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
칼럼

특별기고_미국과 유럽교회 쇠퇴에 비춰본 한국교회의 미래

 
한국 기독교, 미국과 유럽처럼 쇠퇴할 것인가?

 

서구 교회 사례 보고 배워야 … 안락한 삶에 젖은 우리에게 울리는 경종
‘부’가 영성 짓누르는 것 경계, 하나님 대신 인간이 관심사 되면 위기

 

넬슨 제닝스 박사는 약 13년간 일본에서 사역한 전문 선교사다. 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교수로도 재직했다. 뉴헤이븐에 있는 OMSC(Overseas Ministries Study Center,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 대표도 역임했다. 그는 온누리 선교 30년 역사를 돌아보고, 더 성숙한 선교를 돕기 위해 지난 9월부터 온누리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에게 서구 기독교가 쇠퇴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묻고, 한국 기독교의 미래에 대한 제언을 부탁했다.
/편집자주

 
미국과 유럽은 이미 미술관과 나이트클럽들이 교회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는 장엄했던 성전들이 지금은 텅 비었다. 교회가 관광 명소나 박물관이 되어 버렸다. 더는 이곳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열정과 온기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성적 가치관들이 통용되고 있다. 이제 결혼은 성이나 성적 취향에 상관없이 두 사람 간의 서약이 되어버렸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이 동등한 진리로 간주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전도는 불쾌한 선전일 뿐이고, 해외 선교는 제국주의를 뒷받침했던 부끄러운 역사적 유물로 전락했다. 기독교가 사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시절은 희미한 기억이 된 것 같다.
현재 유럽과 북미의 약하고 쇠퇴하는 기독교에 대한 이런 묘사들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에 복음을 가져온 선교사들은 기독교의 본거지에서 왔다. 특히 개신교 선교사들은 미국에서 왔다. 여러 세기 동안 서구 기독교는 기독교 사회가 어떻게 기능해야 하는지에 대한 세계적 기준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다면 서구 기독교 쇠퇴는 전 세계 기독교의 미래를 예고한다고 볼 수 있을까?
더구나 서구 기독교들이 지금 겪고 있는 비슷한 약점들이 한국에서도 뚜렷해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불만을 느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교회와 선교사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다. 성에 대한 사회적 논란에 대해 교회 리더들과 정치가들이 뚜렷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 채 토론하고 있다.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열정적인 헌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서구와 같은 기독교 쇠퇴는 피하지 못하는 미래일까?

 

유럽과 북미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확산

 

세계 종교 역사 속에서 서구의 최근 기독교 쇠퇴는 유일한 현상이 아니다. 다양한 종교들이 본거지에서 약화되어 다른 지역들로 이동했다. 가장 뚜렷한 것은 인도의 불교와 페르시아의 배화교일 것이다. 기독교 역사 중에 한때 강성했던 기독교 역사가 완전히 역전된 사례가 있다. 1세기 팔레스타인, 이슬람 전의 북아프리카, 이슬람 전의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17~18세기 일본과 중국이 그렇다. 이런 종교적 쇠퇴를 지금 여기서 언급한 것은 그것들을 평가하거나 분석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기독교를 포함하여 종교적 전통들이 수적으로나 영향력 면에서 감소한 수많은 사례들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언급하려는 것뿐이다.
최근에 유럽과 북미에서 일어난 일을 분석하려면, 그 지역들의 기독교 역사와 기독교 확산을 간단히 살펴보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이런 단편적인 스케치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기독교 역사 전체를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오순절 성령의 능력이 강림한 이래,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지나 땅 끝까지 사방으로 복음이 확산되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며, 특히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 역사하셔서 열방을 구속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든 민족(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백인, 기타 사람들)에게 전하셨다. 예를 들어 7세기 이슬람의 부흥기 무렵, 예루살렘 서쪽인 유럽과 북미보다 예루살렘 동쪽인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의 미래는 백인들이 주류인 서구를 비롯해 어느 한 민족이나 지역에 전적으로 달려있지 않다.
신약은 기독교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중해 북동 지역, 남유럽의 민족들 중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한다. 그 이후의 세기 동안 라틴 기독교가 점차 서유럽과 북유럽 민족들 중에 확산되었고, 동유럽에서는 그리스 기독교가 발달했다. 또한 기독교 천년 끝자락에 슬라브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면서 러시아 정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어떤 면에서 보면 라틴 기독교가 북동부 유럽 민족들의 언어와 사회적 상황에 맞춰진 것이다. 종교개혁은 주로 유럽의 르네상스와 계몽운동과 맞물려 일어났다. 유럽 민족들의 전 세계로의 이주(이민), 미합중국과 독일 같은 근대 국가들의 등장, 서구 제국들과 근대 세계 질서 창조의 촉매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19세기 초까지 유럽 나라들은 수백만~수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강제 이주시켜, 자신들 제국의 농업과 광업, 물질적 발달을 일구었다. 주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렇게 했다. 천주교, 정교회, 개신교 선교단에 의해 유럽의 다양한 기독교 전통들이 그들의 이주와 더불어 전 세계로 퍼졌다.
약 450년 동안 일어난 현대 서구 선교운동을 통해 20세기 중반까지 하나님은 복음을 전 세계에 전하셨다. 이 시기에 기독교가 처음 전해진 민족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한국은 중국의 가톨릭과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복음이 들어왔다. 또한 이 시기에 복음이 다시 들어간 나라들도 있다. 중국이 그렇다. 중국은 처음 7세기에 시리아 선교사들을 통해 기독교 복음을 들었지만, 현대에는 이탈리아 예수회, 러시아 정교회, 프랑스 가톨릭, 그리고 다양한 개신교 단체를 통해 기독교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 현대의 서구 선교운동을 통해 전 세계의 민족들 중에 복음이 뿌리내리고 다양하게 성장했다.
이런 현대 서양 선교운동이 20세기 중반에 끝이 났다.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서로 두 번의 큰 전쟁(제1, 2차 세계대전)을 벌인 것이다. 전쟁은 식민지 국민들을 고통 속으로 끌어넣었으며, 결국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의 붕괴를 초래했고, 독립 국가(인도, 가나,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들이 현대 정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이민 방향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서구인들이 외부로 향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제적 보장이 되는 과거 서구 식민지의 중심지로 이주했다. 그래서 기독교 선교는 전보다 더 다양한 기반과 다양한 방향을 갖게 됐다. 가장 좋은 예는 한국 선교사들이 극적으로 성장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러 나간 것이다.
유럽의 정부와 대중들은 모두가 기독교와 연관되기를 점점 더 멀리하면서 유럽에서의 기독교 위상은 떨어졌다. 기독교가 두 번의 참혹한 전쟁을 막지 못했고, 억압적인 제국주의의 세계적 확산을 눈에 띄게 지지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기독교에 대해 낙관적인 분위기였다. 미국 본토는 유럽처럼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황폐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독교는 무신론 소련과의 냉전 중에 미국을 지지해 주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권 향상을 지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기독교의 주도권은 1970년대에 기울기 시작했다. 그 원인으로 베트남전쟁 패전에 대한 논란, 이민 증가로 인한 다양한 인종의 증가, 모든 민족의 인권에 대한 인식, 부를 꿈꾸는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구심 등을 들 수 있다.

