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주일강단

기도의 손을 들라

이재훈 목사

출애굽기는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상징성이 강한 책입니다. 출애굽의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만드신 시나리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애굽에서 고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에 빠지고, 얽매여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애굽은 사탄과 흑암, 죄의 권세를 의미합니다. 애굽 권력의 절정에 바로가 있었습니다. 바로는 사탄을 상징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게 내버려두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이 계속 종의 상태로 머물게 했던 사람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백성들을 인도한 인물입니다. 그는 사탄과 싸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통해 구원받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에 곧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광야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광야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은 이후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받고, 연단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광야는 우리를 시험하는 자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말렉 족속과의 싸움

출애굽 한 백성들이 주로 겪었던 광야의 시험은 내적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에 앞서 행하시고, 필요를 공급하시고, 인도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믿음이 부족해 염려와 두려움 속에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들이 광야에서 만난 첫 번째 외적인 시험입니다. 아말렉 족속의 공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난 첫 번째 외적인 시험이 무엇을 상징하는지를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공격을 이겨내고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바로는 출애굽을 방해하는 세력입니다. 구원을 방해하는 사탄을 상징합니다. 그렇다면 광야 에서 만난 아말렉 족속의 공격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출애굽이 구원이고, 바로가 사탄이라면 구원받은 이후 광야를 지날 때 만난 성도의 시험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을 방해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외적인 환경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악된 성향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만히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보고 누리면 됐습니다. 구원은 사탄과 대항하고 싸워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만난 아말렉과의 싸움은 하나님이 싸워주시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싸움에 참여해서 이겨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어떻게 싸웠으며, 어떻게 이겼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그 승리를 어떻게 평가하셨는지를 보면 이 사건의 상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언덕 꼭대기에 올라간 모세

아말렉이 이스라엘 민족을 공격해 왔습니다. 그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사람들을 선발해 나가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언덕꼭대기로 올라가 있겠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 사람들을 뽑아 나가 싸웠고, 모세는 아론과 훌을 데리고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동안에는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계속 손을 들고 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론과 훌이 승리할 때까지 손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매우 이상한 전쟁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나가 싸우는 여호수아의 능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언덕꼭대기에 있는 모세의 손이 들려져 있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전쟁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나가서 싸우라고 하고, 자신은 산꼭대기에 올라가 있겠다고 했을 때 여호수아가 오해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세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산꼭대기에 있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전략은 믿음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선택을 했고, 어떻게 해야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 전쟁이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 구체적인 설명이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말렉이 쳐들어 왔을 때 모세는 이미 광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다른 차원의 일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원치 않았던 부르심을 따라 바로를 상대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부르심을 따라 순종했을 때 기적과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며 나갔을 때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믿음의 세계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기도의 손을 든 모세

모세는 이 싸움도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말렉이 쳐들어 왔을 때 어떻게 싸울 것인가 보다 하나님이 이 전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여러분은 실제 싸우는 것과 기도하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군가 우리 민족을 공격해 오면 나가 싸우는 일이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정답은 둘 다 해야 합니다. 모세는 둘 다 했습니다. 그는 기도만 하지 않았고, 나가 싸우기만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가 싸우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영적인 우선순위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전략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기도를 통해 전쟁에 이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손을 들었던 것은 기도의 손을 든 것입니다. 자신의 손만 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겨준 지팡이도 하늘 높이 들었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과 전쟁에서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위로 들었습니다. 앞으로 내밀던지 위로 들던지 그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행위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냥 지팡이를 내민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밀어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가 지팡이를 위로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들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세의 믿음은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와 손을 들고 있으면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이 힘을 얻어 아말렉을 이겼습니다. 그러나 지쳐서 팔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 보이는 전쟁을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많은 전쟁들이 있습니다. 또한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습니다. 보이는 문제와 보이는 않은 문제의 승패가 어디에서 갈리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교훈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서 상징적 사건을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어느 민족이 싸우는데 성경처럼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지팡이 들고 있으면 이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그 상황에서 주신 형태와 사건입니다. 그 상징이 주는 원리를 깨닫고 우리 삶속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도 모세와 동일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형태와 방법을 그대로 따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리와 의미를 우리의 삶에 적용할 때 동일한 승리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육신과의 싸움을 의미

바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은 그들의 행함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힌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로 구원받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참여나 공로, 노력과 행함이 더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만난 아말렉과의 싸움은 참여가 필요합니다. 적극적인 순종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전쟁의 원리를 알고 싸워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기도의 손을 들고, 여호수아는 실제 나가서 싸워서 승리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고 계십니다. 그 싸움을 성령님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세와 여호수아처럼 함께 그 싸움에 참여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 다 물리쳐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하면 안 됩니다. 내가 물리칠 수 있도록 순종하고 참여해야합니다. 내가 참여함으로 영적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우리 안에 있는 육신과의 싸움을 의미합니다. 세 가지 근거가 있습니다.
첫째,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시점입니다.
출애굽기 17장 전반부를 보면 르비딤에서 물이 부족할 때 하나님이 바위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했습니다. 출애굽기의 사건들은 매우 상징성이 강합니다. 광야의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왔다는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의 생수가 흘러넘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광야에 사는 인생 가운데 성령의 역사하심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했습니까. 물 때문입니다. 물이 터져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물이 탐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한 것입니다. 여러분, 언제 아말렉이 우리를 공격해 옵니까. 언제 육신과의 싸움이 시작이 됩니까. 출애굽 전에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알 수도 없습니다. 싸움을 걸어오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안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출애굽 한 이후 성령을 따라 살려고 할 때 아말렉이 공격을 시작합니다. 아말렉과 전쟁이 일어난 시점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할 즈음입니다. 성령 안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막 체험하기 시작할 무렵 영적전쟁이 시작됩니다.

