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석 목사의 신앙에세이 4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혹독한 신앙교육은 노방전도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막내인 나를 유독 부흥회, 기도원 집회, 노방전도 등에 데리고 다니셨다. 학생으로서 마지막으로 받은 신앙교육은 노숙자들을 위한 사역이었다.
1992년이었다. 어머니는 늦은 밤 전철을 타고, 고등학교 1학년이 된 나를 데리고 서울역 지하로 가셨다. 당시 나는 “오늘도 교회에서 무슨 집회가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교회로 가지 않고 지하차도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셨다. 이윽고 트럭 한 대가 왔다. 트럭에는 식판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밥솥, 국통, 여러 가지 반찬통들, 롤처럼 말린 돗자리가 있었다. 그것들을 지하통로 한쪽에 옮겨 놓고 돗자리를 깔았다. 돗자리를 깔고 보니 예배당처럼 아늑한 예배 처소가 되었다. 몇 안 되는 봉사자들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배식준비를 마치자 저만치서 시커먼 무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노숙자들이었다.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석탄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양새였다. 거친 말투, 금세 싸울 것 같은 기세, 술에 취한 사람들, 어디서 싸웠는지 얼굴 여기저기 상처가 있는 사람까지…. 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몸이 경직되었다. 그들 옆에 있고 싶지 않은 생각마저 들었다. 환기도 제대로 되지 않은 그 통로에는 그들이 뿜어내는 역한 냄새가 가득했다. “지구에 이런 냄새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냄새가 고약했다.
나는 그들과 멀찌감치 떨어져 예배가 빨리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나는 그 사람들이 우리가 힘들게 펴 놓은 돗자리에 신발을 신고 아무렇게나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자리에 올라갔다. 어떤 이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어떤 이는 주변에 있는 스태프(선교사님과 전도사님)에게 가서 기도를 받았다. 또 어떤 이는 주변에서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을 말리거나 청소를 했다.
그 모습이 놀라웠다. 나는 그들을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와서 잠시 예배드리고 밥을 얻어먹는 사람이라고 치부했었다. 나의 무지와 교만을 회개했다. 작은 앰프에 마이크 하나 겨우 연결해서 별다른 반주 없이 시작된 찬양을 열성적으로 따라 부르는 그들은 영락없는 천국을 맛본 사람들이었다. 씻지 않은 몸에 신발까지 벗으니 냄새는 더 고약했지만 그들이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다. 단순히 먹을 것을 얻기 위해 그 자리에 왔다고 할지라도 예배드리는 순간만큼 그들은 예배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하나님은 그 낮은 자리에서 드린 예배를 기뻐하셨을 것이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 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하시면 나 어디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새찬송가 280장) 그들은 이 찬송가를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한탄하고, 신음하며, 회개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저들처럼 하나님을 찾고, 예배드리는 있는지를 돌아보게 됐다.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나님은 겉모습만 보고 그 사람들을 판단했던 나의 무지와 교만에 경종을 울리셨다. 세상과 사람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내 생각과 경험이 나를 지배하고, 내가 세운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나도 그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떡을 떼며 교제했다. 그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하나님을 갈망했던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오늘도 고백하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한 사람, 예배자가 되기를.”
/최성석 목사(이수 공동체)
작성자 김남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