같이 결코 변할 수 없는, 변해서는 안 되는 존재목적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출애굽의 진정한 목적 ‘구속’

오늘 본문은 교회의 존재 목적을 가르쳐주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출애굽 한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가나안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지중해 연안의 해변길을 놔두고 남동쪽에 있는 시내광야를 거쳐 돌아가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택하셨을까요. 쉽고, 빠르고, 희생 없고, 고생하지 않고 갈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광야로 인도하신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출애굽 한 백성들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한 이후에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광야에서 고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애굽에서 위협과 학대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없을까를 울부짖었는데 그 기억은 벌써 잊어버렸습니다. 왜 지금 광야에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만 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시점에 하나님은 그들을 시내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왜 출애굽 했는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출애굽기 19장 이하에 나오는 말씀들을 통해서 그들이 왜 출애굽을 했으며,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은 하나님의 구속입니다. 구원은 보편적인 문화를 초월한 개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구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구원의 의미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시대의 문화적인 용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구속 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대의 발음으로 구속은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갇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 구속과 당시의 구속의 의미는 다릅니다. 구속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 문화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쓰였는데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하나는 친족 중 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져서 빚을 지고 갚지 못해 파산했을 때, 친족 중 한 사람이 빚을 대신 갚아주고, 대가를 지불해서 빚진 사람이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 때 그 사람을 구속자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어로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 ‘갈’이라고 합니다. 그 행위를 한 사람을 ‘고엘’이라고합니다.
또 하나의 사례는 남자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었을 경우 그 당시 문화에서 여성은 자신의 이름으로 그 어떤 재산도 소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없는 집의 남편이 죽으면 모든 재산은 한꺼번에 법적인 근거를 잃어버립니다. 대신 죽은 남자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척이 그 아내를 가족으로 맞이해 아들을 낳으면 그 자손이 그 아버지의 재산을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홀로 된 여인과 재산을 유지하는 풍습입니다. 이 풍습은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인 제도였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이러한 구속 문화들이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사건을 ‘내가 너희를 구속했다’고 설명하십니다. 여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상태에서 자유롭게 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출애굽 한 이후 그냥 풀어주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광야가 필요했습니다. 율법을 주셔야만 했고, 그들은 많은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은혜를 먼저 베푸시는 하나님

