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최원준 목사의 Talk Talk 열왕기 15 : 이세벨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왕은 남자였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가 웬만한 남자 왕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 언급하고 있는 ‘여자’가 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다. 이세벨은 열왕기에서 19차례 나오는데, 시돈(페니키아)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이다. Brenner에 따르며 엣바알(바알이 함께한다란 뜻)은 왕이자 여신 ‘아스다롯’을 섬기는 대제사장이었다. 왕의 딸도 ‘바알 멜카르트’를 섬기는 여자 제사장이었다. 즉 엣바알과 이세벨은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 모두를 거머쥔 자들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한 남자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이다. 성경은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바알을 섬겨 예배했다고 말한다(왕상 16:31). 열왕기에서 ‘바알’이 처음 언급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 즉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한 그 때다.
이세벨은 독실한 바알 종교 제사장답게 자신의 종교를 북 이스라엘로 확대한다. 열왕기상 18:19에 따르면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 선지자가 450명, 아세라 선지자자 400명이었다. 바알 종교 지도자 850명을 세우고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말이다. 이들 바알 선지자들을 통해 전국적으로 바알 종교가 성행했고, 마술이 행해졌다(왕하 9:22). 그 결과 이스라엘에는 ‘샬롬’이 사라졌다. 아합의 아들 요람이 예후에게 “예후야 평안하냐”고 물었을 때 “네 어머니 에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왕하 9:22)고 답한 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황폐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세벨은 잔인한 여자였다.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탄압하고 죽였다. 씨를 말렸다. 엘리야가 주님의 선지자들은 다 죽고 자신만 남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이에 맞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불러모아 저 유명한 ‘갈멜산 대첩’을 거둔다. 이세벨과 엘리야의 싸움은 그야말로 피비린내나는 살벌하고도 처절한 영적 전쟁이었다.
이세벨은 표독스런 여자였다. 자신의 종교적 심복들을 죽인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복수를 선포한다. 이에 엘리야가 광야로 도망치지 않았던가? 이세벨의 기세에 눌린 것이다. 또 이세벨은 간교한 여자였다.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지 못해 밥도 먹지 않고 삐쳐있는 남편을 보고 음모를 꾸민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인을 치고 봉하여 나봇이 사는 성읍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낸다. 아합 왕의 이름으로 편지를 쓸만큼 이세벨은 정치적 실세였던 것이다. 그 편지는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는 거짓 증언을 하게 해서 나봇을 돌로 쳐 죽이라는 살해 지시서였다. 모든 것은 착착 진행됐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던 나봇은 무참히 죽는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으로 우상을 섬기게 하고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린 이세벨과 아합을 심판하셨다. 어찌보면 아합은 아내 이세벨의 사주에 놀아난 철딱서니 없는 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성경은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그를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음이라”(왕상 21:25)고 평가한다. 비록 아합이 이세벨의 충동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을 판 것은 아합 본인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무심코 쏜 화살에 아합을 죽게 하셨다. 이세벨과 아합의 아들들도 심판 대상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심판 대행자로 ‘예후’를 세우셔서 요람(=여호람)과 70명의 아들 모두를 처단하셨다. 특히 이세벨의 죽음은 가장 참혹했다. 그녀의 시체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개들이 그 살을 먹어 해골과 손과 발만 남게 됐고, 남은 시신마저 밭의 거름(똥!)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신약에서도 이세벨은 저주받은 이름이요, 가장 경멸을 받는 이름이 되었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두아디라 교회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이세벨이었다. 실제 이름이 이세벨이라기보다는 북 이스라엘의 왕비 이세벨과 같이 교인들을 꾀어 영적으로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마가복음 7장에 등장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다르다. 이 무명의 여인의 출신지인 ‘수로보니게’(Syro-Phoenicia)란 바로 이세벨의 고향이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이 들린 딸을 고쳐 달라고 애원하는 이 여인을 냉정하게 거절하시는 것은 물론 심지어 ‘개’라고 모욕적 언사를 서슴치 않으셨다. ‘개’란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경멸해 부르는 호칭이다. 그런데 일부 학자는 ‘개’를 페니키아 출신 이세벨의 자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보기도 한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이세벨이란 이름은 추악한 이름이었다. 그러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은 믿음의 여인이었다. 영원히 저주받을 이세벨의 후손이라도 믿음만 있으면 천국 백성이 되는 역사,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다.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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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