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희 목사의 신앙에세이 3
그 사람을 예수님이라고 여겨야
지난주 하나원 사역으로 알게 된 탈북자 자매와 함께 음악회에 갔다. 단 둘이 가기 뭣해서 나는 딸아이를, 그 자매는 옆집 사는 다른 탈북자를 데려왔다. 사실 나는 음악회에 별 흥미가 없다. 이것도 사역이려니 하고 내키지 않아하는 딸을 겨우 설득해 음악회에 갔다. 음악회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같이 간 탈북자 자매 2명이 사라져 버렸다. 음악회가 재미없었나 싶어 로비로 찾으러 나갔는데 문자가 왔다.
“목사님, 언니가 집에 손님이 왔다고 급히 가야 한데요. 저도 함께 갈게요”
정말 당황스러웠다. 나는 탈북자 지체를 섬길 요량으로 음악회 끝나고 그들을 데리고 갈 유명한 평양냉면집도 잡아놨었다. 그런데 음악회가 재미없다고 도중에 나가버릴 줄이야. 결국 평양냉면은 딸과 함께 먹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너무 한국식으로 밀어붙인 것일까? 내가 인사를 잘 안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려 했지만 배신감이 올라왔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며칠 전 북한사역 서밋에 참석했다. 나는 선택강의 중 하버드 대학원의 조세핀 김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 교수님은 자신의 상담 사례를 소개했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않고, 인상만 쓰는 한 아이를 상담하기 위해 몇 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아이가 만나주지 않아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그 아이와 상담하기 위해 계속 찾아가던 어느 날 그 아이 스스로 교수님을 찾아와 울면서 자신의 상황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야기가 다 끝나고 그 교수님이 아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토록 찾아가도 만나주지 않던 네가 어째서 나를 스스로 찾아왔니?”
그러자 그 아이가 “당신은 항상 나를 믿어주잖아요(You always came back!)”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찾아와 준 교수님에게 신뢰가 쌓인 것이다.
탈북사역의 핵심은 지속성이다. 아무리 상처받고, 배신을 당해도, 끝까지 거기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친구가 될 수 있다. 한두 번 이벤트로 친구를 만들 수 없다는 말이다. 탈북사역이란 결국 프로그램이 아니라 인내의 사역이다. 이를 어떻게 감당할까 자신이 없어지는 순간 예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탈북자 사역의 해답을 찾았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낯선 사람으로 사는 지극히 작은 탈북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해답을.
이 말씀은 아마도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태도로 살면 예수님이 갑작스럽게 나타나도 잘 섬길 수 있을 것이라는 뜻으로 주셨는지 모른다. 그런데 더 생각해보면 탈북자 사역은 너무 어려워서 그 사람을 예수님이라고 여기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사역이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 사람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해야만 가능하다.
우리가 아무리 상처 받고, 배신을 당해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을 수 있고, 꾸준히 낯선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원동력은 ‘이 사람이 예수님이구나’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탈북자 사역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위선이 되거나, 상처만 남는 사역이 될 수 있다.
탈북자 사역은 단순히 돕는 사역이 아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는 사역이다.
/ 허원의 목사(사회선교 하나원사역)
작성자 김남원

![허원희목사증명사진[1]](https://media-weekly.onnuri.org/uploads/legacy/2015/06/허원희목사증명사진1-290x39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