여러분,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속받은 백성들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그 만찬을 자신의 죽음과 연결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할 때 사용했던 어린양의 희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때문에 출애굽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출애굽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공동체입니다.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언약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구속받은 공동체인 교회는 도대체 왜 존재하는 것이며,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요. 오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주시는 말씀이 출애굽기 19장 1절로 8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시내광야에 백성들을 모으셨습니다. 그리고 왜 너희들이 출애굽 했으며,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지를 그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그들의 과거를 상기시켰습니다.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행한 일을 너희가 직접 보았고 독수리 날개에 얹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내게로 데려온 것을 보았다”(4절).
출애굽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능력과 노력, 투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독수리 날개로 얹어 나르듯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뤄진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먼저 순종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먼저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말씀이 왜 중요합니까. 이 후에 나오는 요구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지키면 내 백성으로 맞이해 주겠다는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은혜를 먼저 베푸시고 나중에 ‘이렇게 살아라’고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많은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의 차이를 오해합니다. 구약은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은 시대이고, 신약은 율법과 상관없이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얻는 시대라고 이해합니다. 이것은 완전히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구원과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그 이후에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율법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출애굽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나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명령과 요구가 부담이 되면 안 되는 이유는 과거에 베풀어 주신 은혜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힘들고, 부담스럽고, 하나님과의 동행이 버겁게 느껴지면 과거에 받았던 은혜를 기억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먼저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미래에 이루실 계획을 보게 하십니다. 그 계획은 바로 선교입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내게 온전히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한 내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이 다 내 것이지만”(5절).
후반부에 나오는 ‘온 땅이 다 내 것이지만’은 ‘온 땅이 다 내 것이기 때문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은 지금 시내광야에 있습니다. 주변에 산과 광야밖에 보이지 않는 지역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모든 민족과 온 땅을 바라보는 안목을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민족, 온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점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특별한 내 보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별한 관계는 모든 민족과 온 세상이라는 안목에서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모든 족속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셨습니다”(출 2:24).
출애굽의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출애굽하게 했던 그 언약의 내용이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고향, 네 친척,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창 12:1~3).
출애굽은 이 말씀 때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지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 출애굽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그 언약의 초점이 미래의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모든 족속을 향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5절과 6절의 말씀은 창세기 12장 1절에서 3절 말씀과 다른 버전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과 모세와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은 동일한 맥락입니다. 대상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고, 장소가 바뀌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일관성이 있습니다. 둘 다 모든 족속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 이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창세기 12장의 말씀을 출애굽기 19장에서 모세와 그 후손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버전만 다를 뿐입니다. 업데이트 된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민족에게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특별한 보물, 제사장 나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복의 근원이 되리라는 말씀을 모세와 백성들에게는 세 가지 다른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내게 온전히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한 내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이 다 내 것이지만 너희는 내게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여라”(5~6절).
첫째, 특별한 내 보물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내 소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애지중지하고,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할 때 자신이 통치해서 쓸 수 있는 자금이 아니라 개인 재산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때도 저 단어를 썼습니다.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자신이 아끼는 물건으로 따로 구별해서 드린 것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입니다.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한 내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그 보물 그 자체가 귀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해서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특별한 보물입니다. 모든 민족에 대한 시야를 잃어버리는 순간 그 특별한 보물의 가치는 없어집니다. 교회가 만약 모든 민족을 향한 사랑과 기도와 비전을 포기하는 순간 특별한 보물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특별한 보물이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민족을 품을 때입니다.
둘째, 제사장 나라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역할을 하는 직책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실행함으로써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역할을 합니다.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출애굽 한 백성들을 제사장 나라로 부르셨다는 것은 ‘나는 너희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고, 너희를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오기를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특별한 보물을 택하신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한 제사장 나라입니다. 구약과 같은 제사제도는 실행하지 않고, 구약과 같은 율법의 해석은 필요하지 않지만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입니다. 나라라는 것은 공동체입니다. 함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이 시대 제사장의 의미를 알아야합니다. 오늘 이 시대 제사장은 이 세상가운데 하나님을 나타나고, 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하는 통로가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교회 존재의 목적입니다.
교회가 존재목적에 가장 합당하게 서 있다면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겠습니까. 반대로 교회가 존재목적대로 살지 못할 때 어떤 평가를 받겠습니까. 구약에서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엄격한 징벌을 내리신 이유는 그들의 선택과 행동에 따라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대한 세상의 평가가 가혹하다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구약의 제사장들을 얼마나 엄격하게 다루시는지를 생각해 보면 많이 봐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하면 됩니다. 왜 세상이 교회를 비난하느냐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세상의 기관들 보다 교회를 더 엄격하게 볼 것입니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믿음이 있습니다. 교회를 욕하고 비판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흥분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욕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를 하는 것입니다. 비판을 많이 하는 것은 기대를 많이 한다는 증거입니다.

존재목적에 합당한 교회와 성도

셋째, 거룩한 민족입니다. 이것은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민족은 같은 단어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보물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입니다. 거룩은 타락한 본성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거룩은 덧입혀져야 합니다. 출애굽은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없었던 것처럼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우리 힘으로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덧입혀져야합니다.
우리는 거룩을 추구해야 합니다. 놀라운 것은 거룩을 추구하고, 노력하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노력하고자 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특별한 내 보물,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특별한 보물로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한 것이고, 제사장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합니다.
순종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미래에 이루실 하나님의 선교를 내다봐야합니다. 우리는 특별한 보물입니다.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민족입니다. 날마다 순종으로 응답할 때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를 통해 이뤄집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특별한 보물로, 제사장 나라로, 거룩한 민족으로, 주님 앞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모든 민족에게 복 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집니다. 존재목적에 합당하게 존재하는 온누리교회가 되기를,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