아말렉의 공격, 전형적인 사탄의 방법

둘째,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공격한 방법입니다.
“네가 이집트를 나올 때 아말렉 사람들이 네게 어떻게 했는지 기억해 보아라. 네가 지쳐 피곤했을 때 그들이 길가다가 너희를 만나서 뒤쳐져 있는 자들을 치지 않았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신 25:17~18).
아말렉 족속은 지치고 피곤해서 뒤처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쳤습니다. 그들은 비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말렉이란 이름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에서의 후손들입니다. 에서는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고귀한 축복을 팔아넘긴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조상이 그렇다고 해서 후손이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에서의 망령된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아 살아갈 때도 있었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따라 영혼의 소중함을 팔아넘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공격방법은 전형적인 사탄의 방법이었습니다. 지쳐서 뒤쳐져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탄에게 속한 공격방법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강한 것 같지만 약자입니다. 전능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지만 무소부지하지 않습니다. 영리하지만 모든 것을 알지 못합니다. 사람들을 무너뜨리지만 하나님은 결코 상대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 약자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할 때는 정면대결을 피합니다. 강자를 공격하기 위해서 비겁한 방법을 씁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영적 공격은 상식적이고, 정당하고,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매우 은밀하고, 비상식적이고, 비대칭적이고, 예기치 않은 상황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두렵게 만들어 무너뜨립니다. 아말렉 같은 방법으로 공격을 합니다.

여호와 닛시! 승리의 깃발!

셋째, 하나님이 아말렉을 어떻게 평가하셨는지입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책에 써서 기념이 되게 하고 여호수아로 하여금 듣게 하여라. 내가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없애 버릴 것이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며 말했습니다.’여호와께서 대대로 아말렉을 대적해 싸우시겠다고 맹세하셨다(14~16절).
왜 하나님이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대대로 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말렉이 모든 성도들을 괴롭히고, 공격하는 죄와 육신의 소욕을 상징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에 불순종하는 사람이 사울입니다.
사무엘상 15장에 보면 하나님이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되 모조로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잔인하신 분이시고 아말렉만 미워해서 내린 명령이 아닙니다. 아말렉이 상징하는 상징성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대답만 했지 아말렉을 완전히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살찐 송아지, 살찐 육축들, 좋은 것들을 전리품으로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는 첫 번째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대대로 아말렉을 제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들을 완전히 제거할 때까지 싸워야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길까요. 아말렉을 이긴 모세의 비결을 따라 우리도 기도의 손을 높이 들어야합니다. 손을 드는 것은 항복의 표현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와의 싸움은 내 힘과 능력으로는 싸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육신의 소욕이 일어날 때, 죄가 나를 유혹할 때, 나를 넘어뜨리는 광야의 시험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드십시오. 그것은 사탄에게 항복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항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또한 손을 높이 드는 것은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의 승리자이시며, 주권자이시며, 전능자이시며, 나를 구원하신분입니다.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을 때 모세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손을 들 때 하나님은 우리 손을 깃발로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 손을 높이 들 때 그 기도의 손들이 하나님이 쓰시는 승리의 깃발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손이 역사가 된다

성경에 기도의 손을 들라는 여러 명령들이 나옵니다. 세 구절만 보겠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살펴보고 점검하고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 마음과 손을 들어 올리자”(애 3:40~41).
“주의 지성소를 향해 손을 들어 주께 부르짖을 때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 28:2).
“그러므로 나는 각 곳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바란다”(딤전 2:8).
우리의 손을 들 때 마음이 들리고, 믿음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영적전쟁의 승리가 주어질 것입니다. 기도의 손은 하나님의 보좌에 까지 도달합니다. 그 보좌를 붙잡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할 것입니다. 기도는 이중성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할 것이고, 보이는 세상의 모든 문제와 전쟁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세계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손을 높이 들 때 하나님의 보좌가 움직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모세가 손을 높이 들었을 때 산 밑에서 전쟁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의 어깨까지 그 기도의 손이 닿았습니다. 기도의 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 어느 곳이든지 기도가 필요한 곳까지 닿을 것입니다. 우리는 직접 갈수는 없지만 기도는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기도의 손이 역사가 될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의 손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어깨를 붙잡아 주었고, 연약한 무릎을 붙잡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체험을 많이 합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연락을 종종 받는데 그 때는 제가 힘들 때입니다.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제가 시달리고 있는 꿈을 꾸어서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놀랍게도 그 꿈에 저의 상태가 나타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하면 기도의 손이 길어집니다. 기도의 손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승리의 깃발이 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전쟁이든, 이 세상에 있는 죄의 전쟁이든 무조건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나가십시오. 하나님이 모세의 기도의 손을 보시고, 그 백성들이 이기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전쟁에서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