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 목사의 신앙에세이 2
인간에게 침묵하고, 하나님께 토로하라
곤경에 처한 사람이 도움을 청해 이루어지는 게 상담이라면, 이 세상에 상담 없는 사회 없고, 상담 없었던 시대도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곤경 없는 사회나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진정 자유케하는 상담이 무엇일까?
상담은 도움을 주고받는 진솔한 인간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누구나 상담가일 수 있다. 특히 목회자는 상담자가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나는 욥기를 통해 내담자가 진정 기대하는 상담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욥기는 인생의 지혜서로 혹은 신정론에 관한 신학적 논설로 아니면 먼 옛날 고대 근동의 문학 장르의 하나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욥기를 하나의 상담 사례로 보고 싶다. 실패한 상담 사례로 진정한 상담이 무엇인지를 반증하는 책이 바로 욥기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동방의 의인 욥은 인생에서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만났다. 이 소식을 들은 욥의 세 친구들이 먼 길을 한 걸음에 달려왔다. 친구들은 슬픔과 연민 속에서 7일 밤낮 그 옆에 그냥 앉아 있었다. 적어도 여기까지 그들은 욥에게 최고의 목회적 돌봄을 한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친구들이 입을 열면서 시작됐다. 욥이 자기 신세를 비관하며 자신의 삶을 저주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아내와 달리 적어도 친구들은 그의 맺힌 한을 들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욥의 세 친구들은 상담이 아닌 논쟁을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연민의 눈빛으로 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세 친구들이었다. 논쟁을 벌이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말 좋은 친구요, 동반자요, 상담가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 시작하자 그것은 더 이상 위로와 공감과 이해가 아니었다. 상담이 아니었다. 마음에 맺힌 아픔을 조용히 들어주길 기대했던 욥은 더 큰 상처를 받았으리라. 아마도 그는 외딴 섬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미숙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위로하려고 갔다가 논쟁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곤경에 처한 친구에게 더 큰 상처와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낙심에 빠진 이들이 위로를 구할 때 말을 해야 한다는 충동과 함께 해결책을 제시해 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이는 목회자들 특히 남성 목회자들에게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영적인 분별력을 갖고 한 눈에 문제의 원인을 간파한 뒤 성경 말씀으로 해답을 명쾌하게 해결해주는 황홀한 상상을 한다. 이는 듣기보다 말하기에 빠른 목회자인 나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한때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고뇌의 시간을 홀로 견뎌야할 때가 있었다. 그때 영적으로 지도해주시는 목사님께서 한 말씀 조언해 주신 것이 있다.
“인간에게 침묵하고 하나님께 토로하라”
사람에게 위로를 구하지 말고,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말라는 지혜의 가르침이리라. 그 말씀대로 입을 다물고 하나님을 잠잠히 기다렸을 때 모든 것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1980년대 중반에 은성수도원의 엄두섭 목사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그 어른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말을 많이 하지 마십시오. 말은 하면 할수록 손해입니다.”
지금 나는 목회자로서 고뇌하는 영혼의 감춰진 신음 소리를 경청하고 있는지,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며 입을 열어 말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본다. 오늘날 우리는 욥의 불평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내 말을 잘 들어보게. 이것으로 자네들의 위로를 삼으시게. 내가 말하는 동안 좀 참고 있다가 내 말이 끝나면 조롱하게나. 내가 사람을 원망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나? 나를 잘 보고 놀라게. 자네들의 손으로 입을 막게”(욥기 21:2~5).
/유현목 목사(오클랜드 온누리교회)
작성자 정현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