 

세계의 다양한 상황과 기독교 존재의 복잡성

 

서구 기독교에 대한 세계사적 스케치는 기독교의 발달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성령의 주권적 역사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기독교의 성장이나 쇠퇴를 결정하는 우선적 요소라거나 혹은 유일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자면, 최근 유럽과 북미의 기독교 쇠퇴는 단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진실한 헌신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성령의 주권적 역사가 기독교 복음 확산을 결정한다는 것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교회와 세계 선교가 다면적 세계와 성육신적으로 상호 얽혀있다는 것은 세계의 다양한 상황 속에서 기독교 존재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기독교 신앙과 신앙생활은 일면 단순 명백하다. 그저 예수를 믿고 순종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신실한 삶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아름답고 복잡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구속하신다. 교회 생활과 기독교 선교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은 다면적 세상을 만드시고 구원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과 찬양을 축소한다. 또한 성령께서 복음을 가져오시고, 성장시키시고, 어둠과 어려움이 잔존하도록 허락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끌고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 뜻대로 다스리시는 각 지역의 상황은 고유하고 특별하다. 이글을 쓰는데 있어 유럽, 미국, 한국은 모두 역사, 도전, 역경, 성공에 있어서 흥미롭고 복잡하며 특별하다.
물론 세 나라에는 유사점도 있다. 예를 들어 정치구조, 경제발전, 첨단기술 등 다양한 면에서 현대적이다. 그리고 모두 기독교의 존재가 사회 내에서 의미심장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각 나라가 각자 고유성을 갖는다. 기독교 복음이 도착하고 발달한 시기와 방법이 가장 명백한 예일 것이다.
한국보다 미국과 유럽이 서로 비슷하다는 주장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주류인 백인들이 유럽인을 조상으로 두고 있으므로 그 유사성은 상당히 명백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두 지역의 기독교와 그 영향은 한국보다 훨씬 더 긴 역사를 갖는다. 그러나 미국의 짧은 역사에 비해 유럽과 한국은 오랜 역사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한국 모두 토착민의 강제이주나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여러 세대에 걸쳐 제도적으로 노예화했던 역사가 없다. 반면 미국은 두 가지 경험이 다 있다. 따라서 세 지역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언뜻 보는 것처럼 분명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미국 기독교가 유럽의 기독교를 따라갈 것이라고 추정하지 말아야 한다. 유럽 기독교가 명백히 감소하고 쇠퇴했다고 해서 미국에서도 같은 패턴이 일어날 것이라고 반드시 보장할 순 없다. 그러나 두 지역의 경로가 비슷할 것이라는 징후들이 있기는 하다. 미국에는 유럽과 다른 사회적, 종교적 역학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뚜렷한 역학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생동감 있는 영성(특히 기독교 영성)과 끈질기게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적 역사는 사람들의 정신세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 둘은 서로 다르다. 미국의 슈퍼파워 위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미국 기독교에 영향을 미치는 한 특징이며, 거기에는 미국이 세계 선교의 주도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포함된다.
최근에 미국과 유럽으로의 이민자들이 미치는 영향은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아프리카, 카리브해, 기타 지역으로부터 온 기독교 이민 인구로 말미암아 종교적 다양성이 증가됐고, 더 뜨거워졌다. 미국에 라틴계 인구가 증가한 것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전쟁으로 인한 이주자들이 유럽으로 쇄도한 것과는 다르다. 한국도 이민자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한국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와 다르다.

