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순 목사의 Wise Fathering ( 2014. 5/25 – 6/15)
김정순 목사
Wise Fathering ( 2014. 5/25 – 6/15) /김정순 목사
1주 : 아버지, 그 영적 권위 / 2주 : 경계선을 통한 훈육/
3주 : 말씀을 전수해야 하는 소명 / 4주 : 행복의 통로, 아버지
아버지, 그 영적 권위
그동안 우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빠’와 ‘자녀를 양육하는 엄마’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살아왔다. 이러한 구도는 산업화,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참여가 늘어나면서 바뀌었다. 성역할이 파괴되었다. 이제 자녀양육과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역할이 필요하게 되었다.
2010년 일본에선 ‘이쿠맨’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 ‘이쿠맨’이란 유아와 남자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남성’이라는 뜻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도 ‘좋은 아빠는 육아하는 아빠’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아이를 안고 살사 댄스를 추는 아빠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아빠들도 ‘이스라엘 컨텍 키즈’라는 무용동아리를 만들었다. 아빠들이 즉흥적으로 춤을 추며 아이들과 몸을 구르며 스킨십을 즐긴다. 1970년부터 스웨덴은 아빠 육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정부차원에서 아빠의 육아를 홍보하는 관련제도를 개선해 왔다.
잘 알려진 파워 블로거 김동권씨는 아이들과 매일 10분씩 놀아주기를 통해 아이와 친밀감을 쌓는다. 그는 어느 날 아이로부터 “아빠는 항상 일만 해” 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빠하면 ‘재미. 흥분, 긴장, 쾌감, 즐거움’이 연상되도록 재활용품으로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만 하는 아빠’에서 ‘매일 놀아주는 아빠’로 변신했다.
요즘은 프랜디(‘친구같은 아빠’라는 단어가 정착되고 있다. 양적인 시간보다, 정기적으로 아빠와 자녀가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게 매우 중요하다. 중앙아프리카의 ‘아카족’은 하루 평균 12시간을 자녀와 함께 보낸다. 미국 워싱턴 주립대학교 배리 휼렛( Barry Hewlett)교수는 1970년대에 아카족을 만난 후 최대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수퍼맨이 돌아왔다’ 라는 프로그램이 방송중이다. 엄마와 자녀가 2박 3일 동안 떨어지게 한 다음 아빠랑 생활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아빠의 양육태도와 자녀와의 관계를 본다. 이제 사회는 아빠를 직접 육아현장으로 부르고 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 4:5~6).
성경은 현 세대를 꿰뚫고 있다. 아버지들의 마음은 세상의 성공을 향하고, 자녀들의 마음은 성적에 가 있다. 가족들이 한 상에 둘러 밥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바쁘다. 과연 무엇을 위한 바쁨인가? 가족들이 함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보니 가족응집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가족들 모두가 방황하고 있다. 가정의 구심점은 아버지다. 가족은 아버지의 권위를 인정하고,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찾아야 한다. 바쁜 일상이 가장 소중한 것을 도둑질해갔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마음까지도 훔쳐 갔다.
아버지들은 물질주의, 성공주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자녀의 마음을 사야 한다. 아버지가 먼저 자녀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진정한 사랑을 주면 자녀들은 방황하지 않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다.
권위주의는 어떤 일을 권위에 맹목적으로 의지해 해결하려는 행동양식이나 사상이다. 자신보다 상위의 권위에 강압적으로 따른다. 반대로 자신보다 하위에 있는 권위에는 오만하고 거만하게 행동하려는 심리적 태도나 사상이다. 권위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승인으로 성립된다. 권위는 지식과 통찰력, 포용과 조정능력 등에 대한 신뢰와 승인이 있어야한다. 지위에 따른 역할은 부차적인 것이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영적권위를 가져야한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돌아오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과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진실 되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녀들은 아버지의 영적 권위에 순복해 자발적으로 사랑과 존경을 보낸다. 존경받는 아버지가 영적 권위가 살아있는 아버지다.
