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허원희 목사의 신앙에세이 4

 

피난처에서의 상념

 

6월의 뜨거운 어느 날.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피난처를 찾아갔다. 이 피난처는 한국으로 표류한 난민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독교 NGO단체다. 한국에도 난민이 있냐는 질문이 자연스레 나올 것이다. 그만큼 한국은 난민 수용에 인색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1992년 세계난민협약에 가입한 이래 2000년까지 단 한명의 난민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이후 2015년까지 490명의 난민을 수용했다. 전 세계에 약 4천만 명의 난민이 있다. 지금까지 한국을 방문한 난민은 10,760명이다. 그 중에 490명을 난민으로 인정했으니 수용율이 5%도 채 안 된다. 물론 좁은 한반도에 오는 난민들을 모두 수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도 한때 조국을 잃고 중국에 임시정부를 수립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라를 잃고, 내전과 종교적 박해를 피해 도망쳐 나온 강도 만난 이웃들을 문전박대 하면 안 되는 이유다.
난민들의 상황은 극도로 열악했다. 그들은 재개발지역 판자촌에 살고 있었다. 빛도 잘 안 들어오는 좁은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들은 체류허가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난민 신청을 하면 심사를 받는데 그 기간이 약 2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생계지원이 거의 없다. 취업도 금지되어 있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들이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본국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다는 근거를 서류로 제출해야 하는데 도망 나온 이들이 어디서 그 서류를 준비할 수 있단 말인가. 피난처는 이런 문제들을 도와주는 곳이다.
간혹 불법체류자와 난민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난민은 불법체류자와 엄연히 다르다. 난민들은 돈을 벌려고 한국에 온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고국으로 돌아가면 박해와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정서적으로 외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피난처를 설립한 이호택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 사역을 하다가 그 속에 섞여 있는 난민들을 발견하고 난민사역을 시작했다. 그의 아내는 신혼여행으로 간 중국에서 탈북난민들의 열악한 상황을 목격하고 탈북자사역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여명학교(탈북자 대안학교) 교감으로 섬기고 있다. 이들의 헌신적인 사역에 감동받은 7명의 간사들과 협력 변호사들이 함께 섬기고 있다.
난민사역은 정부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사역이라는 느낌이 든다. 신앙의 인물들도 피난처에서 하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들이다. 정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난민을 적게 받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한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가장 급박하고 절실한 사역이다.
그 곳에서 이집트 난민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분이 땀을 흘리고 있는 나에게 물 한잔을 대접했다. 깊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싶어 한다는 마음은 읽은 것 같다. “하나님은 이집트를 사랑하시고, 당신의 어려운 상황을 통해 반드시 복을 주실 것”(사19:19~25)이라는 나의 말에 감동을 받고 커피까지 타 주었다. 난민이 대접해준 물과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따스한 혼정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어려운 시간에 따스한 말 한마디와 물 한잔이 사람의 영혼과 운명을 변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지금 아무 것도 없는 신세지만 나중에 고국에 돌아가서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정치가와 지도자가 될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국에서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하게 될 날을 기대한다. 견학을 마치고 나오는데 간사님이 말했다.
“이곳은 재개발 지역입니다. 2년 안에 이사를 가야 하는데 갈 곳이 없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환경에서 사역하게 하실 것”이라는 예언적 인사말을 남기고 산동네를 걸어 내려왔다. 날씨는 더웠지만 마음은 쾌적했다. 피난처 벽에 쓰여 있는 성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허원희 목사(사회선교)

허원희목사증명사진[1]

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