 

한국 기독교는 어디로?

 

최근 한국에서의 기독교 성장 둔화는 이전 세대의 폭발적 증가에 비하면 분명 위기 상태다. 한국 교회의 극적인 성장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에 한국에 교회가 개척되면서 싹텄다. 한국 기독교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와 그 후에 이어진 6.25한국전쟁이라는 고통을 통해 깊어졌다. 한국 기독교의 그런 경험은 특별한 기반이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런 기반은 고통만이 아닌 자양분을 제공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기독교인들, 가난한 이민자들이 최근에 미국으로 왔고, 유럽에서는 독일 나치정권과 공산당 통치 하에서 기독교 영성을 비슷하게 강화시켰지만,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시달린 한국만큼 효과가 깊진 않았다.
한국 기독교가 미국 기독교와 공유하는 한 가지 낮은 수준의 과제는, 기독교 전통들의 다양성과 현재의 도전들에 대한 기독교 전통들의 반응의 다양성일 것이다. 사회, 정치적 이슈들에 대해 미국의 기독교가 믿는 바를 단일화해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낙태, 성, 결혼, 성 역할, 이민, 군사력, 중동문제, 그리고 다른 사안들에 대한 미국 교회들의 입장은 다양하고 폭넓다. 한국 교회들도 다양한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똑같다. 그것은 중요한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기독교적’ 계획을 수립하는데 어려움이 된다.
한국 기독교 미래에 있어서 중심 도전은 유럽과 미국에서 ‘부’가 영성을 짓눌렀다는 사실이다. 부가 꼭 종교적 열정을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의 부유한 자들에게 성경이 주는 경고가 안락한 삶에 젖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한국 경제는 지난 수십 년간 급성장해 교회 건물, 사역 프로그램, 현재 약 2만 명의 선교사 파송에 대한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한국인의 삶은 안락한 주거환경, 광속 의사소통기기, 멋지고 편리한 교통시설, 잘 무장된 군대 등 전반적으로 1등급 생활수준을 이뤘다. 그러나 그런 사회와 생활방식은 신성한 공급자이시며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뜻, 선하심 대신에 인간들은 자신들의 권리와 편안함, 행복이 주요 관심사가 되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우리의 궁극적 충성을 받기에 유일하게 합당하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헌신을 억누를 수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든 안 하든, 사실 모든 개인과 사회는 세상의 유일한 참 창조자이며 구속자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도 서로 상호의존하며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눈다. 몸의 일부가 억압과 상처를 받을 때 전체인 몸도 같이 아픔을 느끼며, 몸의 일부가 즐거워할 때 전체인 몸도 같이 즐거워한다.
가령 파키스탄, 북부 나이지리아, 남수단, 시리아가 억압을 받고 있다면 우리도 역시 억압을 느끼며, 남미의 교회성장과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교회성장으로 인해 기뻐한다면 우리 역시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께 의존하고 서로 의존하는 것이야말로 전 세계의 교회가 예배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동료인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인들의 고투를 이해하고자 할 때, 우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바란다. 오늘날 서구 기독교 신앙과 신앙생활이 겪는 도전들에 공감해주길 바란다. 또한 한국 기독교인들은 서구의 기독교인들의 상황을 통해 배울 수 있다. 그런 한편 한국 사회의 고유한 특징들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야 하고, 다른 상황 속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와 격려를 부탁해야 한다. 절대적인 창조 신학과 모든 사회적 사안들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현재와 또한 미래에 다가올 고난과 도전들에 대해 잘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한국 기독교는 지속되고 있고, 미래는 하나님만 아신다. 실로 하나님만이 전 세계 하나님의 교회 중 한국 교회의 성장을 북돋고 이루실 수 있다. 하나님을 열렬히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자세다. 성, 부패, 리더십, 젊은 세대의 관심사 등 이슈들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새롭고 복잡하더라도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신실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무장시키시며 이끄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전 세계에 걸친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로서, 한국 교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신실하게 앞에 처한 도전들에 당면하길 바란다.

/넬슨 제닝스 박사
선교 전문가
전 일본 선교사
전 미국 해외선교연구센터(OMSC) 대표
현 온누리교회 선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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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현주