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최원준 목사의 Talk Talk 열왕기 13

엘리사와 어린아이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가만히 보면 여자와 아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와 그녀의 아들, 엘리사와 선지자의 제자의 아내와 두 아이, 엘리사와 수넴 여인과 그녀의 아들. 여기서 여인들은 비록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단지 ‘OO 여인’으로 언급되지만 주연격인 엘리야나 엘리사와 함께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는데 일조하는 조연급 인물이다. 반면 아이들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아만 장군의 치유 이야기’(왕하 5장)에서는 다르다.
나아만은 고대 근동의 강대국인 아람 왕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던 군대 사령관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나병이 있었다. 나아만이 이 병을 고치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가는데, 그 계기는 다름아닌 나아만의 부인을 시중들었던 어린 여종이었다.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 포로로 잡아 온 아이었다. ‘크고 존귀한 자’였던 나아만을 엘리사에게로 이끈 사람이 ‘아주 하찮은 작은 아이’였다. 이 어린 여종이 “그(엘리사)가 나병을 고치리이다!”라고 얼마나 확신에 차서 말했던지 나아만은 아이가 말한 것을 믿고 왕을 찾아가 허락을 받는다. 성경에 나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읽어보면 웃긴다. 성경을 근거로 필자가 좀 각색해 봤다.
“임금님, 제가 이스라엘에 좀 갔다 와야겠습니다.”
“왜?”
“저희집에 이스라엘에서 온 어린 여종이 하나 있는데, 사마리아에 신통한 선지자가 있다고 하네요. 그 사람을 찾아가서 치료 좀 받게요.”
“그래? 물론 가야지.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 주겠네.”
코미디 아닌가? 강대국의 두 슈퍼파워인 왕과 군대 사령관이 기껏해야 포로로 잡아 온 어린 여종의 말을 믿고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로 간다. 자칫 전쟁을 하자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일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왕은 그렇게 이해를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대화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했음을 봐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나아만을 엘리사에게로 인도하시기 위해 이들을 어리석게 만든 것은 아닐까?
흥미롭게도 나중에 나아만이 요단강에서 일곱 차례 몸을 씻고 깨끗해졌을 때 성경은 그의 피부가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해졌다고 말한다(5:14). 여기서 어린아이를 뜻하는 히브리아 ‘나아라’는 앞서 나아만 장군에게 엘리사를 찾아가도록 권했던 어린 여자아이와 같은 히브리어다. 나아만이 어린 여종의 말을 믿고 따랐을 때, 그 말대로 하나님이 이루셨음을 뜻한다. 어린 여종이 나아만을 직접 고친 것은 아니다. 그저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을 확신하고 엘리사를 소개해준 것뿐이다. 확신을 가지고 말이다! 하나님은 어린 여종도 사용하신다.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라면 말이다.
반면 어린 여종과 달리 힘깨나 있다는 어른들은 믿음이 없었다. 당시 이스라엘 왕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아람 왕의 친서를 받아들고서는 자기 옷을 찢으며 분노했다. “내가 하나님이냐?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겠느냐?”며 씩씩댈 뿐이었다. 어린 여종은 북이스라엘 수도 사마리아에 있는 선지자가 있으며 그가 틀림없이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한 나라의 왕은 자기 나라에 엘리사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있음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어린 여자 아이의 놀라운 믿음은 사도행전 12장에도 나온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나와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곳으로 갔을 때, 베드로가 살아 돌아왔음을 믿었던 사람은 ‘로데’라는 어린 여종 단 한 사람이었다. 베드로를 위해 기도했었을 성도들은 로데가 전해준 베드로의 생환 소식에 “할렐루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기뻐 외치지 않았다. 오히려 “네가 미쳤다”며 로데의 말을 불신했다. 당시에 아이는 온전한 인격체로 취급받지 못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은 유치한 것으로 여겨졌다. 더군다나 남자도 아닌 여자아이였으며(당시에 여자는 남자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졌다), 신분이 비천한 하녀였다. 당시 사회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여종 ‘로데’만이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사 베드로를 살려주셨던 것이다.
어린 아이의 순수한 믿음 때문에 나타난 또 다른 이적이 오병이어 사건이다. 한 아이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드린 것에 대해 안드레는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라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의 손에 쥐어졌을 때, 5000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는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다. 주님의 이적은 어린 아이를 통해서도 일어난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8:2에서 이렇게 찬양한다.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찬양하게 하셨으니 주께서 대적들과 원수들과 보복하는 사람들을 잠잠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는데, 신앙세계에서도 진리인 듯 싶다.
/최원준 목사(강동 온누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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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