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권사순환칼럼>룻이 될 것인가, 오르바가 될 것인가

 

삶에 놓인 높고 낮은 장벽들. 많은 사람들이 그 장벽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왔을 게다. 나는 넘어졌을 때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렵고 떨려 외면했다. 내가 벼랑 끝에서 섰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괜찮아, 뛰어봐, 내가 있잖니!” 그러나 나는 의심이 많았다.
“정말 제가 떨어지지 않게 받아주실 건가요?”
결국 벼랑으로 떨어지면서 “하나님!”을 외쳤다. 하나님은 내 손을 잡고 함께 뛰어 주셨다. 요나처럼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 두려워 도망가던 나를 붙잡아주셨다.
믿음은 복잡하게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함께 뛰면 된다. 나는 그것을 마흔여섯 살에 알았다.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는 말씀을 주셨다. 내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면 하나님께서 어여삐 보신다는 것을 알게 하셨다.
나는 지혜로 룻의 삶을 인도해준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를 섬긴 룻의 삶을 보면서 일대일 제자양육이 우리의 삶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지침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성의 이름을 딴 성경은 룻기와 에스더기만 있다. 룻기에는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그 며느리 오르바와 룻이 나온다. 이국땅에서 남편과 아들 둘을 잃고 살길이 없어 며느리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재가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했지만 룻은 시어머니를 선택한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었다.
“내가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7).
고난은 수시로 찾아온다. 벼랑 끝에 서있는 삶의 순간에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내 삶을 하나님께 드릴 것인가, 아니면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오르바와 같이 편안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룻처럼 믿음의 길을 택할 것인가.
나는 내 삶이 또 다른 룻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일대일 제자양육의 일원이 되었다. 내가 만난 동반자들은 나보다 성실한 믿음의 일꾼들이었다. 하나님은 부족한 나를 세우기 위해 부단히 애쓰시는 것 같다. 해외에 어느 도시의 목회자에게 일대일 제자양육을 해 준 적이 있다. 그녀는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나눔을 하던 중에 자신을 보호하지 않았던 남편과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예로 들면서 위로했다. 자신을 누이로 속이고 팔아먹은 남편 때문에 슬펐다든지, 남편과 살고 싶지 않았다는 표현은 없지만 사라의 마음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는 것을 문맥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동반자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주의 가정이 되기를 바라시지 않겠느냐고 권면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딸이 슬퍼하는 것을 못 보시지만, 고난을 넘어서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 23:10)는 말씀처럼 정금같이 훈련된 사역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세계 곳곳에서 일대일 제자양육을 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는 일대일 제자양육을 통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온전히 살아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일대일 제자양육을 하면서 더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 일대일 제자양육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에 이르기를 기도한다. 일본에도 일대일 제자양육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깊이 뿌리 내리기를 소망한다.

서승옥 권사
/서승옥 권사(일대일사역 담당)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