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Talk Talk 열왕기 11

엘리야의 승천

 

어릴 적 자주 부르던 찬송가 가운데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찬송이 있다. 이 찬송의 2절 가사가 이렇다. “옛날 용맹스럽던 다니엘의 경험과 유대임금 다윗 왕의 역사와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타고 하늘에 올라가던 일을 기억합니다♪”
우리에게 엘리야는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선지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죽는다. 그러나 엘리야와 창세기 5장에 등장하는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리고 가셨다(흔히 에녹과 엘리야가 ‘승천’했다고 말하는데, 히브리어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이 이들을 ‘데리고 가셨다’ took him이다).
왜 하나님이 이 두 사람만큼은 육신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데리고 가셨을까? 먼저 에녹을 보자. 에녹은 아담의 칠대손으로 365년을 살았다.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짧은 생애를 살았다. 그가 다른 사람에 비해 죄를 많이 졌기 때문에 벌을 받아 오래 살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창 5:22, 24 두 번 언급). 5장에 나오는 아담의 계보의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 성경은 ‘살았다’고 말하지만, 에녹에 대해서만큼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한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이었고 경건한 삶이었다는 뜻이다. 노아 역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던가?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평가한다(히 11:5). 하나님이 얼마나 그를 기뻐하셨는지 에녹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를 데리고 가셨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으나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을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셨고(창 3:23) 아벨을 죽인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살았지만(창 3:16), 에녹은 오히려 죄악의 세상에서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하나님이 직접 데리고 가셨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셨던 인간의 삶이었으리라. 한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죽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살기 위해 태어났다. 이런 삶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써 온다…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저주의 사슬을 끊는 열쇠다.”
죽지 않고 하늘로 간 또 다른 사람은 엘리야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데리고 가신 이유에 대해 성경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당시 바알에 맞서 싸웠던 엘리야의 생애를 생각해보면 바알이 생명의 주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보이시기 위해서가 아닐까? 저 위대한 모세조차 죽었지만(그러나 어떤 유대 문헌은 모세가 승천했다고 말한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 이것은 엘리야가 탁월한 선지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예수님이 산에서 그 용모가 변화하실 때 다른 모든 선지자들을 제치고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말라기는 하나님께서 승천한 엘리야를 이 땅에 다시 보내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 4:5~6)
이 말씀에 따라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메시야를 보내기 전에 보낼 선구자로 생각됐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예언서를 읽은 후 기도서를 통해 “당신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당신의 메시야 다윗 왕국을 통하여 그가 속히 와서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으셨을 때, 일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엘리야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예수님은 메시야의 선구자가 아니라 메시야 그 자신인 것을. 그리고 세례 요한이 바로 이 엘리야의 역할을 감당한 사람이다.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이 장차 할 일에 대해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눅 1:17)라고 예언했는데, 이것은 바로 말라기 4:6에서 다시 올 엘리야가 할 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예수님도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세례 요한이 엘리야임을 암시하셨다(막 9:11~13). 실제로 마가복음 1장에 묘사된 세례 요한의 모습과 사역은 엘리야와 흡사하다.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왕하 1:8).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한 것처럼, 엘리야도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을 향해 바알을 버리고 여호와에게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또 광야와 요단강은 엘리야와 관련되어 있다(왕상 19:3~18, 왕하 2:4~11). 신약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다고. 그리고 에수님이 엘리야 뒤에 오실 메시야, 아니 하나님 당신 자신이라고.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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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