경계선을 통한 훈육
요즘 딸 바보, 아들 바보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이 단어에는 아이가 정말 예뻐서 원하는 것은 무조건 다 해줄 수 있다는 의미도 들어 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다.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은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문장의 의미상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한 규율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논리상 맞으려면, 먹지 말라는 규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드신 이유가 뭘까? 그것을 먹으면 왜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을까?(창2:6~17). 하나님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
드시고 인간을 만드셨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유의지를 주셨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보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이것을 먹지 말라고 하셨지’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말씀을 지켜야지’ 하는 것을 늘 기억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다. ‘이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는 분명한 말씀을 주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늘 생각하게 하는 장치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즉 울타리를 주셔서 우리를 보호하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10계명을 주셨다. 10계명은 우리의 울타리이며, 경계선이다. 이 경계선을넘으면 죽음만이 있으니,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기에 선악과와 십계명이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한다’ (요 8: 32)는 말씀은 역설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을 때만
이 자유하다는 뜻이다. 세상의 자유는 내 멋대로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최적의 좌절’이 필요하며, 이 ‘최적의 좌절’은 경계선이라는 훈육으로 표현할 수 있다. 하인즈 코헛은 이 ‘최적의 좌절’을 2~4세에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에릭슨
은 인간의 사회심리 발달단계에서 1~3세가 ‘자율성 대 수치심’라고 말함으로 자율성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이 시기에 부모는 최적의 좌절이라는 훈계와 함께 자율성을 시기적절하게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인즈 코헛은 최적이라는 뜻이 심리적으로 견딜만한 것으로 경험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며, 부모의 공감적 배경하에서 최적의 좌절은 자기(self)를 응집시키고 자기를 구축시킨다고 하였다. 헨리 클라우드와 존 타운센드는 <No 라고 말할 줄 아는 자녀양육>에서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는 말씀을 인용하며, 모든 인간에게는 경계선(바운더리)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운더리(boundary)는 한 사람을 특징짓는 ‘고유의 경계’로 한 사람의 영역이 끝나는 곳과 다른 사람의 영역이 시작되는 곳을 구별해 주는 것이다. 바운더리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하고 스스로 관리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바운더리의 핵심은 자제심, 책임감, 자유 그리고 사랑이다. 가족 치료 전문가들은 가정의 행복과 불행의 80%가 남편과 아버지가 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제한을 설정하고, 자녀가 받아들여야 하는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요구할 때 명확한 바운더리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연령에 맞게 할 수 있는 것들을 가르쳐 주고, 고쳐주며, 일을 잘 해결 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훈련을 시켜야 한다. 아버지는 자녀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칭찬하며, 공감하며,
영적 권위를 가지고 든든히 서 있어야 한다. 이런 훈련이 6세 미만에 잘 잡혀야지 학교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영적 권위에 순종하게 된다. 자녀는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낄 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건강하게 잘 자라기 위해 이 규율이 필요하구나”를 이해하면서 가정의 규율을 기쁨으로 지키게 된
다. 가정에 규율이 있고 훈계가 있을 때, 이 땅에 엘리 제사장같이 자녀들을 훈계하지 않음으로 저주를 받는 일이 없을 것이다(삼상 3: 13).
말씀을 전수해야 하는 소명
솔로몬은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1:8)고 권면한다. 훈계는 법이나 계명과 다르다. 훈계가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라면 계명이나 법은 훈계를 시행하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훈계는 아버지가 하나님께로부터 배운 진리를 가리키고, 법은 아내인 어머니가 남편에게서 배운 것을 자녀에게 전달하는 형식이다.
창세기 2:16~17절을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에 대해 말씀하셨고, 아담은 그것을 하와에게 다시 가르쳐 주었다(창3:1~3). 그러나 하와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뱀의 말을 들었다. 결국 하와는 남편인 아담이 준 훈계를 제대로 실행하지 못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사탄의 아주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가정에서 아버지의 존재감을 지우는 일이다. 사탄이 아버지를 공격하는 이유는 만약 아버지가 창조된 대로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이행하면 가정에서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가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탄은 이런 일을 끔찍이 싫어한다. 참된 교훈이 없으면 권위도 사라진다. 권위가 실종되면 무정부 상태의 혼란이 초래된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많은 청소년 문제들과 불행한 일들의 원인은 가정에서권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처럼 아버지들은 자녀를 훈육해야 한다. 훈육하다(discipline)는 단어는 제자(disciple)라는 단어에게 유래되었다. 예전에 제자란 도제식으로 스승의 행동을 보며 배우는 사람을 가리켰다.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자녀의 모델링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마 4:19) 고 하셨다. 아버지의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이 하늘 아버지를 닮고 그분을 본받고자 노력해야 한다. 경건하고 진실한 아버지는 먼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교육사상과 방법은 ‘쉐마’와 ‘학가다’와 ‘하브타’와 ‘히누크’이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두 번씩 쉐마를 암송하고 임종할 때 외운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이 쉐마의 말씀을 철저히 아버지가 지킴으로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하고 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저력이며 가정을 지키는 근본적인 힘이다. 쉐마의 첫 번째 사상은 유일신 사상이다. 철저히 여호와 하나님은 한분으로 온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아버지가 먼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아버지의 영성이 어떻게 바로 서 있느냐가 먼저이다. 그 다음이 자녀에게 말씀을 전수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가치관이 그의 생각을 지배하기 전에 어린 자녀에게 성경 말씀을 암송해서 말씀의 사람으로 무장하도록 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말씀으로 먼저 세뇌를 시키고 말씀의 사람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 ‘학가다’는 반복교육을 말한다. 학가다의 반복교육은 반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여 마음에 새기게 하여, 그 말씀이 삶으로 자동으로 실천할 수 있게 체질화시키는 방법이다. 유대인들은 이 학가다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매어 행위와 실천의 지침으로 삼고, 미간에 붙여 사고와 판단의 중심으로 삼으며, 네 집에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함으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의 중심으로 삼았다.
‘하브루타’는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 즉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부모와 자녀가 서로 소통하는 것이며, 질문을 통하여 계속해서 서로의 생각과 마음으로 읽어내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함으로 진리를 더 깊이 캐는 것이며, 성공과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법이다.
‘히누크’는 교육이라는 뜻으로 이는 ‘봉헌하다’란 의미가 있다. 히브리어로 순교라는 뜻도 있다. 우리가 교육을 받는 것은 이웃을 섬기며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기 위해 하나님께 소명을 받은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티쿤 올람” 교육으로 ‘더 나은 세상으로 발전시킨다’의 유대인 사상을 대변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할아버지가 되어도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다. 삼대가 자연스럽게 하나님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 자녀들이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따라 가는 것이다. 말씀 전수는 부모의 소명이며 사명이다. 아주 당연하게 아버지가 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행복의 통로, 아버지
일반적인 교회적 용어로 어머니들에게 축복의 통로, 축복의 그릇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번 ‘wise fathering’에서,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행복의 통로라는 말을 생각해 보았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행복하든지 아니면 불행하든지가 결정된다. 한 가정의 리더는 아버지다. 한 국가의 리더는 대통령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이기 때문에 한 공동체의 행복은 리더에게 달려 있다. 하버드대학의 조지 베일런트교수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행복의 조건은 ‘인생의 고통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렸다고 했다. 그는 삶의 황혼기에 뽑은 행복의 일곱 가지 조건 중 첫 번째를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로 꼽았다. 이어 교육, 안정된 결혼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안정된 결혼생활을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영어로 ‘Happiness(행복)’는 그리스어 ‘Eudamonia’를 번역한 것이다. ‘Eudamonia’는 이성적 · 내면적 측면을 포함하는 단어인 반면에 Happiness는 ‘우연히 일어나다’는 뜻을 가졌다. 오늘날의 행복은 ‘Euprattein(좋은 삶)’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최고의 선’과 ‘최고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정의 행복을 위해 실천하는 장로님의 예를 들어본다. 비전 북 대표이며, 어린이 도서 전문 출판사 몽당연필 대표 박종태 장로님이다. 그는 행복한 가정 전도사이다. 그는 “아버지 웃음은 행복을 만드는 만능키”라면서, 가족을 소홀히 한 일에 대해 아내와 삼남매 앞에서 공개사과를 하고 가족을 웃게 만드는 아버지가 되었다고 한다(국민일보, 5월31일자). 그는 가족을 웃게 하는 아버지 10계명을 발표하였다. 1.참 귄위로 경영하라 2.사랑의 끈으로 묶어라 3.부양을 넘어 양육하라 4.날마다 축복하라 5.접촉 빈도를 높여라 6.정서를 공감하라 7.가족 놀이문화를 개발하라 8. 가사를 적극 분담하라 9.날마다 기도하라 10.날마다 행동이 카피되고 있음을 잊지 말라고 했다. 그는 십계명을 정하고 그것을 행함으로 비로소 가정에 행복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성경시대의 남자 아이들은 네 살이 되면 1차적인 역할 모델이 바뀌었다. 그 전까지는 어머니가 양육과 교육을 담당했다. 자녀가 네 살이 되면서부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켜야 하는 두 가지 기본 교육이 있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법인 토라를 가르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일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아버지들은 아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암기하고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실제적으로 율법이 어떻게 적용되는 지에 대해 문답을 시키도록 되어 있다. 아들이 만 12세에 성년식을 하면,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견습을 하면서 도제식으로 아버지의 일을 배웠다. 아버지 옆에서 나란히 일하면서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한 작업 비결을 배웠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일만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법, 돈을 관리하는 법, 계획을 세우는 법, 가족을 책임지고 부양하는 법을 배웠다. 한 전문가에 따르면, 1830년 무렵까지는 자녀 양육지침은 전부 아버지가 하는 것이었으나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여성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들은 직장을 다니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게 되었고, 가정에서 주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머니 몫이 되고 난후, 아버지는 현대문명으로 인한 가정에서 방관자의 위치로 전락하였다는 것이다.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위한 리더쉽은 무엇인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9:10)”이다. 장신대 박상진 교수가 말한 여경지근의 사상으로 가정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행복의 통로, 아버지는 결국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자녀들에게 본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도록 하면서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이다(엡 6:4).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는 유머를 많이 사용하며, 공감하는 태도를 배워야 할 것이다. 더 수용성 있는 아버지가 될 때 그 가정은 행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현대의 가장 불행한 현실이다. 아버지가 영적 권위를 가지고 자신의 위치를 지킬 때, 그 가정은 반석위에 집을 짓는 것이다.
작성자 조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